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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치 Aug 07. 2020

가만히 바라보면 괜찮아집니다

감정과 괴로움에 대처하는 방법

감정은 파도와 같아서 일었다가 사라집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즐거움이 계속해서 유지된다면 몸에 무리가 갑니다. 슬픔이 사라지지 않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호르몬의 동물이라고 하는데, 감정 역시 호르몬의 영향을 강하게 받습니다. 호르몬은 늘어나면 줄어들도록, 줄어들면 늘어나도록 자동 설정되어 있습니다.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는 것은 정신병입니다. 병원에 가서 약물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조증, 우울증이 그러한 경우입니다.


그래서 감정에 지나치게 매몰될 필요가 없습니다. 감정이 들면 드는구나 하면 됩니다. 한 발 떨어져서 ‘내가 지금 기쁘구나’, ‘내가 지금 슬프구나’ 하는 겁니다. 그 순간 차분해지면서 정신을 차릴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긴장하는구나’, ‘내가 지금 화가 나는구나’ 하는 것입니다. 파도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드넓은 바다에 파도가 일면 가만히 봅니다. 파도는 어느 순간 생겨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게 파도의 정체고, 실체가 없습니다. 파도가 사라진다고 희한한 일도 아니고, 일어난다고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마음은 바다와 같고, 감정은 파도입니다. 금세 일어 사라지는 파도를 두고 사람이 붙잡아 둘 수도 없습니다. 그렇듯 감정 역시 일었구나, 사라지는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만히 바라보면 괜찮아집니다. 문제는 가만히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감정이 일면 일었다고 호들갑을 떨거나, 나를 덮치면 어쩌지 두려워하거나, 바다에 상처를 입히면 어쩌지 하는 것입니다.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파도가 일었다고 바닷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감정이라는 파도는 우리를 덮치더라도 금세 바다로 돌아가 버립니다. 몸이 젖었다며 이에 집착하는 생각이 괴로움을 가져옵니다. 몸이 젖었으면, 잠시 기다리면 마르겠구나 하면 되는 것인데 젖었다고 짜증나고, 우울해지고, 화도 납니다. 이 역시 파도와 같아서 가만히 바라보고 기다리면 되겠구나 하면 됩니다.


이것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감정을 그대로 가만히 바라보는 것은 연습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말처럼 쉬웠다면 모두가 감정에 초연해졌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이란 파도를 목격한 후, 그것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빠져듭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기 때문에 더욱 괴롭습니다. 그럴 때는 한 발 더 떨어져서 파도가 이는구나, 사라지는구나 하면 됩니다. 사라지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한다면 파도와 같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기들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아기들은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충족하기 위해 행동을 할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울기도 하고, 화도 내고, 갑자기 웃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감정은 의사소통 수단입니다. 감정을 표출하는 것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다, 불편하다, 즐겁다, 불만족스럽다는 의사를 건네는 것입니다. 아주 강력한 소통 수단입니다. 어른들은 이에 맞춰 여러 선택지를 제공하고, 아이는 만족스러울 때 감정 표출을 멈춥니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감정 대신 말로 의사를 표시합니다. 이것을 배워나갑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감정의 표출 자체가 자신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압니다. 또 말로 하는 것이 더 빠르고 정확하다는 것도 알아갑니다. 그러나 이것이 잘 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은 초등학교, 중학교에 가서도 감정을 그대로 표출합니다.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 표출에 대응해줄 것을 바라고, 이것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감정 표출은 습관이 됩니다. 쉽게 떨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된 후에도 감정에 매몰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분이나 감정은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인데 이것으로 의사표출을 하고 싶어합니다. 아무런 쓸모가 없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바라보지도 못합니다.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는 일인데 자꾸만 이에 매달립니다. 이것이 아이와 어른을 가르는 차이입니다. 또 감정에 빠지는 것은 아이의 습관이 많이 남아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감정에 빠져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연습 방법이 있습니다. 마음 속에 어린 아이가 하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감정이 들 때 이 어린 아이가 또 파도를 보고 호들갑을 떠는구나 하면 됩니다. 마음 속의 어린아이라는 말이 오그라들 수 있습니다만 실제가 그러합니다. 성인이 되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어른스러워집니다. 두뇌 발달이 그러하고, 사회적 교육이 그러하며, 법적으로 성인이 된다는 것은 어른스러운 생각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마음 속의 어린 아이를 한 명 둔다면,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감정이 파도라는 것을 알고, 감정이 일어남과 사라짐에 휩쓸리지 않으며, 그대로 가만히 바라볼 수 있게 됐습니다. 다음은 행동입니다. 사람은 행동을 하기 때문에 살아갑니다. 감정이 들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움직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가만히 바라보는 것은 다음 행동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것입니다.


감정에 빠지면 다음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괴롭습니다. 방향이 사라지고, 방향을 찾을 힘도 사라집니다. 가만히 바라보는 것은 그런 힘을 만들고, 힘을 쓸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음 행동을 하면, 그 순간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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