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Cocamaria
Oct 22. 2024
"인어는 새벽 3시쯤 푸른 안개가 짙게 깔리면 볼 수 있어"
"새벽 3시쯤?"
"응"
"어째서 새벽 3시여야 하는 거야? 안개는 꼭 파래야 하는 거야?"
반항적인 어투로 묻는 나의 질문에 창밖을 보고 있던 언니가 고개를 돌려 살짝 웃어주었다.
"새벽이어야 사람이 별로 없지~ 그리고 날이 쨍쨍하면 인어가 몸을 어디다 숨기니. 인어는 그렇게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그렇게 말하며 다시 창 밖을 향한 언니는 푸른빛에 감싸여 신비롭게 보였다. 물론 나는 언니의 말을 믿진 않았지만, 그 뒤로 왠지 새벽녘에 일찍 일어나는 버릇이 생겨난 것 같다.
언니는 정신지체 장애자였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말을 하다 보면 아 이 사람은 좀 이상하구나 라는 걸 미묘하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이상했다.
그래도 난 한 번도 언니를 부끄럽게 여긴 적이 없었다. 언니는 얼굴도 예쁘고, 또 나를 누구보다 예뻐했으니까.
흔히 티브이에서 보던 장애인처럼 입에 침을 질질 흘리거나 팔을 이상하게 어그러뜨리지도 않고, 겉모양새만 보면 양가집 참한 규수 같은 언니는, 드러낸 적 없는 나의 작은 자랑이었다.
다만 집중력이 남들보다 현저히 떨어져서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오래 이야기한다거나, 개연성 있게 어떤 사건을 설명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빨리 달리려면 역시 복숭아지!"라거나, "아프려면 좀 더 빨래를 열심히 하는 게 좋아요"같은,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 문장을 얘기하고 혼자 깔깔대는 그런 식의 대화가 언니와 타인과의 사이에 종종 이루어졌다.
처음 언니를 접한 사람이면 정신이 아프다는 소리를 들어도 겉모습이 너무 멀쩡해서 별다른 인식을 못하고 대화를 한다. 그러다 금세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그 후 아이를 상대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상냥하게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런 언니가 인어 얘기를 할 때면 다른 때와 달리 굉장히 멀쩡한 사람처럼 열심히 내게 이러저러한 것들을 설명하곤 했다.
"인어는 말이야"
어느 날은 또 새벽녘에 나를 깨우더니 두서없이 얘기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데도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걸 죽기보다 부끄러워하지 "
"하지만 그런 수줍은 모습에 속아선 안돼. 가까이 다가가면 그녀들은 생각보다 잔인한 면모를 보이거든."
"언니는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신기한 표정으로 묻자 일순간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매우 조심스럽게 입가에 손을 대며 이렇게 얘기했다.
"그건 말이지..... 비밀인데.. 안갯속에서 자꾸 들려와...."
"....."
"들려... 웅얼웅얼... 마치 들으란 듯이... 사실 지금도 들려... 그리고 자꾸 커져.. 그 소리가.."
심각하게 마치 굉장한 비밀을 얘기하는 듯 작게 말하는 언니를 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에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홀린 듯이 다시 안개를 바라보는 언니를 뒤로 하고 너무 졸려서 잠들어 버렸다.
그리고 몇 시간 후일까
다시 일어났을 땐 집안이 발칵 뒤집혀 있었다.
창가에 언니는 더 이상 보이질 않았고 침대에 내려와 거실로 나가니 온 가족이 분주히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어딘가로 끊임없이 전화통화를 하는 어머니를 지나쳐 심각해 보이는 아버지를 향해 무슨 일이에요? 하고 물어보자 언니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 새벽녘, 나와의 짧은 대화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한순간 소리 없이 사라진 것이다.
어떤 기척도 예고도 없이
그렇게 한순간에.
...
어느 날 언니가 예고도 없이 사라졌다.
부모님을 비롯한 모두가 납치를 당한 건 아닌지, 길을 잃어버린 지 걱정하며 찾았지만 누군가 장난이라도 친 것인지, 어디에서도 언니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건 cctv를 돌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열심히 수색을 계속하면서 나에게도 짐작되는 게 없냐고 물어봤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언니가 새벽녘, 인어를 만나 다른 세상으로 가버린 것 같아요 라는 말은 동화와 현실을 구분하는 성인이라면 입으로 내뱉을 수 없는 말이니까. 특히 걱정으로 저렇게 심각하게 얼굴을 굳히고 있는 가족들에게 라면 더더욱.
가족과, 아끼던 나마저 버리고 한순간 소리 없이 가버릴 만큼 언니는 인어를 따라가고 싶어 했던 걸까.
아니 정말 인어를 따라간 게 맞기는 맞는 걸까.
지금에 와서는 알 수가 없다.
언니는 더 이상 내 곁에 없기에.
다만 그날 이후 새벽 세 시가 되면 나는 지금도 종종 저절로 눈이 떠지곤 한다. 그리고 창 밖에 깔린 짙은 안개를 보며 예전 그때의 언니에게 들었던 말이 자연히 떠오르는 것이다.
인어는 말이야
새벽 3시쯤 세상에 어렴풋이 자신을 드러내 보인단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라도 안개 너머에 언니가 인어와 함께 나를 마중 나와 있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하고 생각한다.
계속 그렇게 고민하며 안개를 쳐다보고 있다 보면 안개의 색깔은 점점 푸르게 짙어진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다시 잠이 몰려와 멍하게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다시 뜨고 나면 짙은 안개는 언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다. 대신 그 자리는 따스한 햇살이 차지해 구석구석 비추고 있다.
나는 느릿느릿 일어나 부엌으로 걸어간다. 씻고 아침으로 먹을 간단한 토스트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언니의 환영을 짙은 푸른빛 안개가 도는 생각의 방 어딘가에 가둬 두고 오늘도 어제와 같은 일상을 시작한다. 나만의 일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