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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니스홍 May 22. 2019

교육, 훈련

겸손과 유능

아이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학원을 보내야 하나 홈스쿨링을 해야 하나. 요새는 학교만 다닌다고 되는게 아닌데,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교육 (敎育)은 가르치고 (敎) 기른다는 (育) 뜻이다. 교육 (education)에는 끄집어내다, 꺼낸다는 뜻이 있다 (bring out, to lead). 선생에서 학생으로 지식이 전달되는게 아니라 학생이 배운 사람이 되도록 (敎化: 교화) 학생의 성질을 이끌어낸다는 뜻이다. 

학생의 안에 있는 성질을 밖으로 끄집어내도록 돕는 사람이 선생이다.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배운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겸손하다. 겸손이란 자기를 더 큰 세계라는 맥락 속에 던져놓고 스스로 돌아보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선생은 학생보다 더 큰 세계를 직접 보여준다. 학생은 그런 선생을 보면서 자신을 그 맥락 위에서 돌아본다. 대학원의 박사 (博士)과정은 교육 과정이다. 넓은 (博) 맥락 위에서 자신의 주장을 내놓기 때문이다. 돌아보는 과정은 교육이고, 그 결과는 겸손이다.


교육의 결과는 겸손이다.


훈련 (訓練, training/discipline)은 말 (言)이 흐르도록 (川) 익힌다 (練: 제련) 한다는 뜻이다. 어떤 기술이 잘 훈련되어 있을수록 그것은 흐르듯이, 또 정확하게 밖으로 나온다. 말이든 글이든 제빵기술이든 그렇다. 줄줄 나오도록 연마한다는 뜻이다. 훈련의 성과는 주의깊게 반복해 꺼내어 놓음으로 얻어진다. 의도한 바로 그것을 왜곡이나 오류 없이 정확하게 내놓고자 한다. 좁은 영역에서 기술의 단단함을 추구한다. 대학원의 석사 (碩士)과정은 훈련 과정이다. 크다, 알차다, 단단하다 (碩)는 뜻이다. 단단한 모퉁이돌 (碩)을 바로 세우는 과정이다. 바로보는 과정은 훈련이고, 그 결과는 유능이다.


훈련의 결과는 유능이다. 


사회가 학교를 운영하는 이유는 장래 사회에 유의미한 가치를 제공하는 사람을 기르기 위함이다. 예컨대 물건을 판매한다고 하자. 시장에서 잘 팔리는 제품은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로 품질이 좋아야 한다. 의도된 용도와 기능을 정확하게 바로 구현해낸 제품이 좋은 품질의 제품이다. 둘째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아무리 성능좋은 노트북도 쓰는 사람이 지나치게 비싸다고 느끼면 외면당한다. 소비자의 욕구라는 맥락에서 제품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1)잘 교육되고 2)잘 훈련된 사람이다. 그래야 사회에 유의미한 가치를 만들고, 또 제공할 수 있다.


1. 어떤 맥락에서 (겸손해야 한다; 교육; 돌아보다)

2. 정확해야 한다 (유능해야 한다; 훈련; 바로보다)


이 두 가지를 충족하기 위해서 교육과 훈련을 한다. 제품으로 비유를 들었지만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회에 쓸모있는 사람은 1)겸손하면서 2)유능한 사람이다.


교육의 목표는 돌아보기 위함이고
훈련의 목표는 바로보기 위함이다


훈련이 되어도 교육이 되지 않을 수 있고, 교육이 되어도 훈련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둘 다 필요하다. 피아노 연주를 예로 들어보자. 정확한 연주를 하는데 필요한 건 훈련이고, 듣는 이의 입장이나 작곡가의 입장을 돌아보는 연주를 하는데 필요한 건 교육이다. 교육과 훈련은 상호 보완적이다. 


교육을 통해 겸손한 사람을 만든다. 
훈련을 통해 유능한 사람을 만든다.


조각품을 만들듯 자기 자신을 깨고 다듬으면서 명품으로 만들어 나간다. 이 과정에서 교과서나 학원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 교육이든 훈련이든 그 목적은 자기 자신을 일궈나가는데 있기 때문이다.


훈련은 내 고집을 다듬는 과정이고
교육은 내 고집을 부수는 과정이다.


교육과 훈련은 인격만이 아니라 기술이나 기능 면에서도 적용된다. 수학 문제를 푼다고 하자. 정확한 이해와 정확한 논리는 훈련을 통해 얻어진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정리와 증명을 반복해서 숙달한다. 훈련이다. 그런데 이것을 초보자의 맥락에서 이해하도록 설명하거나, 그 정리를 만든 수학자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가 훈련한 내용을 돌아봐야 한다.


교육은 의도한 바를 넓은 맥락 위에서 돌이켜 성찰하기를 요구하고
훈련은 의도한 바를 좁은 영역 안에서 정확히 수행하기를 요구한다.


좁은 영역의 훈련으로 얻은 뾰족함을 넓은 맥락의 교육으로 부수기를 반복한다. 다듬기 (훈련)와 부수기 (교육)의 반복이다. 


교육은 부수는 과정이고
훈련은 다듬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죽을 때까지 반복한다. 일생을 통해 배우는 과정이다. 


글쓰기라고 하자. 비판적인 사고를 위해서 글의 초점이나 오류를 빠르고 정확히 짚어내는 훈련이 필요하고, 글을 읽는 사람의 맥락에서 내 글을 되돌아보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렇게 배우고 (교육: 학) 익히는 (훈련: 습) 과정을 학습이라고 하며, 학습된 사람들에 의해 세대가 지날수록 문명이 가치를 더하여 발전한다. 


그러면 훈련이 먼저인가 교육이 먼저인가. 상호 보완적인 개념이지만 순서를 따지자면 훈련이 먼저다. 좁은 영역에서 먼저 바로 보아야 넓은 맥락에서 돌아볼 것이므로 그렇다. 그래서 석사과정 이후에 박사과정을 밟는다. 좁은 영역에서 정확해진 이후에 넓은 영역에서 돌아보라는 뜻이다. 아기가 세상을 깨우치는 과정을 보자. 처음에는 기고 걷는 등 단순한 작업을 정확히 해내도록 훈련한다. 능숙하게 될 때까지 수 년이 걸린다. 그러면서 어릴 적부터 익숙하나 그때는 그 의미를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온 것들을 돌아본다. 훈련되어 익숙하지만 그 의미는 나중에야 알게 되는 것들. 예컨대 칫솔질이나 방청소 등이 그렇다. 먼저 훈련하고 잘 하게 된 이후에야 그 의미를 깨우친다. 훈련을 통해 익숙해진 것들을 교육을 통해 점점 넓은 맥락에서 보며 시야가 넓어진다. 그렇게 자기를 점점 넓은 맥락 안에 두면서 점점 겸손해진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점점 더 배운 사람으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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