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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Aug 23. 2022

자책감이 주는 쾌감

정지우,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책리뷰

내 스스로 나를 설명하자면 부정적인 편이었다. 끈기와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도 싫어하면서 꾸준히 하고 있다. 이정도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차마 꺼내지 못할 콤플렉스도 있다. 유튜버 빠더너스의 문상훈이 말로 할 수 있는 건 콤플렉스가 아니라고 하던데,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타인에게 말할 정도의 자학이나, 자신의 단점, 자책 모두 어느 정도까지는 말할 수 있지만 저 밑바닥에 있는 수치스러운 일은 드러내기 힘들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지금 내가 하는 자책감은 비하가 아니라 오히려 우월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타인에게 평가받을 존재가 아니라, 내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표현방식이 '자책감'이니 겸손하기까지하다.


그러나 자책을 인식한 이후로는 자꾸 그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이나 이 시점에 생각이 머물렀고 그 이상의 행동이 없다고도 느껴지며 다시 자책하기를 반복했다. 가만히 떠올려보면 자책감은 교묘한 쾌감을 주기 때문에 그 자체로 중독적이다. 중독이 목적이니까 나는 자책만 하면 되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무언갈을 깨달았다는 기분, 성찰했다는 도취감에 빠져들었다. 


자책감 또한 중독적인 쾌감을 불러올 수 있다. 스스로를 꾸짖는 일은 그 자체로 자신이 보다 나은 삶에 대해 알고 있다는 '앎의 쾌감'을 준다. 자책감이 일종의 피학적인 쾌감을 동반하는 이유는 '꾸짖는 자'와 '꾸짖음을 당하는 자'가 결국은 모두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문학인, 철학자, 성직자 중에 상당수가 평생에 걸쳐 자책감에 몰두하는 이유는 그만큼 자책감이 주는 '확인의 쾌감'이 강렬하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나를 꾸짖을 때, 드높은 위치의 현인이나 스승이된다.


더 나아가 자책하는 것이 일종의 스스로에게 가스라이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주로 부정적인 평가를 스스로에게 내리고 그 함정에 빠져서 나오질 못하니 무기력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가스라이팅 하는 사람도 나이고, 당하는 사람도 나이다. 내가 둘 중 어떤 위치에 더 몰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두가지에서 반복될 뿐이다.


책을 읽고 친한친구에게 하소연 하면서 은근히 자책 많았던 나의 습관을 직면하게 됐다.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줘도 내가 믿는 진실은 따로 있었으니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꽤 힘들었을 것 같다. 반성하고 바꿀 마음이 있는 것인지, 자책만하고 일시적인 쾌감을 따를지는 끊임없이 고민해야하는 일이다.

 

어느날 직장 선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울씨는 진취적이고 삶을 이끌고 나아가려는 자유로운 사람 처럼 보여요' 그 다다음날에는 다른 어른이 '젊은 사람답지 않게 예의바르고, 긍정적이고 밝다'고 말해줬다.


이 말이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나에게 한없이 부족한 면이고 앞으로도 갖기 힘든 성질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사람들을 동경하기에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그들의 행동을 따라해보긴 했다. 긍정적이고 밝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말해줬다. 믿기지 않지만 이제 이런 칭찬에 더 귀기울이고 싶다. 자책하기보다 내안에, 주변 사람들의 좋은 말을 담아 듣겠다.


좋아하는 브런치 작가 단단님과 함께 공부모임을 했던 적이 있다. 그분의 글과 말을 보면서 나와 굉장히 비슷한 구석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분은 노션에 칭찬서랍을 만든다고 했다. 누가 언제 무슨말을 나에게 해줬는지 메모해두는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간지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칭찬서랍에 내가 모든 말을 넣는 것도 아니고 특별하게 나에게 와닿는 말들, 칭찬이 아니더라도 진심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들은 칭찬에 속한다고 생각해서 서랍의 범위를 넓혔다. 지금은 마음이 우울해질때마다 한번씩 서랍을 꺼내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말은 꼭 넣어놓는다.  자책하기보다 나를 긍정하고, 나를 진심으로 바라봐주는 사람들의 말에 더 힘들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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