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안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현 Jul 10. 2022

부모의 사랑을 기록할 수 있을까

“이래도 사랑 저래도 사랑”

“송이야, 기저귀 갈자.”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마련된 임시 수유실. <서울국제도서전>에 왔다가 다른 곳에서 <맘스홀릭 베이비 페어>가 동시에 열리고 있길래 잠시 옆길로 샜다. 아이와 외출 준비를 하다 보면 한두 가지를 깜빡할 때가 있는데 이날은 하필 떡뻥(스틱형 쌀 과자)을 집에 두고 왔다. 그래, 여기선 간식거리를 살 수 있겠지.


송이가 먹을 떡뻥 한 봉지를 사고 나가려는데 수유실 코너가 보였다. 커튼을 젖히고 들어갔다. 좁은 수유실 안에는 의외로 많은 부모와 아이들이 있었다. 각자 테이블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분유를 먹이거나 기저귀를 가는 모습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나도 딸의 기저귀를 갈았다.


갓난아기 둘이 눈에 들어왔다. 더 정확히는 이들의 울음소리가 먼저 귀에 닿았다. 신생아 시기를 막 지났으려나? 쌍둥이로 보이는 둘은 온몸을 다해 우는 데도 그 소리가 작아 더 안쓰러울 정도였다. 두 아기의 엄마, 아빠가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도 동시에 타야 할 텐데, 그러기엔 손이 부족해 보였다.


“제가 (한 명을) 봐 드릴까요?” 누군가의 아빠가 되기 전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던 말이 절로 나왔다. 쌍둥이의 아빠가 아기 1을 맡고, 엄마가 분유를 타는 동안 나는 아기 2를 맡았다. 아직 눈에 초점도 맞지 않은 작은 생명체를 오랜만에 안아 토닥여줬다. 이렇게 작고 가벼울 수가. 참고로 송이의 체중은 요즘 11kg을 넘는다. 다행히 아기 2는 울음을 그치고 잠잠해졌다. 송이는 유모차에 의젓이 앉아 나와 다른 아기를 보고 있었다.


쌍둥이의 아빠가 말했다. “아기, 잘 보시네요.” 나는 속으로 답했다. ‘당신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익숙해질 거예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 아기 울음소리만 들려도 어쩔 줄 몰라하며 쩔쩔매던 때가 있었는데, 생후 50일 된 아기를 안는 경험이 그새 낯설다니.


“글로 써놓지 않으면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열 살인 첫째가 한두 살 때 어땠는지 벌써 희미해졌어요.” 자녀가 둘인 지인의 말이다. 점점 성능이 떨어지는 나의 뇌보다는 짧게나마 그날 일을 적은 일기장을 신뢰하는 게 낫다. 몇몇 아빠들과 모여 ‘썬데이 파더스 클럽’이란 뉴스레터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은 매주 일요일 밤마다 다섯 명의 아빠들이 번갈아 가며 육아일기를 가장한 자신들의 성장일기를 전한다. 지난 2월 첫 번째 편지를 발송한 뒤로 어느덧 구독자 수는 1,300여 명을 넘겼다.


5월 말부터는 자아성장 큐레이션 플랫폼 ‘밑미’와 리추얼 모임도 시작했다. 이 모임의 미션은 두세 문장의 짧은 육아일기를 쓰며 하루 10~20분이라도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돌봄 양육자에게 그리 쉬운 미션이 아님에도 참여율은 높은 편이다. 간혹 일이 너무 많거나 아이를 재우다 함께 잠들어서 그 시간을 놓치기도 하지만, 모임 참여자들은 다음 날이라도 밀린 일기를 쓰려고 한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이유는 뭘까.


2021년 합계출산율* 0.81명. 저출산·고령화 시대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숫자가 오히려 더 적음을 뜻한다. 물론 육아를 직접 경험해보니 어느 쪽이 딱히 낫다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두 갈래 길의 장점과 단점이 너무 다르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의 나는 육아를 선택했다는 것.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결심했다면,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끼리 연대하며 지지하는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힘든 돌봄과 육아일지라도, 그 안에 기쁨과 슬픔이 공존한다. 이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기록되지 않으면 휘발한다. 게다가 누군가를 키워낸 경험에 관한 기록은 언젠가 나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 15~49세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의 평균.


온유의 두 돌 기념 전시


최근 연희동에서 관람한 전시 <OH-NEW 24詩>는 그래서 울림이 더 깊다.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한 김유나는 딸 온유의 두 돌을 기념하고자 지난 24개월 동안 24시 편의점처럼 온유를 지켜온 가족과 함께 24편의 시를 쓰고 아이와 함께한 물건, 조부모님의 편지 등을 공개했다. 가장 내밀한 개인의 미시사인데, 역설적으로 세대를 초월한 보편적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전시장 벽면에 걸린 어느 시의 마지막 문장은 “이래도 사랑 저래도 사랑”이었다.


돌봄과 육아에 지친 삶에 숨 쉴 구멍이 없다면, 이참에 육아일기를 써보면 어떨까. 아이는 우리가 이런 고민을 하기 무색할 정도로 쑥쑥 크니까. 망설일 시간이 없다.


글 | 손현 (2022.6.5)


Note. 이 글은 1970년 4월 창간된 교양 잡지 <샘터> 2022년 7월 호(629호)에 실린 에세이의 원문입니다. (폐간 위기를 넘기고 50년이 넘도록 꾸준히 발행 중인 잡지에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영광입니다.)


월간 샘터 (2022년 7월 호)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는 장마철 날씨 같습니다. 아이 컨디션에 따라 폭우와 무더위, 그 사이 시원한 바람을 수시로 경험하거든요. 그날그날 하늘 사진을 찍는 마음으로 육아일기를 짧게나마 쓴다면, 언젠가 구름의 근사한 움직임을 담은 사진집이 되겠죠? 앞으로도 세상에 보다 다양한 '육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좋겠습니다.

6월부터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물론 짧게...


매거진의 이전글 돌잔치 때 신을 양말 챙기셨습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