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에서 빅토르위고까지
오늘은 아침부터 서둘러 첫 여정을 나섰다. 뭐니 뭐니 해도 파리의 가장 유명한 에펠탑에게 첫인사를 하고, 빅토르 위고 생가로 가서 내가 파리에 오게 된 이유를 재차 확인하는 일정이었다. 각 명소에서 느낀 생각과 감정을 간단히 메모로 남겨 본다.
1. 에펠탑
명불허전, 멀리서부터 조금씩 보이는 에펠탑은 마치 첫 데이트를 나가는 심정으로 거리가 점점 다가올수록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에펠탑에 오르기 위해 줄을 서고 기다리지만 나는 에펠탑이 가장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아 천천히 에펠탑의 구석구석을 관찰하기로 한다. 그 덕에 에펠탑의 아치와 철골의 모양도 자세히 볼 수 있었고, 철골 구조가 복잡한 수학과 공학의 결과물임을 보여주듯 에펠탑 외부에는 건설에 참여한 수학자, 공학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또, 에펠탑 주변에서 소중한 추억을 남기는 수많은 여행자들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도 적어보고 부족하지만 눈앞의 풍경을 작게나마 그림으로 남겨도 보았다.
2.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셰익스피어는 영국인인데 왜 프랑스 파리에서 이렇게 유명한 서점이 되었을까라는 의문을 갖고 입장했다. 곧 이런 궁금증은 사라지고, 100여 년의 세월을 간직한 이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고,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수많은 문학작품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영어를 못하는 게 이렇게 한이 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작가와 작품은 무엇이 그리 특별할까?라는 궁금증도 생기게 되었고, 왜 우리나라에는 허균 서점, 조정래 앤 컴퍼니 같은 곳이 없을까? 대형 서점 외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는 컨셉추얼 한 서점이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3. 노트르담 대성당
지나는 길에 우연히 둘러보게 된 노트르담 대성당 2019년에 화재로 성당의 적지 않은 부분이 유실되었고, 지금은 한창 복원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성당 주변을 가림막으로 둘러싸고 내부에서는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그 가림막에는 화재 당시의 성당 사진과 화재 이후 소실된 성당의 모습과 화재의 잔해들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픈 과거를 숨기지 않고 모두에게 자세히 보여줌으로 다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나누는 것 같았다. ‘우리의 일부가 불에 탔다’ 화재 당시 마크롱 대통령이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를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의 일부’라고 표현할 만큼 파리 시민들에게 노트르담 대성당은 특별한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멋진 모습뿐만 아니라 아픔의 순간도 치유의 과정도 함께 하는 것 같다. 진정한 사랑은 아픔도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4. 빅도르위고 저택
이번 나의 파리여행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인 ‘빅토르 위고’ 그가 생전에 생활했던 저택을 방문하였다. 그가 거닐었던 정원이 보이고, 그가 오르내렸던 낡은 계단을 따라 오르며 위고는 어떤 생각을 하며 이 공간을 거닐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작가이자 데생 화가, 그리고 정치인이자 자유와 정의를 섬기는 사상가였던 위고는 안정적인 생활환경에서도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창작활동을 해오며 자신의 위대함을 나타내었다. 특히 레미제라블과 웃는 남자 작품을 보면 그가 민중과 소외된 계층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를 추측해보게 한다. 파리가 낳은 대문호 빅토르 위고를 그의 숨결이 남아 있는 이곳 파리에서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5. 에투알 개선문
저녁 6시가 넘어서 뮤지엄패스도 게시할 겸 개선문으로 향했다. 영화에서만 보던 샤를드골광장과 개선문이 눈앞에 펼쳐졌다. 개선문은 가까이에서 보니 다양한 조각이 생각보다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었고, 안쪽으로는 수많은 승전소식과 전투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들, 그리고 무명용사의 무덤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다. 전망대를 올라가면 샤를드골광장에서 파리 곳곳으로 뻗어있는 방사형 도로들이 인상적이다. 세계를 향해 거침없이 뻗어나가던 파리의 옛 영광을 상기시켜 주는 모습이다
밤 9시가 조금 넘어 전망대를 내려와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아직도 해가 지지 않아 시간의 생경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