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현역 스틸북스
미안해서 책을 사줄 순 없다.
작가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얄팍한 독서습관을 가지고 있다. 읽고 싶은 책은 단번에 사질 않고, 꼭 공공도서관에서 빌리거나 밀리의 서재에서 찾아본다. 한번 읽은 후에 두세 번 더 읽은 만한 책만 산다. 그러니 1년에 10권도 사지 않게 된다.
책이 있는지 검색해 보는 행위는 작은 서점을 갔을 때에 더 미안해진다. 공공도서관보다 선택지가 좁은 서점에서 유독 읽고 싶은 책이 많아진다. 감각적인 디자인이나, 대중적이지 않은 주인장의 콘셉트가 선택지를 좁혀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밀리의 서재를 검색하는 행위가 작은 서점에 갔을 때에 더 죄송스럽다. 요즘은 서점에서 커피도 팔고, 굿즈들도 팔아서 하나라도 살 수 있어서 다행. 이럴 바엔 책을 사는 게 나은가 싶어도 짐처럼 쌓여가는 책들이 답답하기 때문에 살만한 책을 고르는 건 여전히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미안해서 책을 살 순 없다. 그나마 죄책감을 덜한 건 서점을 홍보하는 리뷰글도 남겨보고, 책이 좋다면 열심히 SNS에 언급한다. 유명해지는데 일조하지 않을까. 작가들은 강연도 많이 하니까 그리 승승장구했으면 좋겠다.
얼마 전에는 회현역 작은 서점 스틸북스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다. 김선영 작가의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라는 책을 발견했다. 여러 작가의 글쓰기에 관한 말을 가지고 자신의 언어로 풀어나간 이야기였다. 매료되진 않았는데 끝까지 읽게 됐다. 물론 몇 페이지 읽고 밀리의 서재에서 완독 했다. (이게 매료된 건가) 아무튼 잘 쓰고 싶어 안달 난 나에게 콕 박히는 문장이 있었다.
"쓰는 게 뭐 대단한 것 같지? 그건 웬만큼 뻔뻔한 인간이면 다 할 수 있어. 뻔뻔한 것들이 세상에 잔뜩 내놓은 허섭스레기들 사이에서 길을 찾고 진짜 읽을 만한 걸 찾아내는 게 더 어려운 거야."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맞네. 내가 사고 싶지 않은 건 이유가 있었던 거다. 좋은 책들은 우리 집 책장에 당당히 꽂혀있다. 죄책감이 조금 덜어졌다. 정세랑 작가의 책은 아직 없지만 시선으로부터 먼저 사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