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건 뭐든지 될 수 있어
휴가를 맞이하여 평일 낮에 집에 있는 시간을 많이 갖고 있다. 가족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고 난 집은 아주 고요하다. 왠지 집 안을 오가는 발소리도 조용히 해야만 할 것 같다. 테라스를 향한 창을 살짝 열어 놓고 소파에 몸을 기대고 반쯤 누워 이 고요함을 즐긴다. 방금 만들어온 아이스커피의 얼음이 유리잔에 부딪쳐 경쾌하면서도 시원한 소리를 낸다. 이따금 창밖을 지나는 자동차 소리가 나지만 비 온 다음 날의 깨끗하고 청명한 하늘이 금세 소음을 감싸준다. 잠시동안 핸드폰도 내려놓고 오롯이 홀로 이 풍요로운 고요를 즐겨본다.
평소에는 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부담으로 보지 못했던 영화를 한편 찾았다. ‘잭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무려 러닝타임 242분, 4시간이다. DC 유니버스 작품은 몇 개 본 기억이 없지만 이 작품은 워낙 이목을 끌었기에 언제나 위시리스트에 넣어놓고 이제야 보게 되었다. 나의 영원한 히어로 ‘슈퍼맨’이 나오는 영화이지만 원더우먼, 아쿠아맨 각 1편씩 본 것이 다였던 나에게는 통합 유니버스 시리즈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맥락(Context)이 많이 부족한 상태였다.
그러나 명불허전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었고, 4시간의 러닝타임도 꽤 어렵지 않게 지나갔다. 영화를 보고 나서 몇 가지 들었던 생각을 정리해 보면,
첫째, 저스티스 리그는 ‘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는 슬로건 아래 여러 히어로들을 한 팀으로 모으는 장면이 영화 초반에 나온다. 개성이 강한 히어로들은 쉽게 팀으로 모여지지 않으나 결국은 함께 하게 되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결국 해내게 된다. 히어로 무비에서는 다소 진부한 설정이지만, 오늘 이렇게 호사를 누리는 내 모습을 보며 나를 대신하여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 동료들, 나에게 고요한 시간을 의도치 않게 선물해 준 우리 가족들이 떠오르며 나의 즐거움과 편안함도 다른 사람의 배려와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내가 받은 배려를 언젠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나누어야겠다. ‘혼자서는 마음 편히 쉴 수 없다’
둘째, 2017년에 저스티스 리그는 개봉을 했었다. 하지만 4년 뒤 다른 감독이 다시 한번 작품을 내놓았다. 영화의 스토리는 다르지 않지만 영화에 숨결을 불어넣는 감독이 달라졌기 때문에 영화의 많은 것이 바뀌었고, 관객의 평도 달라지게 되었다. 기본 스토리를 어떤 관점으로 풀어내느냐, 또 그것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만들어내느냐가 전혀 다른 영화로 만들어지게 된 본질적 이유가 아닐까 싶다. 우리도 살다 보면 나의 관점과 나만의 정서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런 차별점이 나의 아이덴티티를 더욱 강하게 하여 ‘나’라는 사람의 자기다움을 만들어 내고 나아가 내가 세상에 유일한 존재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모두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먹는 요즘의 세상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유일한 ‘나다움’을 더욱 가지려 노력해야겠다.
4시간의 영화 중 기억에 남는 한 마디를 나에게 선물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