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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고비 Oct 09. 2023

교사가 ‘안됩니다’라는 말을 연습해야 하는 이유

교사가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힘들어진 이유 - 교사 편

작금의 눈물 나는 사태에 대한 시리즈 글이다. 왜 교사한테도 뭐라 하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스템과 학부모에 대해 이야기한 앞선 글들을 읽어야 한다.


“안 됩니다.”라는 말은 의외로 쉬운 말이 아니다. 특히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입에서는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교사들은 어떤 사람인가. 최근에 죽음을 택한 젊은 교사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교사들은 대체로 모범생이었던 경우가 많다. 그냥 모범생이 아니다. 애도 키울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다는 다분히 남성 중심적인 입장에서 여자 직업 중에 교사만 한 것이 없다 생각하는 사회 통념에 맞춰 또는 부모님의 권유에 이끌려 교사가 된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나도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당시의 나의 수능점수는 인서울 의대가 가능한 성적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우리 부모님들은 여자 직업으로는 의사보다는 교사가 좋다고 생각하시고 있다. 지금도라는 게 가장 슬픈 포인트다.


내가 공부를 잘했다는 게 포인트가 아니라 교사는 기본적으로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사람들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단 것이다. 그러니 대체로 나보다 윗사람이 시키는 일은 토 달지 않고 해야 되는 일인가 보다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고, 학부모님들이 이렇게 해 달라고 하면 해줘야겠다 생각했을 것이다.  사회 통념에 따라 부탁을 거절하는 것보다는 내가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해 주는 게 더 나이스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이게 다였으면 최근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교사가 된 사람들은 그냥 고분고분한 사람들이 아니다. 공부를 아주 잘한 고분고분한 사람들이다. 대한민국 입시판에서 피 말리는 경쟁을 뚫고 가장 선두에 서 본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제부터는 우리나라의 담임 제도에 대해 말할 차례다. 전 세계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한 동북아시아에만 고등학교까지 담임제도가 있다는 게 우연이라고 생각하는가. 피터드러커라는 미국의 경영학자의 이론이 있다. 교육학자가 아닌 경영학자이다. 회사를 팀으로 나누고 같은 과업을 주어 팀들을 경쟁시키면 효율이 최고가 된다고 했다. 책을 읽은 지 오래되어 정확한 워딩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 나는 책을 읽으며 피터드러커의 이론 때문에 우리나라 학교에 담임과 학급이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이제 담임을 맡게 된 교사들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초등학교의 분위기는 잘 모르겠다. 중고등학교 교사들의 가장 중요한 대화 소재는 ‘몇 반이 제일 좋다’ 또는 ‘몇 반이 제일 힘들다.‘이다. 말로는 그 반 구성이 안 좋아서 담임이 힘들겠다는 말을 하지만 은연중에 담임이 관리를 잘 못한다는 느낌적인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이전 학교의 관리자는 사장님에 빙의되었는지 잔반량도 반별 경쟁을 시키고 수업태도가 좋은 반에게 스티커를 주게 해서 반별로 경쟁시켰다. 나중에는 하다 하다 쓰레기봉투까지 학급별로 꽉 채웠나 안 채웠나를 경쟁시켰다.


이런 관리자들이 사정안에 적힌 반별 평균은 안 보겠는가. 어떤 반이 체육대회 1등을 하고, 축제에서 부스를 기깔나게 만드는지 모르겠는가. 어느 반에 학폭 건수가 제일 많은지 눈여겨보지 않겠는가.


우리 반의 능력이 나의 능력으로 평가받는 학교에서 경쟁의 끝판왕 교사들은 담임별 경쟁에 어떻게 대처해야겠는가. 관리자에게도 학생에게도 학부모에게도 가장 나이스한 담임이 되기 위해 경쟁해서 우리 학급을 최고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회사에서는 잘한 팀에게 월급이라도 몰아줬을 것 같지만 학교는 그렇지가 않다. 잘하면 잘할수록 일을 몰아준다. 못하면 못할수록 더 이득인 이상한 학교에서 경쟁의 노예가 된 교사들은 더욱더 노력해서 최고의 담임이 되려 한다.


나도 안다. 경쟁에 이기려는 마음만으로 담임을 한다기에는 그 마음속에 사랑과 진심이 넘친다는 걸 내가 왜 모르겠는가. 나도 열 번이 넘는 담임을 한 사람이다. 엄마가 되어 보지 못한 사람이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없듯 담임을 해 본 적 없는 사람이 담임의 진심을 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제발 제일 잘하려고 하지 말라는 거다. 반에는 애들이 30명이다. 30명의 학생과 60명의 학부모 모두에게 최고의 담임이 되는 길은 없다. 1명의 아이가 앞에 앉고 싶다면 누군가는 뒤에 앉아야 한다.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준다는 건 부탁하지 않아 혜택을 받지 못한 누군가에게는 불이익을 선물하는 거라 생각해야 한다.


아마 삼십 년 넘게 착한 사람으로 살아와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면 연습이라도 하자. 그래야 필요한 순간 말할 수 있다.


“안 됩니다. 필요하시면 학폭 신고하시고 제가 다른 학부모에게 사과를 요구할 권한은 없습니다. “

”안 됩니다. 시험 볼 때 자리는 지정된 자리입니다. 에어컨 옆자리라 해서 바꿔줄 수 없습니다. “

”안 됩니다. 교장이 통보해야 한다는 건 말 그대로 교장이 통보하라는 뜻입니다. 담임이 하면 안 됩니다. “

“안 됩니다. 제가 그 업무까지 맡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뭐 이렇게까지 말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안 된다는 말은 살기 위해 하는 말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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