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용자 경험은 제품의 일관성에서 나온다.
지금은 UX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지만, 초기에는 UX를 설명하기는 굉장히 어려웠다. 두 글자로 줄여 쓰는 용어이기도 하고, ‘User Experience(사용자 경험)’이라는 말 자체로는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 쉽게 짐작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UX를 설명하기 위한 몇 가지 예시가 유행했고, 지금은 밈처럼 소비되기도 한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하인즈의 케첩 용기다.
지금까지 이 UX 밈에 대해 많은 반박이 있다. UI는 더 간단한 기술이고, UX는 더 고급 기술이라는 뉘앙스를 담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이미지는 UI와 UX가 가진 연관성과 의미를 왜곡하기 시작했다.
“병을 거꾸로 세워 사용 경험을 혁신했다”는 설명은 마치 UX는 단순하지만 통찰력 있는 발상의 결과로 만들면서 UX를 ‘아이디어’로 축약해버린다. UX의 본질은 단발적인 영감이 아니라, 일관된 관찰과 개선의 과정이다.
HatchWorks에서 소개한 새로운 이미지에서는 UI와 UX의 차이가 훨씬 더 분명하게 나오며, 하인즈가 해결하려고 한 사용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케첩과 같이 점도 있는 물체를 보통은 유리병에 담았다. 조금 더 짜기 쉬운 형태로 변한 것이 지금이지만, 유리병의 경우, 바닥을 쳐야 내용물을 나왔다. 문제는 용기에 내용물을 절반보다 적을 때 많이 발생한다. 유리병을 뒤집고, 세워두는 사이에 중간에 공기가 들어가게 되면, 내용물이 나오지 않거나 공기와 섞여 쏟아지면서 사방에 튀게 된다.
하인즈의 문제 해결은 단순히 마개를 용기 바닥 부분에 만든 것이 아니다.
UX에 대해 설명할 때, 구체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UX 디자인을 통해 단순하게 만들면 모든 것이 쉬워진다고 주장하던 시기는 끝났다. 단순한 것은 실제로 그냥 단순할 뿐이다. 사용자가 단순하고 쉬운 경험을 하려면, 복잡하고 정교하며, 연속성이 있는 해결책이 필요하다.
하인즈는 1869년 사업을 시작하여, 1879년부터 케첩을 다루기 시작했다. 1890년부터 팔각형 유리병을 사용하여 브랜딩 되었다. 당시로서는 팔각 유리병이 식탁 위에서 병을 놓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효율적인 해결책이면서 브랜딩이기도 했다.
하인즈는 꾸준히 용기를 개선했다. 유리병을 짤 수 있는 플라스틱으로 바꾸고, 병뚜껑을 더 열기 쉽게 바꾸었다. 모든 개선 사항, 용기 안에 담겨 있는 소스를 더 쉽게, 마지막까지 한 방울까지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UX 사례로 적용된 '거꾸로 된 짜는 용기(The Upside-Down Squeeze Bottle )'는 2002년부터 출시되었다. 하인즈크래프트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하인즈가 갑자기 짜기 쉬운 통을 만들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6세 아이들이 40대 성인(부모님의 연령대)보다 60% 더 많은 케첩을 소비한다는 것을 파악하고 짜기 쉬운 호리병 모양의 용기인 EZ Squirt를 만들기도 했다. 현재는 단종되었지만, 연질 플라스틱 재질에 짜기 쉬운 디자인은 용기의 재질을 유리에서 플라스틱으로 완전히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 90년대 후반부터 소스(케첩) 소비는 줄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용자를 관찰한 결과 사람들이 적은 양의 내용물이 남았을 때 쉽게 짜내기 위해서 냉장고에 거꾸로 보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데이터를 통해서 사용량 감소를 알아냈지만, 용기를 거꾸로 보관하고 있다는 것은 설문조사, 면담에서는 알 수 없었던 일이었다. 사용자의 행동을 직접 관찰하여, 거꾸로 보관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2023년 하인즈는 독특한 광고로 칸 영화제에서 수상하게 된다. 뚜껑을 바닥에 달았다면, 이 용기를 제대로 놓는 방식을 소재로 재미있는 광고가 나왔다.
거꾸로 된 용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사용에서는 뚜껑 쪽으로도 바닥에 놓을 수 있고, 다른 소스 용기처럼 뚜껑이 위로 향하게 놓을 수도 있다.
'위와 아래에 뚜껑이 있으니, 언제나 소스를 빨리 먹을 수 있고, 100% 다 먹을 수 있다.'라는 메시지는 다른 제품을 사면, 낭비가 생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핵심 메시지는 낭비 없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브랜드 로고가 뒤집히는 것은 재미있는 농담이 된다.
위와 아래가 모두 열리는 소스 용기는 아랍에미레이트에서 한정판으로 판매되었다.
거꾸로 된 병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이제까지 그렇게 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거꾸로 하면 원하지 않을 때, 내용물이 새어 나오기 때문이었다. 진짜 혁신은 뚜껑에 있다. 뚜껑, 캡이 거꾸로 새워둔 용기를 적절하게 밀봉하지 못하면, 소스가 샐 수 있는 디자인인 것이다.
하인즈의 2002년 거꾸로 된 용기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폴 브라운이 설계한 발리톤 캡(Balaton cap)이었다. 2022년 발리톤 캡은 100%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개선되어 연간 3억개 가량의 버려지는 뚜껑을 재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초기 발리톤 캡은 계속해서 개선되어 재활용이 되지 않는 실리콘 부품을 제거하여 완전히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와 하나의 부품으로 개선되었다. 또 완전히 닫힐 수 있도록 개선되어 사용자가 실수로 덜 닫은 상태로 보관하여 소스가 세는 문제도 해결했다.
이미지는 비파괴 검사로 뚜껑 재질의 밀도를 보여준다. 뚜껑의 밀도가 일정하지 않으면, 재활용이 어렵다고 한다.
또 캡(뚜껑)이 일정한 양의 소스를 내보려면, 일정 압력이 가해져야 한다. 기존 캡에 비해서 더 안정적인 압력을 줄 수 있도록 개선되었다.
기존 뚜껑은 노년층은 열기 어려운 문제도 해결했다고 한다.
하인즈가 갑자기 거꾸로된 병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창업 초기부터 소스를 담는 용기에 대한 많은 투자를 해왔고, 코카콜라처럼 용기의 모양에 대한 일관성을 지키려고 했다.
또 거꾸로된 플라스틱 용기를 만들었지만, 뚜껑이 위로 향하게 놓을 수도 있는 호환성도 남겨두었다.
하인즈의 사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경험은 내용물을 남김없이 짜서 먹길 원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인즈뿐만 아니라 모든 소스의 사용 시에 발생하는 문제였다.
다른 회사와 하인즈의 차이점은 지속적으로 문제를 해결했고, 그러한 문제 해결 방식이 매출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더 많은 소스를 남김없이 풍부하게 사용하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낸 것이다.
또 소스를 사용할 때 겪을 수 있는 불쾌함을 줄일 수 있는 방법에도 집중하고 제품을 마케팅하면서 브랜딩도 강화하였다. 유리병에서 플라스틱 용기로 변경되면서, 유리병 바닥을 치는 일 없이 소스를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용기에 공기가 차서 소스가 마구 튀는 경우도 줄었다.
이처럼 UX는 단순한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UX의 핵심은 관찰, 실험, 일관성 있는 개선이다.
하인즈가 보여준 UX는 ‘한 번의 영감’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문제 해결의 누적 결과물이었다. 한때 UX 디자이너와 UI 디자이너는 명확히 구분되었다.
UX는 ‘문제를 정의하고 사용자 여정을 설계하는 일’, UI는 ‘그 여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제품의 복잡성이 커지면서, 두 역할은 점점 겹치기 시작했다.
이제는 UX를 이해하지 못하면 UI를 설계할 수 없고, UI를 구현하지 못하면 UX의 의도를 실현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UX 디자이너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의 ‘제품 구현’ 수요가 커졌다.
결국 UX 디자인에 대한 기대치는 조정되었고, ‘결정과 실행의 연속 과정’으로 사용자 경험과 제품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나타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엄청난 비용을 들인 기술 개발과 마케팅, 브랜딩의 문제 해결 결과가 UX의 유명세와 흐름을 타고 너무 쉽게 이용되었다.
그리고 문제를 발견한 경우도 책상 위가 아닌 현장에서 실제 고객을 일일이 만나면서 알아낸 것이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성이 해결한 문제가 아니다.
하인즈의 사례를 보면, 초기 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서 좋은 제품을 만드는 일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사용자를 관찰한 개선의 누적이 되면서 이루어졌다.
문제 해결은 이제 프로세스나 방법론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만큼 중요하고, 책임이 필요한 일이 된 것이다.
하지만 UX 디자인은 한국에서는 점점 더 기획 직군으로 분리되거나 UI 파트와 애매하게 합쳐지면서 점점 특성을 잃어버리고 있다. 해외에서는 UX 디자인보다, UX 리서처 혹은 UX 전략을 다루는 파트 등 더 미세하게 나누어졌다.
특히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약진은 디자이너 명함 타이틀의 빠른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UX 디자인이나 컨셉 자체는 전체 직군은 물론 사용자들까지 쉽게 이야기하는 단어가 되었다. 용어에서 단어로 바뀐 것이다.
UX는 제작 과정 그 자체보다는 단편적인 '팁'으로 변했고, 마치 개인의 뛰어난 아이디어나 리더십으로 선도하는 것처럼 표현되기도 했다. 누구나 케첩병을 거꾸로 새워두면 남은 케첩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다는 팁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쏟아지지 않는 뚜껑과 탄성이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이 2가지는 아이디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제품이나 기업에 대한 경험은 구성원과 팀 전체의 협업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거기엔 항상 꾸준한 작업과 개선이 포함된다.
하인즈크래프트의 용기 개선은 140년간 이어진 결과이며, 용기 뿐 아니라 맛이 있는 소스라는 자부심도 강한 회사이다. 사실상 모든 것에서 각 시대의 기술과 사용자들의 변화하는 습관을 추적해온 결과인 것이다.
UX란 말을 누구나 하기 전에는 웹디자이너의 딜레마란 말이 있었다.
웹이 성장하면서 많은 웹사이트와 커뮤니티가 생겨났는데, 신기하게 더 좋은 웹사이트나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디자인을 변경하면, 오히려 사용량이 줄어들어버리거나 사용자가 변화를 거부하는 문제였다.
UX 관점으로 보면, 변화가 사용자에게 거부된 것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일관성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제품을 선택한 이유를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일으키는 변화는 공급자 입장에서는 작은 것이라도 치명적인 결과를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사용자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도입하여, 사용자의 환경과 목적을 이해하고 서비스나 제품을 개선하는 UX는 혁신적인 관점의 변화였다.
하지만 이제 UX는 초기의 ‘감성적인 언어’에서 벗어나 데이터, 기술, 조직 전략과 결합된 시스템적 활동으로 발전했지만, UX라는 단어는 너무 흔하게 사용되면서 때로는 ‘감각’이나 '감상'의 동의어처럼 소비되고 있다.
하인즈의 병이 세대와 시장이 바뀌어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통해서, 사용자가 제품을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일관성을 만들 수 있는 UX가 필요하다.
최근 카카오톡 업데이트로 인해서 맥락이나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고, 제품을 뒤집어 버리면 그야말로 모든 것이 전복된다는 생각에 오래전에 쓰려고 했던 소재를 꺼내보았다.
기술과 마케팅 없이 알렉산더 대왕 이야기에서 나오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누군가의 천재성으로 한 번에 단순하고 간결하게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새로운 기술인 AI가 출현하면서 기존의 모든 구조에서 사용한 창의성과 효율성, 숙련도의 정의가 바뀌고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는 기업의 목적과 제품의 목표가 가진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고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불어, UX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디자인에 대한 중급 이상의 지식은 더 얻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모든 정보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근거와 목적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