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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치 Aug 07. 2020

당신이 몰랐던 현대미술 감상 2

현대미술 읽어내기

 동시대미술에는 다양한 주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미술가들이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영감거리가 됩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는 작가마다 생각이 있습니다. 이를 미술작업으로 만들어내면, 그것이 동시대미술입니다. 그렇기에 동시대미술은 주제별로 나눌 수 있고, 주제 아래서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생각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며, 작업의 재료에는 제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주제로도 다른 이야기를 하고, 이를 보여주는 작업물도 전혀 같은 이야기를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제라는 말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2020년입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화제입니다. 급속도로 발전하며 미래를 이끌어갈 기술이라고들 합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무엇일까요? 사람들의 관심사, 생활양식 등을 데이터화함과 동시에 이를 이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인공지능이 분석하여 판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를 보겠습니다. 구글 광고 설정에 들어가면 개인마다 얼마나 많은 태그가 걸려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나이, 지역 뿐 아니라 소득수준, 관심사, 혼인여부, 최근의 현실 속 활동내역, 학력, 방문지, 주 이동수단, 인터넷으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보는지, 주택 소유여부, 직장 규모 등 수십 가지의 분류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분이라면 깜짝 놀랄 정도일 것입니다.


 이를 보고 드는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저에게 더 적절한 서비스, 몰랐던 상품을 추천해주는 맞춤형 광고가 제공된다면 괜찮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부정적인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저를 분석하고 데이터화 하다 보면 저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되리라는 생각도 합니다. 데이터화 된 저에게 맞춰서 제가 보는 것들을 정할 수 있습니다. 제가 무엇을 흥미있게 볼지 구글은 알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제 생각을 유도하며, 특정 사상 또는 유형의 인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고 봅니다. 또한 차별의 요소도 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제 개인정보를 팔아 넘길 수도 있고, 언제 어디에 가는지 일일이 감시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저는 저를 분석하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의 시대를 주제로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데이터화 시키고, 이를 통제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동시대미술이 됩니다.


 사실 빅데이터를 예시로 든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작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불온한 데이터’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는 데이터와 관련된 많은 작가들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몇 가지 작업을 보겠습니다.

 이 작업은 작가의 이름이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횟수, 전시회에 들러 작업을 감상하는 인원수, SNS상에 태그되거나 올라오는 자기의 아이디 등을 취합하여 숫자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보는 것입니다. 데이터와 관련하여 현 시대에 한 사람이 세상에 어떤 위상으로 존재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무엇일까요? 철수라는 이름으로, @Chulsoo라는 인스타그램 아이디로, 인터넷에서 물건을 구매하여 기록되는 한 명의 소비자로, 구글 검색 결과로 나오는 수백만의 데이터 중 하나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페이스북 친구 관계가 인연을 보여주는 것처럼, 인스타 언팔이 인간관계를 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은 데이터가 되어갑니다.

 이 작업에서 보이는 기괴한 형상은 인물의 마스크입니다. 눈코입도 없는, 전혀 형상을 알아볼 수 없는 희한한 조형물입니다. 이는 안면인식 기술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작품 옆에는 영상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모 안면인식 기술 기업에서 게이를 90% 이상의 확률로 판별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게이를 왜 판별해야 할까요? 차별을 만들어내기만 하지 않을까요? 안면인식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불필요한 기술이, 차별적 기술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또 이러한 기술이 더 확장되어 적용된다면 하루에도 수십 번 찍히는 CCTV 속에, 우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 일일이 기록되고 감시 받을 수 있습니다. 이미 중국에서는 그렇게 되어간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에 대항하여 작가는 안면인식 기술로 인식할 수 없는 마스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가면을 쓰면 사람은 기술로, 인공지능으로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이 됩니다. 이를 연구하여 만들어냈습니다. 실제 올해 개발된 기술로는 안면인식 인공지능이 알아볼 수 없는 사진 파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볼 때는 그저 인물의 사진일 뿐인데 인공지능이 수집할 때에는 분석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구글 포토, 아이클라우드 사진 기능을 쓸 때 인물을 분간하는 것을 생각하면 가면을 쓰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이 작가는 자신이 전시하는 곳에서, 그 나라의 언어로 ‘모든 데이터를 사람들에게’라는 문구를 벽면에 거대하게 적어 놓는다고 합니다. 왜 모든 데이터를 사람들에게 라는 말을 할까요? 데이터가 만들어내는 계급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에 한계가 있습니다. 특정 인물들만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일반인이 인터넷 상에서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는 빙산의 일각보다 적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새로운 계급화를, 새로운 차별을 만들어내기에 모든 데이터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이를 미술작업으로 표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작업은 로봇청소기가 아주 좁은 단상 위에서 빙글빙글 맴도는 연출입니다. 요즘 로봇청소기는 집 구조를 지도로 그려 저장한 후 꼼꼼하게 빈틈없이 청소하고 다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좁은 단상 위에 올려놓으면, 끊임없이 그 위를 돌기만 합니다. 로봇청소기는 떨어지지 않도록 짜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감옥에 갇힌 것만 같습니다. 이 작가는 오늘날 중국의 현실을 이야기 합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세상은 미래로 미래로 나아가는데, 사람들은 정작 높은 단상 위에서 자칫하면 떨어지는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갇혀서, 따로 떨어진 섬에 갇힌 것만 같다는 말입니다. 중국이 그러한데 사실 한국에서도 공감이 갈 법한 이야기입니다. 컴퓨터로 이뤄지는 각종 인사시스템, 소프트웨어로 일하는 사람들, 주민등록번호와 전자정부의 데이터로 처리되는 일상생활을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렇듯 미술작가들은 저마다의 생각으로, 저마다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만의 재료와 방식으로 말합니다. 저는 기술에 관심이 많아 이 전시를 아주 흥미롭게 봤지만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저 글귀를 써놨구나, 요상한 마스크를 만들었구나, 로봇청소기구나 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 해서 현대미술 감상을 못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사람마다 관심사는 다릅니다. 저는 화장품에 전혀 관심이 없지만, 누군가는 화장품에 관심이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화장품과 화장 문화에 대한 작업을 볼 때, 저는 별 호기심이 들지 않겠지만 그 누군가는 재미있게 감상할 겁니다. 이렇게 자기만의 이야기를 펼치는 작가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관객의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작가는 이야기를 꺼내고, 관객은 듣고 생각하는 것이 동시대미술 감상입니다.


 여기서 큰 차이가 납니다. 이전의 미술 감상과 다릅니다.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그런데 현대미술이 어렵다, 동시대미술은 알 수 없는 이야기만 한다는 것은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데이터에 관심이 많기에 이야기를 듣고 싶고, 생각을 하고 싶지만 아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반대로 저는 보석공예 같은 것들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들을 이야기도 없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런 작업물을 보고 매료됩니다.


 요약하자면 동시대미술 감상은 주제가 있고, 그 주제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 되는 것입니다. 작가는 작업물로 이야기를 건넵니다. 관객은 이를 듣고 생각을 합니다. 갤러리와 미술관은 이러한 주제를 더 통찰력 있게, 더 명확하게, 또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멋들어진 작업물을 만들어내는 작가를 골라냅니다. 더 넓은 이야기, 더 많은 사람에게 공감 가는 이야기, 현대를 꿰뚫으며 미래를 내다보는 이야기를 하는 작가를 모읍니다.


 만약 이러한 작품을 보고 별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못 알아 들은 관객이 바보가 아니고, 어렵게 이야기하는 작가가 대단한 것도 아니라 관심사가 다를 뿐입니다. 또 관객에게 어필하지 못한,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작가일 수도 있으나 괜찮습니다. 이야기를 이해했지만 별 감흥이 없는 관객이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그저 다를 뿐입니다. 자기가 재밌고, 관심 가는 작업을 즐기면 되는 세상입니다. 작업물의 형태도, 재료도 다양하니 즐거움에 끝이 없습니다.


오늘 예시로 든 작업들은 제법 어렵고 묵직해 보입니다. 역시나 쉽게 즐기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이렇게 작업을 만들고, 이야기를 읽어내는 방법이 있다는 소개입니다. 정답도 아니며, 작가들의 이야기가 다 맞는 것도 아닙니다. 그게 재미입니다. 다음 글에는 더 많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또 꼭 이렇게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를 건네는 작업만이 동시대미술도 아닙니다. 말씀드렸듯, 정말 다양한 주제가 있고, 그 주제에는 그저 느낌을 전하는 작업도 있습니다. 단 그 느낌이 어떻게 얼마나 전달되느냐가 관건이겠습니다. 이때도 역시 관객은 느낌이 안 든다고, 별 감흥이 없다고 미술 감상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맞을 뿐입니다. 산이 좋은 사람, 바다가 좋은 사람 따로 있는 것처럼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예쁜 작업이 좋을 수도 있고, 후줄근한 쓰레기로 만든 작업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관심가는 작품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것이면 관객으로서는 충분합니다. 깊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 전시회를 들르면 되고, 눈요깃거리를 찾는다면 그런 전시회를 가는 것입니다. 마음에 든다면 하나쯤 사두는 것도 좋습니다. 두고두고 보고 싶은 작품은 사람마다 하나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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