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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Nov 13. 2023

오스트리아 미술관 여행의 고단함

삶은 예술로 빛난다 책리뷰

한 달 전에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면서 미술관의 방대한 예술작품을 마주했을 때가 떠올랐다. 초반에는 열심히 화가와 제목, 설명을 읽었다가 1시간이 지나고, 매번 그런 식으로 관람하는 게 지쳐버렸다.


원래는 클림트 작품만 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미술관에들어서자 다른 화가들도 저명한 사람들이기에 다 봐야만 한다는 욕심이 났다. 그리고 지금은 어떤 것도 기억나지 않고, 원래 보려고 했던 클림트, 하나 더 하자면 뜻하지 않게 좋았던 무하의 작품만 떠오른다.


나는 예술을 좋아하는 편이고 어떤  전시든 작품을 보는 걸 즐겨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 미술관 여행은 고단한 기억이 앞선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작품을 봐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내가 예술을 보고 정답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작품 스스로 어떤 정답을 말하지 않는데, 왜 우리가 그 작품에 대해 생각하고 느낀 점에 의구심을 가져야 할까.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점에 확신을 가져도 된다. 확신을 가져야 그 작품을 진정으로 음미할 수 있다. 253쪽


작품이 그려진 시대적 배경, 화가의 일생과 같은 배경지식 없이도 그림을 보면서 대화했던 순간이 있다. '비웃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에곤 실레 그림은 너무 강열해서 소장하고 싶진 않아'라고 말했던 사소한 대화들만이 나만의 예술세계일 것이다.


예술가 각자가 고안한 예술의 정의에 따라 예술작품은 창조된다. 우리 각자가 고안한 '삶의 정의에 따라 삶은 펼쳐진다. 258쪽


예술작품에 심오한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고, 이 작품을 이해하려면 더 공부해야 한다고, 그래야 더 많은 게 보일 거라고 압박을 느끼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것들은 올바른 해석이 아닐 거라고 치부해버리고 말았던 것 같다.


미술관 여행이 고단함만 남은 건 아니다. 끝내 클림트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나는 황금시대의 작품 말고도 다양한 그림을 보게 됐다. 동일 인물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변해버린 화풍을 보며 신기해하다가 클림트가 정원을 보게 됐다. 다양한 정원의 모습이 많았다. 그중에 아래의 그림을 골랐다. 뭐하나 강하게 튀지 않으면서도 작은 꽃들의 존재감이 무성한 이 그림을 계속 쳐다보게 됐다.


굿즈숍에서 결국 이 그림을 구매했다. 인터넷으로 배송받는 게 더 편리하겠지만 꼭 이 곳에서 사서 직접 가져가고 싶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오랫동안 빈 거실 액자에 넣었다. 덕분에 거실에 작은 화원이 생겼고 그 옆으로 종종 꽃을 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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