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치 May 10. 2021

국어 능력이 부족해 수학 문제를 못 푸는 학생들

시험이 사라진 학교

학생들 중에는 문제를 풀고 싶어도 못 푸는 학생들이 많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이유다. 글자를 아무리 읽어도 상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어떤 수와 30의 합은 어떤 수를 4배 한 것보다 3만큼 크다. 어떤 수를 구하여라.

2. 학생들에게 연필을 나눠주려고 한다. 한 학생에게 3자루씩 나눠주면 4자루가 남고, 5자루씩 나눠주면 4자루가 부족하다. 학생 수를 구하여라.

3. 민수가 집에서 학교를 갔다 오는데, 갈 때는 시속 4km의 속력으로 걸어가고, 올 때는 시속 6km의 속력으로 뛰어 온다. 왕복하는 데에 총 5시간이 걸렸다고 할 때,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를 구하여라.


중학생들이 말만 들어도 위축되는 ‘활용’ 문제다. 일차방정식을 이용해서 풀어야 한다. 풀이 방법은 간단하다.

1. 어떤 수=x, x+30=4x+3, x=9

2. 학생 수=x, 3x+4=5x-4, x=4

3. 거리=x, x/4+6/x=5, x=12


x를 정하고, 식을 세우고, 일차방정식을 풀면 된다. 공부를 조금이라도 한 성인이라면 ‘그냥 문제 읽고 식 쓰면 되는 거 아니야?’ 할 간단한 수준이다. 가르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상황 자체를 이해 못하는 것이었다.


즉, 1번 문제를 봐도 어떤 수가 나왔는데 그 다음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연필을 나눠주는데 몇 개씩 나눠주고, 몇 개가 남고, 이해가 안 된다. 집에서 학교를 간다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왕복한다는 상황을 머릿속에 그릴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그러니까 기본 상황에서 한 단계만 더해도 알아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든 이해하도록 설명 방법을 궁리했다. 상상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들려줬다.

네가 학교를 가, 가는데 얼마나 걸려? 그럼 학교에서 수업 마치고 집에 올 때는? 그럼 학교에 갔다 오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30분, 30분, 더하면 1시간.

여기까지는 이해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휘발되기 전에 바로 문제에 적용한다. 민수가, 학교에 갔다 오는데, 주어진 왕복 시간이 5시간, 갈 때 시간과 올 때 시간을 더하면 5시간. 갈 때 시간을 구하고, 올 때 시간을 구하면 식을 세울 수 있다. 구해야 하는 것이 거리니까 x라고 놓고, 시간=거리/속력이니 각각 x/4, x/6. 더하면 5시간. 그래서 x/4+x/6=5. 여기서 x를 구하는 건 기계적으로 하면 된다. 문제에 답이 있다는 말은 ‘왕복 시간’이 주어졌으니 시간에 관한 식을 세우면 된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설명 과정에서 자기 이야기일 때는 이해를 하는데, 민수 이야기로는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몇몇 학생들이 막힌다. 다음 막히는 지점은 갈 때 시간과 올 때 시간을 더하면 5시간이 된다는 것. 여기서도 막히곤 한다. 다음은 4/x, 6/x를 더해서 5가 나오는 식을 쓰는 것이다. 여기서 많이들 막힌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 중 절반 정도는 어려워 했다. 각각의 과정을 전부 별도의 단계로 느끼고, 하나하나마다 어려움을 겪는다. 상황 파악, 이해, 식 세우기.


이 글에서 다루고 싶은 부분은 문제를 읽어도 ‘왕복하는 시간이 나와 있으니 갈 때 시간과 올 때 시간을 더하면 된다’는 것을 떠올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학교에 갔다 오는데 시간이 어떻게 걸리는지를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의 능력 부족이 심각하다고 느꼈다. 이런 학생들에게도 이해가 쏙쏙 되도록 만드는 것이 명강사라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써봐도 도저히 되지가 않는 학생들이 있었다. 사실 쉬운 방법이 있긴 하다. 가장 쉬운 방법. 문제별로 풀이 과정을 외우도록 만드는 것이다. 최후의 보루이자 치사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갔다 온다, 총 시간, 왕복한다는 말이 있으면 갈 때 시간, 올 때 시간을 거리/속력으로 딱 써서 딱 풀게 만드는 것이다. 계속 비슷한 문제로 연습시켜 숙달시키면 된다. 그런 식으로 각기 문제 유형마다 풀이 방법을 ‘훈련’시킨다. 소위 ‘쉬운 교재’들은 다들 그런 식이다. 필수 유형이라고 이름 붙인 다음 문제 유형을 몇 가지 집어 넣고, 강아지 훈련 시키듯 하나하나 과정을 외우게 만드는 것이다. 어떤 시험이든 난이도 별 문제가 있고, 하~중 난이도 문제에는 반드시 나올 만한 유형이 있다. 잘 훈련된 학생들은 문제를 보자마자 제대로 읽지도 않고 슥슥 기계처럼 문제를 풀어낸다. 그러면 적당히 중위권 점수는 나온다.


이런 방법은 쓰기 싫었다. 다른 학원에서 배우다 온 학생들 중 대부분이 이런 방식으로 해왔던 것이 딱 보였다. 그 학생들은 조금만 문제가 틀어져도, 같은 풀이의 다른 상황이 주어져도 막혀버린다. 이해하지 않고 풀이만 달달 외웠으니 말이다. 소위 ‘양치기’ 방법이 이런 비슷한 것이다. 고등학생 양치기와 중학생 양치기는 좀 다르다. 중학교 수학이야 유형이나 개념이 워낙 적고 한정적이다 보니 각각의 풀이 방법을 엄청난 양의 문제를 풀며 외울 수 있다. 그 학원 선생님들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다들 나보다 오래 하고, 신념도 확고한 분들일 테고, 어떻게든 아이가 수학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풀이를 외우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면 일단은 시험도 잘 보고, 자신감도 커지니 말이다. 학부모, 학생, 선생 모두가 만족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건 13, 14살짜리 어린 애들에게 하기에는 좀 잔인하지 않나. 기계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언제나 시간이 부족한 느낌이다. 학생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식을 세워 풀 수 있게까지, 시간이 부족하다. 가르칠 내용은 수두룩한데 아이가 이해하고 문제를 풀고 시험까지 보려면 하루가 모자라다. 어떤 학부모들의 인내심은 삼다수 뚜껑보다 작다. 그래서 학원을 다니든, 과외를 시키든, 돈을 쓰고 가르침을 받도록 했으면 딱딱 결과가 나오기를 바란다. 그러니 풀이를 외우게라도 시켜서 문제집이라도 잘 풀고, 학원 시험이라도 잘 봐야 만족한다. 이런 와중에 학생이 제대로 이해하기를 기다리기는 무리다. 무리.


더군다나 문제를 읽어도 이해 자체를 못하는 학생들은 더욱 어렵다. 문제의 상황을 설명해 보래도 하지를 못한다. 선생이 물어봐서 압박이 느껴졌던 걸까. 그럴 수도 있겠다. 선생에게 대답할 때는 일목요연 딱부러지게 대답해야 한다는 인식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학생들이 있는 반면 다른 건 대답을 잘하다가도 상황이 주어진 문제가 나오면 막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대답 여부와 관계없이 이해를 못하는 건 분명하다. 전혀 풀지 못하니까. 식조차 세우지 못하고 말이다.


국어 실력이 문제다. 두세 문장 정도만 되어도 상황 이해를 못한다. 어릴 때 책을 읽지 않은 것인지, 부모나 선생 등, 어른들과 대화를 많이 하지 않은 것인지 의심이 된다. 말을 못하는 건 물론, 읽어도 모른다. 아주 친절하게 전래동화 구연하듯 설명하면 그나마 이해한다. 사실 갑갑하기도 했다. 어떻게든 설명을 해주고,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싶은데 안 되니 말이다. 뭘 보고, 뭘 듣고 살았을까 생각도 들었다. 이 학생들은 친구들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살까,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표현 못하지 않을까 했다. 나는 과대해석이 심한 편이다.


책을 읽고, 많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 복잡한 상황을 읽고 머릿속에 그려 보고, 어른과 대화를 하며 자기가 생각하는 상황을 차분히 말로 풀어내고, 표현하고. 그런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야 수학을 잘할 수 있고, 중학교를 지나면 과학도 잘할 수 있고, 대학을 가면 수학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 문과도 물론이다. 수학이 반드시 들어가는데 어떤 상황 속 관계들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며칠 전에 학교 시험이 다 사라져 버려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한다며 심각하다는 글을 봤다. 일견 이해가 된다. 학생들은 시험이 없으면 공부를 기본적으로 안 하고 싶어 한다. 시험이라는 압박이 있어야 공부도 하고, 점수가 낮으면 속상해서 공부를 더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내가 어느 부분을 못하고 잘하는지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또 줄을 세워 놔야 누가 잘하고 못하는지 알 수 있고, 내 아이가 특목고에 갈 수 있는지, 좋은 대학에 갈 만한 재목인지도 알 수 있고 말이다.


그런데 시험이 없어진 데에도 큰 결단이 있었다고 본다. 난 학생들에게 ‘시험은 자기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얼마나 잘하는지 뽐내는 자리’라고 가르쳤다. 내가 학생 때 그런 생각이 있었다. 물론 못 볼 때도 있다. 못 보면 못 보는 대로 좋다. 내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알 수 있고, 그 부분을 조금 더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다. 참 좋은 기회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학생은 단언코 단 한 명도 없다. 어떤 학생이라도, 누구나 공부를 잘하고 싶다. 안 그런 것처럼 보여도, 잘하고 싶다면서 맨날 게임이나 하고 있어도 마음은 진심이다. 그런데 마음처럼 안 돼서 문제다. 그런 와중에 시험이라도 못 보면 괴로움이 커진다. 잘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 되고, 노력해도 안 된다. 그런데 시험은 다달이 있고, 매번 볼 때마다 못 보고, 시간은 부족하고, 나는 더디고, 잘하고 싶고, 그게 안 되고, 나는 매번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 받는다. 게임도 해야 하고, 놀아야 하고, 유튜브도 봐야 하는데 공부를 할 시간이 없다. 그런데 시험은 또 있고, 나는 시간을 쏟아 부어도 잘 이해가 안 된다. 그러니 공부를 잘하고 싶지만 하기는 싫다. 이게 결론이다. 많은 학생들이 마음 속에 이를 안고 산다. 잘하고 싶은데 하기는 싫다. 결론만 봐서는 어른들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물론 어른이라고 다 ‘잘하고 싶으니 더 열심히 해야지’를 실천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어른은 그러지 못하고 산다. 그런데 애들인데, 과연 그걸 할 수 있을까.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은 시험이 없어진 건 꽤 괜찮은 결과라는 것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학생은 없다. 시험은 사실은 굉장히 좋은 공부 기회이지만, 더딘 학생들의 기를 꺾는 역효과가 아주 크다. 내가 누구보다 잘하고, 누구보다 못하는지, 그게 사실 중요한가. 수능 시험에나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모의고사나 치고, 수능이나 쳐서 줄 세우면 되는 것 같다. 모든 시험의 목표 점수는 100점이다. 한계가 없어 끝없이 점수를 따는 체계가 아니다.


학업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없다. 수행평가나 간단한 퀴즈, 테스트로도 족하지 않나. 선생 별 담당 학생수가 줄어드는 것이 먼저고, 기를 꺾지 않는 것이 먼저다. 당장 시험부터 없앴지만 학부모들의 욕구는 없어지지 않았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학생에게 수학 시험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