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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Jun 27. 2024

쭈구리도 빛나는 법

전 직장은 이렇게 안 맞는 옷이 있나 싶을 정도로 어색했다. 스스로 이렇게 사회성이 떨어지나 자책하기 일쑤였다. 25년 넘게 외향형 인간이라고 믿고 있던 나는 이제 누가 봐도 완벽한 내향인이다. 당시 사내연애는 신경쇠약에 걸릴 것 같았고, 사이가 안 좋은 직장상사와는 좋아질 기미가 안보였다. 거울을 볼 때마다 얼굴빛을 보고 흠칫했다. 까만 것이 아니라 어두웠다. 안 그래도 진한 다크서클이 이제 더 내려갈 곳도 없어 보였다. 내 자리로 갈 때마다 보이는 거울, 그래도 꼭 바라보고 지나쳤다. 언젠가 밝아지겠지.


이 와중에 숨통이 트이게 하는 사람 한 명이 있었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근로학생 주이. 밝고 명랑한 미소를 보고 있을 때면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주이는 강의가 없으면 온종일 출근을 했다. 나보다 나중에 들어온 신입사원들 세명보다 주이가 훨씬 더 눈치 빠르고 일머리도 있었다. 그 애와 점심 먹고 커피 마시는 20분간의 시간 덕분에 오후 5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나는 맨날 험담이나 하고, 넋두리나 늘어놓는 철없는 언니였다. 주이는 학생주제에 커피도 꼭 자기가 사겠다고 해서 나와 실랑이를 벌였다. 사고 싶은 날에는 그 애의 고집을 못 말렸다. 그러다 주이가 졸업반이 되고, 자연스럽게 일이 종료되면서 나는 주이 없는 사무실이 숨 막혔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퇴사를 결정했다.


...


5년이 넘게 흐르고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게 됐다. 다시 만난 주이는 아직도 반짝일 정도로 밝았다. 이 애와 결혼한 사람은 정말 행복할 거라는 확신도 들었고, 예비 남편의 듣고 보니 마음이 놓였다. 둘 다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주이의 선택이 결혼까지 야무지게 할 거라는 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주이는 내 결혼식 후기를 들려줬다. 남편이 축가를 부를 때 유독 감동받았다는 둥, 드레스가 찰떡이었다는 둥. 그리고 나와 어떤 사이인지 남자친구에게 설명해 줬다고 했다. 나는 주이를 참 많이 의지했는데, 주이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회사생활 중 역대급 쭈구리 같은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를 볼 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내가 하는 게 좋아보였다고 그래서 책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고 말했다. 그때 내가 이기주 작가의 책을 추천해줬는데 그걸 계기로 독서하는 습관이 길러졌다고 말했다.


 그 애의 끊이지 않은 선한 마음씨는 도대체 어디서 흘러넘치는 건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백수가 된 주제에 또 커피는 자기가 사겠다고 한다. 게다가 데려다주겠다는 걸 또 극구 말려. 신혼을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빨리 집에 들어가라고 난리법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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