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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에이전트 이코노미의 부상

by 경영로스팅 강정구


Sakana AI, Devin, Genie, Skyfire, Reflection AI, Imbue, Holistic AI. 처음 들으면 게임 캐릭터나 SF 소설 속 이름처럼 들리지만, 이들은 모두 실제로 등장한 최신 AI 에이전트 서비스들이다. 대화만 주고받던 시대를 지나, 이제 이들은 사용자의 맥락을 이해하고 과업을 스스로 완수한다. 우리는 지금, 인간의 손끝에서 떨어진 일들을 대신 처리해줄 기술적 동반자와 함께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기술 진화의 다음 단계다.


기존 LLM은 방대한 컴퓨팅 자원과 자본이 필요했지만, AI 에이전트는 비교적 소규모 자본과 팀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 각 에이전트는 특정 도메인에 최적화된 모델로 진화하며, Tool Use(도구 사용), Planning(계획), Memory(상태 기억), Reflection(행동 피드백)이라는 핵심 모듈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이제 창업가는 서버 대신 ‘과업 자동화 루프(agentic loop)’를 설계한다. 수많은 스타트업이 이 시장에 진입하고 있으며, 일부는 살아남아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형성할 것이다. 이 흐름은 AI를 ‘모델’에서 ‘행위자(Agent)’로 확장하는 결정적 순간을 보여준다.


AI 에이전트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율성’이라는 키워드로 수렴되며, 입력만 기다리는 도구가 아니라 상황을 판단하고 스스로 목표를 달성하는 존재로 이해된다. 기존의 Siri나 Alexa가 단문 명령에 반응했다면, 최근의 에이전트들은 LLM의 향상된 추론 능력과 시스템 조합 역량을 통해 더 복잡한 과업을 수행한다. 특히 생성형 AI의 강화학습과 피드백 반복 학습은 자연어 해석을 ‘명령 수신’에서 ‘의도 이해와 실행’으로 전환시켰다. 기술은 이제 단어를 해석하는 단계를 넘어, 상황을 이해하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예를 들어 “회의 일정을 잡아줘”라고 명령하면, 에이전트는 참석자들의 캘린더를 조회하고, 가능 시간을 교차 검토하며, 최적 일정을 선택하고, 초대장을 자동 발송한다. 이 과정은 인간의 단순한 작업 위임이 아니라, 복수의 도구(Google Calendar, Gmail, Notion 등)를 자동 호출하고 연결하는 과업 조합을 포함한다. 이는 Prompt → Plan → Tool Execution → Memory Update → Re-plan 과 같은 일련의 루프 구조로 구성된다. 핵심은 ‘수행’이 아니라 ‘계획과 최적화’다. 즉, AI는 실행자가 아니라, 점점 유능한 조정자로 진화하고 있다.


향후 AI 에이전트는 각 도메인에 특화된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바둑에 특화된 AlphaGo, 단백질 구조 예측에 집중한 AlphaFold처럼, AI는 특정 문제에 집중할 때 더 빠르게 진화한다. 이러한 특화형 설계는 계산 자원을 줄이고 성공 확률을 높인다. 에이전트는 범용성보다 ‘목적 기반 특화’가 실용적으로 강력하다. 그것이 현재 에이전트 생태계가 도메인 중심으로 나뉘는 이유다.


Sakana AI는 과학 연구를 자동화하려는 매우 도전적인 프로젝트다. Google Transformer 논문의 공동 저자인 Lillian Weng이 일본에서 설립한 이 회사는, 과학 아이디어 생성부터 실험 시뮬레이션, 논문 작성, 동료 평가까지 전 과정을 LLM 기반 에이전트로 연결한다. 연구자의 사고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 수행 자체를 하나의 ‘에이전트 체인’으로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논문 생산 속도를 높일 뿐 아니라, 인간이 떠올리지 못한 가설을 탐색하는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다. 과학이라는 정밀한 영역에 AI가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코딩 분야에서도 AI 에이전트는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다. Cognition Labs의 Devin은 전체 개발 루프를 스스로 수행하며, Planning → Code Writing → Debugging → Deployment 루프를 자동 반복한다. Cosine의 Genie는 JavaScript, Python 등 15개 언어의 수십억 개 데이터를 학습한 멀티언어형 코딩 에이전트다. 이들은 단순한 코드 생성기를 넘어서, 실제 프로덕션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개발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다. 엔지니어의 역할은 점차 기획과 검증 중심으로 이동 중이다.


여행 예약 도메인에서도 Skyfire는 의미 있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회사는 단순한 추천이 아니라, 결제까지 완료하는 ‘완결형 에이전트’를 지향한다. 이들은 “결제 없는 에이전트는 단순한 API 호출기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사용자의 예산 설정, 대시보드 제공, 자동 보고서 기능까지 포함했다. 다만 AI가 실제 결제를 수행할 경우, 법적 책임 구조가 모호해질 수 있다. 이는 에이전트 기술의 진보만큼이나, 정책과 제도 설계가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범용 AI 에이전트를 꿈꾸는 스타트업도 여전히 존재한다. 2024년 1월 설립된 Reflection AI는 Google DeepMind 출신 창업자들이 모여 만든 회사로, AGI 기반 범용 에이전트 개발을 표방한다. 이들은 “3년 내 AGI 도달 가능”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인간 수준의 인지 구조를 갖춘 에이전트를 설계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Adept가 유사한 전략으로 시장에 진입했다가 결국 Amazon에 인수된 것을 감안하면, 범용 에이전트의 시장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존재한다. 꿈은 크지만, 현실은 도메인 특화에 유리한 구조다.


AI 에이전트의 진화를 가로막는 기술적 과제는 여전히 많다. 도구 선택과 실행 순서 자동화, 외부 API 통합, 사용자 권한 위임,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는 해결이 필요한 핵심 이슈다. 예를 들어 여행 예약의 경우, Trip.com API와 Google Calendar, Stripe를 동시에 호출하고 예산 조건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처럼 멀티툴 연동과 조건 기반 판단은 단순한 LLM의 범위를 넘어선다. Agent Framework와 DSL(도메인 특화 언어)의 발전이 병행되어야 가능한 미래다.


이러한 흐름은 결국 'AI Agent Economy'라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낼 것이다. YouTube나 TikTok이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만들었듯, 에이전트는 ‘과업 수행 기반 서비스 모델’로 새로운 소비 패턴을 창출한다. 사용자는 특정 도메인 에이전트를 구독하거나 소유하게 되고, 에이전트 개발사는 수익 기반 SaaS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할 수 있다. 이는 AI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소비재·서비스·산업 구조를 전환시키는 인프라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자의 중심이 바뀌면, 경제도 바뀐다.


앞으로 데이팅 앱에서 메시지를 대신 읽고 응답하는 페르소나 기반 에이전트, 헤어스타일을 제안하고 예약까지 처리하는 뷰티 에이전트, 법률 소장을 작성하고 제출 일정까지 관리하는 로우테크 에이전트들이 현실화될 것이다. 이들은 모두 사용자 대신 실제로 ‘행위’하는 주체이며, 단순한 리포트 작성이나 요약을 넘어 ‘인생의 일부 결정’을 도울 것이다. 즉, AI는 점점 도구가 아니라 동료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사용자 경험(UX)의 개념을 다시 써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과 기계의 관계는 보조에서 협업으로 전환되고 있다.


2023년은 Prompt Engineering이 주목받았다. 텍스트 프롬프트에서 이미지 프롬프트로, 생성형 AI의 인터페이스는 빠르게 진화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명령의 언어’였다. 이제는 ‘행동의 언어’를 설계할 시점이다. Agent는 Prompt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하고 재구성하며 복잡한 조건을 조율한다. 에이전트 시대는 질문보다 행동이 중심이 되는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이 흐름은 인터넷의 진화와도 닮았다. 1995년 Netscape와 Internet Explorer가 대중 인터넷의 포문을 열었지만, 실제 산업에 적용된 시점은 2000년대 초반 ERP, CRM 시스템이 내재화되면서였다. 지금 AI도 유사한 궤도에 있다. 에이전트의 등장은 LLM의 대중화를 넘어, AI가 ‘인간의 파트너’가 되는 첫 신호다. 그리고 이 변화는 산업, 소비자, 정책 모두를 다시 설계하게 만든다.


이제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어떤 모델이 가장 똑똑한가가 아니라, 어떤 에이전트가 나의 시간을 가장 잘 살아줄 수 있는가. AI는 더 이상 도구가 아니다. 스스로 일하고, 결정하며, 책임지는 새로운 행위자다. 당신의 첫 번째 AI 에이전트는 어떤 이름을 갖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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