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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Nov 26. 2019

네가 나의 도착점일까?

드라마를 시작하는 마음

마음대로 몸을 움직이거나,

마음마저도 쉽게 내어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혼자 방 안에 숨어 잠드는 게 전부인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의 하루에 밝은 빛을 내어주고 싶다면, 우리의 삶이 서로 닮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늘과 결핍은 누구에게나 존재해서,

오지랖인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다가가서

그 투박한 손을 만지고 싶어진다.



나는 강원도 강릉의 바닷가 마을 태생이다. 

동네 친구들이랑 숲 속에서 콩벌레를 잡고 놀았고 심심하면 모래사장에 나가 노을 지는 동해를 구경하곤 했다.

그때 TV에는 ‘빨간 망토 챠챠’라는 만화가 유행했는데 골목 대장까진 아니었지만,

‘빨간 망토’의 주인공쯤은 되고도 남았다.

옆집 사는 민기랑 민아는

빨간 망토 수비대의 일원이었다.

민아는 ‘희망’을, 민기는 ‘용기’를

나는 ‘사랑’의 주문을 담당했다.

내가 마지막 단어를 외치면 우리는 힘차게 ‘크로스!’를 합창하며 허공에 손을 모았다.

집게와 비닐봉지를 양손에 들고 마을의 쓰레기를 줍는 것이 악당을 물리치는 일과였다.

두더지나 새, 잠자리가 죽어 있으면

꽃을 뜯어와 무덤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 땐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저 재밌어서 했다.


아홉 살에는 바닷가를 떠나 도심으로 왔다.

민아와 민기는 없지만, 혼자라도 외칠 수 있는 유일한 주문, ‘사랑’이 있었다.

도시에는 쓰레기와 죽은 동물들이 더 많았다. 장마철이 끝난 놀이터에는 뙤약볕 아래 말라 죽어가는 지렁이가 즐비했다.

엄마는 지렁이가 흙을 수백 번 씹어

땅을 부드럽게 해주는 착한 생물이라고 했다.

지렁이의 숭고함에 감명받은 나는 그 날 일기장에 지렁이 백 마리를 구해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썼다. ‘으웩’하며 신음을 뱉으면서도 지렁이를 나뭇가지 위에 올려 그늘에 데려다 주는 모험을 즐겼다.

나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빨간 망토 챠챠’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열 한 살에는 백일장에 나가 시를 썼다.

선생님의 마티즈를 타고

봉평 메밀꽃 축제도 가고 육군부대도 갔다.

상장을 받아오면 선생님과 엄마가 좋아했다.

학교 수업을 빠질 수 있는 기쁨이 있었다.

삶이 뭔지도 몰랐으면서 삶을 아는 척지만,

그 의기양양함이 예쁘던 때였다.


열 네 살에는 유서를 썼다.

망토 대신 교복을 입은 사고뭉치가 되었다.

친구가 생겼고, 그 애들이 좋았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돈이 없어 알바를 하던

그 애들은 어떤 식으로든 결핍이 있었다.

나는 그 애들이 가진 결핍이 좋았다.

나에게는 친구였던 아이들을, 

세상은 ‘일진’이라고 불렀다.

어른들은 아무도 일진을 믿어주지 않았다. 선생님이 학교에 엄마를 호출했다.

죄지은 게 없지만, 죄목이 생겼고

비밀 유서를 썼지만, 죽지는 않았다.

화장실 변기에 종이를 벅벅 찢어 물을 내렸다. 하얗게 풀어지는 글자들이 몽롱한 꿈 같았다.


열 일곱 살에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로 사람이 죽고

누군가 크레인에 올라갔다.

한미 FTA에 반대하다 연행되던 농민은

사지를 붙들리면서도 울다.

다시 일기장을 꺼냈다.

이번에는 소외된 사람 백 명을 구해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썼다.

기자가 되려고 국문학과에 진학했지만,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내 한계를 인정해야 했다.

‘기자가 아니어도 글은 쓸 수 있고,

사람을 도울 수 있다.’

그런 생각으로 간호학과를 선택했다.


스물 한 살에는 동화를 썼다. 

6개월 간 원고를 쓴 후, 마지막으로 일러스트레이터를 만나 삽화 아이디어를 나눴다.

그 사이 사장은 함께 작업하던

언니, 오빠들을 다 해고했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언니들은 울면서 떠났다.

남겨진 나는 동화가 더러워지는 걸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고 그 곳을 나왔다.

아직은 아름다운 원고 삼십 장을 손에 들고서.


스물 네 살에는 간호사의 일기를 썼다.

뇌종양, 자궁암과 같은 신체적 질병뿐만 아니라 우울증, 조현병과 같은 정신적 질병을 가진 환자들을 만났다.

간호를 했다기보다는 혼자만의 고군분투에 불과했을 것이다.

일상에 치여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주질 못했다.

나는 나의 한계를 한 번 더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더 강해져야 했다.

‘평생 누군가를 돌봐주고 싶다면,

나 자신부터 돌보는 법을 배우자.’

그렇게 다시 일기장을 폈고

글을 쓰며 치유하는 삶을 되찾았다.

일기를 쓰고, 시를 쓰고, 유서를 썼던 시절처럼. 혼자서도 얼마든지 사랑을 외쳤던 ‘빨간 망토 챠챠’처럼.




작년 겨울, 처음으로 드라마 대본을 썼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드라마란

사람을 살 맛 나게 하는 것임을 느꼈다.

비단 드라마 뿐인가,

사람이 만든 모든 이야기들이 그렇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이 지독한 인생의 여정에는 장애물과 행운이 깊은 굴곡을 그리며 이어진다. 길하고 흉하고를 떠나서,

어찌되었건 이 모든 것을 끌어안고

죽을 때까지(말 그대로 심장이 멈추거나

 뇌가 정지할 때까지) 살 수 밖에 없는 게 삶이다.

그리고 살 맛이라는 건 아흔 아홉 번의 죽을 맛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이유다.

누군가에게는 음식이, 꿈이, 돈이, 가족이,

살 맛이 되어 그늘과 결핍을 채워준다.

단 한 사람의 이야기가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건강하고 위트 넘치는 생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고 싶다.

오지랖인 걸 알면서도, 부족한 작가 나부랭이인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이 투박한 마음을 내보이고 싶어진다.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주문이자 내가 외칠 수 있는 유일한 주문이 ‘사랑’이라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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