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에서 음모론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 '당신이 혹하는 사이'를 시범적으로 방송했다. 대놓고 음모론을 이야기하기 그랬는지, '음모론을 기반으로 영화를 기획한다'라는 설정으로 감독과 배우들이 모여 음모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설정 때문인지 방송이 산만하고 정신없었지만, 자료 준비만큼은 상당히 공을 들인 것처럼 보였다. 음모론은 유튜브에서도 많이들 다루는 소재인데, 이 프로그램은 방송국의 자본으로 할 수 있는 것들 — 일본 현지 인터뷰, 모형 제작 등 — 을 보여주는 강점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상당히 재미있었다. 여러 번 소름도 돋았고.
"이거 인터넷 기사에서 봤는데." 우리는 인터넷에서 본 걸 대부분 그대로 믿는다. 길면 자세히 읽어보지 않는 건 덤이다. "이거 출처도 있는데?" 그 출처 또한 인터넷이다. 정말 팩트인지 조사하는 행위 자체도 결국 구글링이다. 전문가들도 이런 함정에 빠지곤 한다. 스포츠 해설가 A는 축구를 주제로 한 그의 저서에서 세르비아의 한 축구 선수에 대해 썼다가 큰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그건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에서 장난으로 만든 가상의 선수였다. 재미있자고 만든 이야기에 이리저리 살이 붙으면서 그럴싸하게 변했고, 그는 이를 사실 확인도 없이 덥석 물어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귀찮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정보의 가치가 너무 낮아져 어려워진 탓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공중파 방송에서 음모론을 다루는 것이 썩 좋아 보이진 않는다. 안 그래도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 아닌가. 우리는 스스로 감당치도 못할 것들을 쏟아내고 있다. 연예인 가십에 머물고 있던 것들이 팬데믹을 만나 우리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허위 정보가 됐다. 코로나19 초기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가짜 뉴스와 낭설들을 보았는가. 같은 내용을 두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정보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아니, 누가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느냔 말이다. 명확한 증거로 음모론을 파헤쳐 진실을 드러낸다면 '교양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러기가 쉽지 않아서 음모론 아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빌 게이츠가 코로나의 배후'라는 음모론을 다루는 것을 보니 참 씁쓸하다.
음모론을 보면 밤하늘의 별자리가 떠오른다. 그 옛날, 밤 하늘을 보며 별들을 이어보고, 거기서 모양을 찾아내고, 이름을 붙여서 만든 이야기. 그 이야기는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나는 사실 음모론을 좋아한다. 얼마나 재미있나. 하지만 내가 음모론을 즐길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실수를 하고,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내린다. 그러면서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이성과 논리만을 통해 보려고 한다. 거기에 상상력과 잘못된 믿음까지 더해지면 태어나는 것이 음모론일 테다. 이번 주 별자리 운세를 스마트폰으로 보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 뿌예서 별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믿어야 할지. 나는 지쳐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