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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Mar 04. 2024

부모님 집에 세라젬이 없으면 불효인가

효도아이템

우리 집에 신혼살림들이 하나 둘 채워지고 있다. 이미 살고 있는 집이라 많은 더 들어올만한 것들은 많지 않았다. 그중에 예비 남편(B)의 로망인 세라젬은 입이 닳도록 말해왔기에 알겠다고 했었다. 한 번도 세라젬을 갖고 싶었던 적 없어서 내 반응은 늘 시큰둥했다. 그래서 계속 물어봤던 것 같다. 나는 처음엔 시큰둥했는데 간절한 마음을 알게 되고 사도 괜찮을 것 같았다. B는 차에도 옷에도, 명품에도 별 관심 없고 큰 소비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이 정도는 큰 무리가 아니었다.


회사 옆에 세라젬 웰카페가 있어서 종종 직원들과 가기도 했다. 자극이 너무 강하게 느껴졌다. 낮은 단계에도 어느 부위는 시원하기보다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마를 받으면서도 긴장하고 있는 상태. 익숙하지가 않았다. 나는 스트레칭이나 폼롤러가 좋았다. 같은 고통이어도 예상하면서 느끼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건 확연한 차이가 있다.  아마 세라젬을 구매하고도, 요가매트 위에서 몸을 움직일 것 같다. 뭐. 둘 다 하게 될 수도 있겠지.


B는 세라젬을 일찍 구매하고 싶어 했다. 빨리 사서 해보고 싶었기에 결혼을 세 달이나 앞서서 구매하자고 했다. 배송받을 날짜를 따져보니 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기로 한 날보다 전날이었고, 갑자기 그 생각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부모님도 없는데 내가 세라젬이라니.. 이런 효도아이템을 내가 먼저 가져도 되는 것인가? 결혼 전 선물로 부모님께 안마의자를 사드리려고 했는데, 체험해 보고 정하기로 해서 아직 미뤄둔 상태다.  


B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전혀 이해 못 하겠다는 눈치였다. "우리가 사고 싶어서 사는 건데, 그렇게 생각하면 항상 부모님이 먼저 가지고 있는 것만 가질 수 있는 거야?"라고 되묻기도 했다. "그런 건 아니다.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세라젬'만큼은 나보다 부모님에게 더 필요한 물건 같아서(효도아이템이니까?) 좀 그렇다"라고 말했다. 


작년 어버이날이 떠올랐다. 부모님께 안마의자를 사드리려다가 비싸다고 괜찮다고 하시길래 그만둔 적이 있다. 그때 무조건 끌고 가서 샀어야 했을까.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B는 '그러게 효도를 미리미리 하지~ 부모님은 항상 괜찮다고 하시니까 무조건 끌고 가서 사드려야 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너무 딱이라서 빵 터져버렸다. 이제 와서 효도 뒷북이다. 세라젬 선물은 내 돈으로 살 거였는데 은연중에 B에게 조금이나마 부담되는 말이었을까 되돌아보게 됐다. 


반나절쯤 지났을까. B가 세라젬 때문에 내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냥 세라젬과 가방을 둘 다 사드리자!라고 말을 건넸다. 그동안 나를 생각해 줬을 마음이 고마웠다. 앞으로 선물드릴 일이 많을 테니 차근차근 드리자고 말했다. 생신, 나의 결혼, 어버이날, 환갑 등. 각종 이벤트를 미리 고민하고 있는 것 보니 본격 결혼생활이 시작된 것 같다. 


세라젬 배송은 바로 받기로 했다. 부모님이 오시면 피아노 받침대인 척할까, 라꾸라꾸라고 할까 오만 생각을 하다가 그냥 떳떳하기로 했다. 부모님이 원하시면 사드린다고도 했고, 그전에 우리는 사기로 결정한 거니까 허락받거나 눈치 볼 일은 아니다. 이성적으로는 그렇지만, 아직도 불편한 건 여전하다. 빨리 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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