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완벽에 관하여'는 뉴욕에서 유명한 목수, 마크 엘리슨(Mark Ellison)이 쓴 책이다.
책은 나이 든 자신이 목수 생활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정리하여 쓴 이야기다.
한국 서점에서 이 책은 인문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고, 아마존에서는 Home Improvement & Design로 분류되어 있다. 한국 서점의 설명 중 강조되는 문구는 '뉴욕 최고의 목수로 불리는 ‘마크 엘리슨’의 일과 삶에 대한 조언'이라고 되어 있지만, 아마존에는 '이 책은 어떤 일이든 잘하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입니다.'라고 되어 있다.
이 책에는 배워야 할 미덕이 많지만, 나는 아마존의 설명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왜냐하면 이 책의 표지에서 그 느낌이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한국 표지는 추상적인 붉은 네모를 통해서 강렬한 인상을 주고, 제목을 '완벽에 관하여'라고 지었다.
하지만 해외 표지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같은 이야기지만, 좀 더 기술자의 느낌이 나는 표지와 설명을 담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마크 엘리슨은 유명해진 것은 곡선이 매우 강조된 인테리어를 통해서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뉴욕의 한 고급 아파트의 공사의 한 사진이 표지로 만들어진 것인데, 곡선이 매우 강조되어 있다.
작업 과정과 마크 엘리슨의 이야기는 뉴요커에 실려서 더욱 유명해졌다.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20/11/30/the-art-of-building-the-impossible
번역해서 보면, 마크 엘리슨은 작업을 넘어선 이해와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생각과 작업물은 The New Yorker의 Dean Kaufman의 사진으로 더욱 돋보이게 된다.
책을 보면, 마크 엘리슨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고, 오래되고 좁은 고층 아파트의 내부 공사를 하는 작업자이면서 책임자이다. 아무리 설계가 잘되어 있어도, 오래되고 좁고, 조악한 내부를 고급지게 만들려면, 단순히 벽을 만들고, 기둥을 세우는 작업으로는 불가능하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 수 없지만, 사람의 눈에는 보기 좋아야 하며, 무엇보다 견고하고 오래 쓸 수 있어야 한다. 이 책과 마크 엘리슨의 장점은 절차와 효율성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내는 부분에 있다.
만드는 일은 생각하는 일과 다르다. 숫자가 딱 맞아떨어지지도 않고, 시안이나 조감도처럼 이상적이지도 않다. 아주 작은 차이가 결과와 만족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마크 엘리슨의 고객들은 매우 부자이고, 매우 까다로우며 결과물에 대해 예민했다.
보통의 이야기에서는 글을 쓴 사람에 경험에만 집중하는 부분이 많다. 글을 쓴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회상하면서 상황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이 책은 생각이 진짜로 이루어지려면 필요했던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수치와 재료, 수급, 거기에 들어가는 무의미할 정도로 반복적인 작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떻게 보면, F와 T가 경험을 다루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읽은 나는 이것이 몸으로 일하는 사람과 언어로 일하는 사람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고난을 언어로 해결하는 사람은 자신감이 중요하고, 몸으로 일하는 사람은 효율성이 중요하다. 몸은 지치기 때문에 최대한 힘을 아껴야 하고, 힘을 아끼려면, 작업자의 생각을 해야 한다.
마크 엘리슨의 이야기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작업자의 생각을 가다듬으로면, 더 나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목수는 수치에 민감하고, 그 수치는 절대적이지 않다. 줄자로 선을 긋고 톱질을 하면, 아주 약간씩 오차가 발생한다. 여기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이상적인 숫자와 현장의 차이에서 수학과 괴델이 인용된다. 수학뿐 아니라 물리학과 우주관까지 이야기가 된다. 어떤 사람은 고작 목수가 아는 척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업자의 기준으로 보면, 더 큰 생각을 하지 않으면, 더 나은 결과물은 나올 수 없다.
그리고 책에서 말하는 마크 엘리슨의 생각은 그의 일 뿐만 아니라, 제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생각하고 배워야 할 법한 일이다.
학습에 대한 부분은 이렇게 말한다. 40년 경력을 가진 사람이 20년이 지난 뒤에 다시 20년을 현대에 맞게 공부해서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엔 볼만한 것들이 시간이 갈수록 망가질 때가 있다. 하지만 "멋지잖아요!"라는 아무 근거도 없고, 책임도 없는 말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 파국뿐이다.
이런 식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예측하고 행동해야 하지는지에 빼곡한 조언들이 책에 가득 차 있다. 물론 그 중간에 있는 이상한 이야기들이 꼰대처럼 들리지만, 꽤 정확하고, 현대적인 인문학 지식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나머지 분량의 잔소리에도 꽤 의미가 있다.
책을 사서 읽다가 보면, 그럴 듯 한 이야기를 많이 보게 된다. 나는 책을 읽을 때, 가급적 구분을 하고 관찰을 하려고 한다.
결과가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별로 좋은 생각이나 행동이 아니었는데, 결과가 좋기 때문에 작가 혹은 당사자가 했던 생각과 행동이 미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결과도 없이 좋은 생각이라는 이유로 괜찮은 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어쩌면 성공학이라고 분류되는 많은 책들이 조롱을 받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 완벽에 관하여는 한국어 책 제목만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물론 나 역시도 책 제목에 도발되어 살펴보긴 했지만, 책의 내용은 굉장히 좋다. 두 가지 관점에서 일독을 추천한다.
첫 번째, 경험과 행동, 결과가 압축되어 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제작에 관여하는 사람이라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디자이너이고 앱이나 웹 같은 디지털 제품을 제작하는 일에 가까운 일을 한다. 많은 기간을 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언을 듣고 싶다.
이 이후에 뭘 해야 하는지는 신입일 때나 경력 5년일 때나, 10년일 때나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조언이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는 나보다 많이 일하고, 지금도 일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듣기는 좋지만, 감동은 없다. 하지만 마크 엘리슨의 경우는 매 장마다 반항적인 마음이 들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많다.
두 번째, 제작을 잘하면 그 이후에는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준다. 이미 인용을 하긴 했지만, 잘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이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은 사람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경력자가 도움을 얻기 좋은 말들이 많이 있다.
오랜만에 읽은 책이고, 내가 하는 일과 관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표지와 바뀐 제목은 별로지만,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