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움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일요일 저녁 6시.
평소 때라면 월요일을 준비하며 집에서 최대한 편안하게 소파에 누워 TV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며 배달음식을 기다리고 있었을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은 월요일의 부담이 없어서 인지 7살 아들 은성이와 축구공을 챙겨 인천 아시아드 광장으로 나가보았다.
오후 6시가 넘은 덕분에 햇볕은 한풀 꺾여 한낮의 뜨거움과 맞서지 않아도 되어 좋았고, 나들이를 나왔던 가족들도 거의 대부분 돌아가고 난 뒤라서 우리의 목적지인 넓다 못해 광활한 이벤트 광장은 우리 둘의 독차지였다. 그늘진 곳을 중심으로 몇몇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족 무리가 있었으나 축구를 할 계획인 우리의 동선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적막한 광장의 부담스러움을 편안케 해 주었다.
아직 MBTI 테스트를 해보지 않았지만 확실한 E성향으로 의심 없이 추정되는 은성이는 광야에 처음 나온 야생마처럼 킥보드를 타고 넓은 광장의 끝을 향해 힘차게 내달렸다. 큰 목소리로 불러도 들리지 않을 정도까지 달려간 은성이를 따라 축구공을 몰고 따라갔다. 광장의 끝에 있는 안내판을 한번 둘러보고는 주차자리와 가까운 곳으로 다시 돌아와 은성이와 공을 주고받는 놀이를 했다.
한때 어린이 축구교실을 다녔던 은성이는 유니폼을 맞추고 멋들어진 축구화도 신고 활동을 나갔으나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아직은 축구의 룰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자신의 공을 자꾸 뺏어가는 친구들과 형들 사이에서 공놀이의 즐거움보다는 스포츠의 경쟁을 먼저 배워버린 이유일 것이다. 그런 은성이가 오늘은 패스놀이보다는 공 뺏기 놀이를 하자고 먼저 제안해 온다. 처음에는 적당히 시간 좀 끌다 뺏겨줄까 생각했었는데 공을 뺏지 못해도 열심히 헛발질을 해대며 즐거원하는 은성이를 보니 나도 최선을 다해 공을 빼앗기지 않으려 애쓰게 되었다.
돌아오며 해본 생각이지만, 은성이는 공놀이보다 아빠인 나와 함께 몸을 써가며 놀았던 시간을 공놀이라는 놀이의 방법보다 더 즐거워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미안했다. 그동안 무엇이 더 소중하고 중요한지 알면서도 외면하고 챙기지 못했던 못난 내 모습이 싫었다.
30여분 정도 뛰고 보니 얼굴과 온몸이 땀이 흐르고 우리의 얼굴을 벌겋게 달아올랐다. 특히 안경을 쓰고 있던 나는 눈으로 흐르는 땀을 닦기 위해 안경을 계속 벗었다 썼다를 반복했다. 귀찮았다. 그래서 안경을 벗어버리고 맨 얼굴로 다시 축구를 했다. 먼 풍경이 조금 흐릿하긴 했지만 축구를 하는 데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에 거추장스러운 도구가 사라지니 활동이 편안해졌고 자유로움마저 느끼게 되었다.
사실 나는 안경을 벗어도 운동이나 일상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을 정도의 시력이다. 다만 안경을 쓰지 않으면 먼 곳의 글자나 풍경이 선명하지 않아서 일상에서도 안경을 계속 쓰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이다. 꼭 보아야 하는 글도 아니고 꼭 자세히 보아야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매 순간 선명하게 보려고 안경을 고집했던 것 같다.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에 습기가 차는 불편함과 얼굴형이 조금씩 변하는 것쯤은 선명한 세상을 보려면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요금인양 말이다.
그런데 안경을 벗고 바라본 세상 또한 충분히 아름다웠고, 안경을 썼을 때 대비 80% 정도의 선명함으로 바라보는 풍경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순간을 선명하게 보려고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눈을 찡그리며 풍경보다는 특정 포인트에 주목하느라 주변을 바라보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마치 눈앞의 트랙을 벗어나면 안 되고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하는 경주마 같은 입장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조금은 흐릿하게, 조금은 부족하게, 그리고 너무 애쓰지 않고 살아도 되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축구로 거칠어진 호흡 속에 내 안으로 깊이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나쁘지 않았다. 무언가를 내려놓으니 자유로움이 나를 채워주는 것 같았다.
자유…
그것은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