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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치 Aug 22. 2020

언쟁을 피하는 방법

남산이 무너졌구나, 황소가 쥐구멍에 들어갔구나

다른 사람과 언쟁이 잦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슨 말만 하면 꼬투리를 잡고, 틀렸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과 만나면 피곤합니다. 별것도 아닌데 자기 주장을 펼치고, 득달같이 달겨듭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때도 있고, 지나치게 주장이 강해 불쾌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하나 따져가자면 피곤하기도 하고, 절대 받아들이지 않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과 만나면 ‘그냥 말을 말지’ 하기도 하는데 그게 잘 안 될 때가 많습니다. 내 생각도 맞는 것 같고, 분명히 맞기 때문에 틀렸다고 인정하기도 싫습니다.


반대로 자신이 그럴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 너무 틀렸고, 바로잡아주고 싶기도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혹은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언쟁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말이 맞는데 받아들이지도 않고, 틀렸다고 따지기까지도 합니다. 나는 언쟁을 많이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데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되기 쉽상입니다.


두 경우 모두 괴로움이 찾아듭니다. 괴로움은 3가지라고 했습니다. 좋은 것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은데 안 될 때, 싫은 것에서 떨어지고 싶은데 안 될 때,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을 때입니다. 요약하자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괴롭습니다. 상대방이 따지고 드는 것에서 떨어지고 싶은데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더 이야기를 하기 싫은데 자꾸 들러붙을 수도 있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서 계속 이야기를 해야만 하겠다고 마음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상대방이 틀린 생각을 하는 것이 싫어 생각을 바꿔주고 싶고, 자기 주장을 더 하고 싶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뜻대로 잘 되지가 않습니다. 말재간이 아주 뛰어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옳은 사실을 이야기 하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렵고, 받아들여주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황희정승의 일화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격하게 말싸움을 하다가 황희정승에게 누가 맞냐고 물어봤습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는 황희정승은 그 말이 맞구나 합니다. 다른 사람이 발끈하여 자기 이야기를 합니다. 황희정승은 그 말도 일리가 있구나 합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부인이 어이가 없어서 둘 다 맞다고 하는 게 대체 무엇이냐고 물어봅니다. 그러자 황희정승은 부인 말도 맞구려 합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뛰어오더니 남산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무너질 리 없는 남산이 무너졌다는 말을 들은 노인은 허허 웃으며 ‘그래, 남산이 무너졌구나’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다른 사람은 노인을 더 놀리고 싶었습니다. ‘저기 황소가 쥐구멍에 들어갔습니다!’ 라고 하니 노인은 역시 웃으며 ‘그래, 소가 쥐구멍에 들어갔구나’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노인은 그렇구나 했습니다.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고, 지적하는 말도 맞다고 합니다. 남산이 무너졌다는 말도 그렇구나, 심지어 황소가 쥐구멍에 들어갔다는데도 그렇구나 합니다. 이야기만 봤을 때는 너무나 간단해 보입니다. 누구나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상 상황이 되면 자기의 경우는 다르다며 언쟁에 열을 가합니다.


그래서 평소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과 아닌 것의 차이를 먼저 알고,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알면 됩니다. 남산이 무너졌다는 바보 같은 소리에도 그렇구나 무너졌구나 할 수 있는 연습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무시하고 넘어갈 테지만 화를 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게 무너질 리가 있냐며 따지기 쉽습니다. 이 이야기는 너무나 말이 안 되는 것이지만 조금만 달라져도 이야기 자체가 달라집니다.


만약 누군가 얼토당토 않은 소리를 해올 때, 부정하고 말을 더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중요한지 아닌지를 따져볼 수 있습니다. 아싸와 인싸의 차이라며 이런 이야기가 돌 때가 있었습니다. 혈액형이 맞냐 틀리냐는 것입니다. 물론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4가지 타입으로 나눠 성격을 정하는 것은 아무런 타당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혈액형을 물어보며 오~ 너는 이런 사람이겠구나 합니다. 이런 일들이 연습 소재가 됩니다. 성격이 이렇든 저렇든 생각하는 건 그 사람의 자유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든 아니든 하등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내 성격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게 어쩌다 맞아 떨어져서 그 사람이 역시 맞지 않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대도 하등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오~ 그래 맞구나 하면 되는 일입니다.


이렇게 하나씩 따져나가면 사실 중요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돈과 사업에 관련된 이야기, 목숨을 위협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중요한 것을 찾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정치나 종교 같은 이야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 이야기를 생존과 관련된, 우리의 삶과 아주 밀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 한 번 잘못 꺼냈다간 얼굴도 보기 싫을 정도로 말싸움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정치와 종교로 예시를 들었으나 여러 가지가 더 있습니다. 사람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판단력이 중요합니다. 중요한 일과 아닌 일을 명확하게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연습입니다. 누군가 주한미군은 한국에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때,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주한미군이 있건 없건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투표장에서나 중요하지 이 자리에서 중요한 일은 전혀 아닙니다. 누군가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있건 없건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이 자리에서 중요한 일은 전혀 아닙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나씩 구분하다 보면 많은 이야기들이 중요하지 않았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인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말과 행동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세계에서는 분명한 논리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를 부정하고 바꾸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이른바 부처님이나 가능한 일입니다. 부처님이 아니고서야 남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부처님이라 한 것은 그만한 지혜와 통찰력이 있어 상대방에게 알맞은 이야기로 단박에 깨우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또한 부처님이라는 권위가 필요합니다. 위대한 정치지도자, 마틴 루터 킹과 같은 위인들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이끌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위치에 올라 그만한 장소에서 아주 뛰어난 말재주와 갈고 닦은 통찰력이 뒷받침했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삶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공부도 해야 하고, 놀기도 해야합니다. 평생을 남의 생각을 깨우치는 것에 바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세계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만큼의 탄탄한 논리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데에는 그만한 삶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그만한 삶이 탄탄하게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는 일은 뒷받침하는 삶보다 더 커다란 지혜가 필요합니다.


불가능함을 알고 난 다음은 인정하는 것입니다. 얼토당토 않은 소리라도 그만한 일리가 있습니다. 허나 나에게도 그만한 뒷받침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함정은 받아들인다는 말이 나의 삶을 부정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구나, 그런 이유로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기만 하면 됩니다.


단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떡볶이에 설탕을 잔뜩 집어넣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세계에서는 단 음식이 제일 맛있는 음식이고, 그러려면 설탕을 잔뜩 넣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두고 떡볶이는 매운 맛으로 먹는 거니까 나는 설탕을 그렇게 넣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찝찝하지 않습니다. 너는 설탕 많이 들어간 단 걸 좋아하니까 많이 넣는구나 하면 끝입니다. 이렇게 인정합니다. 너의 세계에서는 그게 맞구나. 내 고집을 부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람의 세계에서는 그게 맞는 일입니다.


반대로 나에게 그 사람의 생각을 강요하더라도 받아들여줄 필요도 없습니다. 그건 너의 세계에서나 그렇지, 나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분리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와 남은 분리된 존재입니다. 각자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그 세계는 그냥 그렇구나 보면 됩니다. 어느 산골짜기에는 폭포가 있고, 어느 산골짜기에는 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마른 계곡이 있고. 그러면 그렇구나 하고 보기만 합니다. 다른 세계란 이렇게 그저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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