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생활 대화법
내가 한마디를 할수록 남편이 멋쩍어 했다. 그가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지었어도 서슴없이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냈다. 대화가 끝나고 잠들기 전까지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각자 할 일은 하고서 9시가 좀 지나 잠들었다. 아 다 피곤해. 생각은 내일 아침에 하자.
10h later
나는 늘 이런 식이다. 그 상황에서 정리가 안되고 시간이 좀 지나야 상황이 눈에 들어온다. 당장은 정리도 안되는데 다그침을 당하기 시작하면 문제상황과는 다른 '감정'이 폭발할 것 같다. 그래서 말문이 닫힌다. 말할수록 더 서로 기분이 나빠질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선다.
남편은 나의 기분을 세심하게 들여다봐준다. 조금만 기분이 안 좋아도 잘 눈치채고 물어본다. 그리곤 해결할 수 있다면 당장 해결해 주는 편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내 기분을 실시간으로 멋대로 판단하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좀 모호하게 흘러가는 감정도 잡아채고, 애매한 표정들을 잡아서 '기분이 안 좋아? 지금 불편해? 뭐 안 좋은 일 겪었어?'라는 질문 한다. 그때서야 나는 '지금 기분이 안 좋았나? 내가 오빠를 기분 안 좋게 했나? 내 표정이 어땠지?'라고 반성한다. 이게 계속 반복되면 어떨 것 같나. 조금 지친다.
'아니'라고 말하면 내가 말을 안 하는 줄 아는 것 같다. 당장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나도 모른다. 하도 그 질문을 자주 받아서 '내 기분을 판단하지 마'라고 경고했다. 물론 농담반 진담반 웃으면서 넘어간다. 내 말투가 문제였나. 'no의 의미는 no라고! 이것도 몇 번을 말해야 해? '라는 말도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그러다 어제는 좀 참아지지 않았다. '아니라고 했는데 왜 자꾸 '이유'를 말하라고 해? 그럴 때면 나는 다른 표정을 억지로 짓고 있어야 하는 것 같아. 불편해진다고. 그냥 가만히 있는 거야. 아무 생각 안 하고!!!'
남편은 알겠다고 말하면서도 내 표정에서 평소와 다른 다른 뭔가를 느꼈다고 했다. 그래. 인정할 건 나도 인정해 보자. 운동 다녀와서 조금 피곤했고 쌓여있는 설거지가 많아서 하고 있는 중이었다. 설거지가 즐거운 일은 아니라 조용히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게 뭐, 그냥 설거지 조용히 하나 보다로 생각해 주면 안 되냐고.
우리의 성향이 달라서 완벽하게 개선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질문을 할 때 '기분이 어때? 컨디션 어때?'라고 물어봐달라고 말했다. 나도 '아니'라는 두 글자 단답형으로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게 묘안이 되길 바라본다. 심해지면 다시 상담받으러 가야지 뭐. 내 문제가 더 큰 것 같긴 하다. 미안.
(여기서 말고 사과도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