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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Dec 05. 2020

나의 아름다운 방에게

원룸 철거 통보를 받은 날

안녕, 나는 너와 함께 3년을 지내온 작은 사람.

오늘은 네가 철거된다는 통보를 받았어.

그날이 오기 전에 나는 너를 떠나야 하고,

너는 세상 속에서 영영 사라지겠지.

그래서 처음으로 편지를 쓰고 싶어 졌어.

우리의 이 초라한 젊음을 달래기 위해.

아무도 듣지 않을 노래가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만나 처음으로 혼자 잠드는 법을 배웠지.

엉엉 울어도 아무도 와주지 않는다는 사실과

전화를 할 땐 목소리를 밝게 내야 엄마가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어.

외로웠지만, 온전히 나일 수 있었던 이 다섯 평의 방에서 조금씩 어른이 된 나.

아침은 늘 비장했고 밤은 한없이 간절했던 그 시절에

넌 나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원망할 대상이 필요할 땐, 너를 이용했어.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려면,

작은 저항을 하고 돌아와 떨리는 손을 다독이려면,

악몽을 꾼 밤이면, 네 작고 깊은 어둠을 탓했지.

돈이 많지 않아서, 방이 작아서,

신발장에 서서 설거지를 해야만 하는 나는 너를 한없이 미워하고 숨기며

언젠가 나를 찾아와 줄 아름다운 방을 꿈꿨지.   

   

다시는 이런 곳에 살지 않겠다고 다짐할 때마다,

너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안쓰러웠을까, 화가 났을까, 속상했을까, 아니면 너도 똑같이 내가 미웠을까.


    

3년 전 아주 추웠던 12월, 아침부터 저녁까지 며칠을 부동산을 배회하다 너를 만났어.

그때, 내가 널 보자마자 좋아했던 이유가 뭐였는지 알아?

별들이 박힌 우주와 빨간 집이 그려진 낡은 벽화.

이제 막 사회초년생이 될 나는 그 그림에 남몰래 희망을 품었거든.

어린 왕자가 사는 별, 장미를 심으면 사랑하는 마음을 배울 것 같은 옛날 동화 있잖아.

서울에서 살아남으려고 자꾸만 나를 시도하고, 시도하던 퇴근길에

계단을 올라오며 만나는 그 희망은 볼 때마다, 만날 때마다 참 환하게 반가웠는데.   

  


슬픔을 모두 거두어서 이곳을 떠나는 게 너를 위한 일이라 마음 먹어.

이제는 다음 사람이 없을, 이 방이 살아온 마지막을 내가 지켜보는 거니까.

나를 담아주었던 너라는 공간을 사랑과 그리움으로 달래어 보내 줄 거야.


언젠가 허공에서 다시 우리의 젊은 날을 만나게 된다면, 꼭 전하고 싶다.

너를 온전히 바라보지 않아서 미안해.

너의 아름다움을 한번도 자랑해주지 않아서 미안해.

어두운 골목에 섰을 때,

 나의 가장 밝은 빛이 되어주던 유일한 자리.

너는 나의 이십 대의 전부야.

고생 많았던 나의 작은 방, 기쁨만 취하이제 푹 잠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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