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방에게
원룸 철거 통보를 받은 날
안녕, 나는 너와 함께 3년을 지내온 작은 사람.
오늘은 네가 철거된다는 통보를 받았어.
그날이 오기 전에 나는 너를 떠나야 하고,
너는 세상 속에서 영영 사라지겠지.
그래서 처음으로 편지를 쓰고 싶어 졌어.
우리의 이 초라한 젊음을 달래기 위해.
아무도 듣지 않을 노래가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만나 처음으로 혼자 잠드는 법을 배웠지.
엉엉 울어도 아무도 와주지 않는다는 사실과
전화를 할 땐 목소리를 밝게 내야 엄마가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어.
외로웠지만, 온전히 나일 수 있었던 이 다섯 평의 방에서 조금씩 어른이 된 나.
아침은 늘 비장했고 밤은 한없이 간절했던 그 시절에
넌 나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원망할 대상이 필요할 땐, 너를 이용했어.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려면,
작은 저항을 하고 돌아와 떨리는 손을 다독이려면,
악몽을 꾼 밤이면, 네 작고 깊은 어둠을 탓했지.
돈이 많지 않아서, 방이 작아서,
신발장에 서서 설거지를 해야만 하는 나는 너를 한없이 미워하고 숨기며
언젠가 나를 찾아와 줄 아름다운 방을 꿈꿨지.
다시는 이런 곳에 살지 않겠다고 다짐할 때마다,
너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안쓰러웠을까, 화가 났을까, 속상했을까, 아니면 너도 똑같이 내가 미웠을까.
3년 전 아주 추웠던 12월, 아침부터 저녁까지 며칠을 부동산을 배회하다 너를 만났어.
그때, 내가 널 보자마자 좋아했던 이유가 뭐였는지 알아?
별들이 박힌 우주와 빨간 집이 그려진 낡은 벽화.
이제 막 사회초년생이 될 나는 그 그림에 남몰래 희망을 품었거든.
어린 왕자가 사는 별, 장미를 심으면 사랑하는 마음을 배울 것 같은 옛날 동화 있잖아.
서울에서 살아남으려고 자꾸만 나를 시도하고, 시도하던 퇴근길에
계단을 올라오며 만나는 그 희망은 볼 때마다, 만날 때마다 참 환하게 반가웠는데.
슬픔을 모두 거두어서 이곳을 떠나는 게 너를 위한 일이라 마음 먹어.
이제는 다음 사람이 없을, 이 방이 살아온 마지막을 내가 지켜보는 거니까.
나를 담아주었던 너라는 공간을 사랑과 그리움으로 달래어 보내 줄 거야.
언젠가 허공에서 다시 우리의 젊은 날을 만나게 된다면, 꼭 전하고 싶다.
너를 온전히 바라보지 않아서 미안해.
너의 아름다움을 한번도 자랑해주지 않아서 미안해.
어두운 골목에 섰을 때,
늘 나의 가장 밝은 빛이 되어주던 유일한 잠자리.
너는 나의 이십 대의 전부야.
고생 많았던 나의 작은 방, 기쁨만 취하고 이제 푹 잠들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