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니스홍 Jun 02. 2019

나를 조각하기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에서

정보가 쏟아지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이것도 쉽게 배울 수 있고 저것도 쉽게 배울 수 있다. 이것도 좋아 보이고 저것도 좋아 보인다. 자료를 찾는대로 뭐든지 일단 다운로드 받아두어야겠다. 왠지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지만.

인류의 대부분이 하루 한 끼를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살던 시절이 불과 백여년 전이다. 자연에 무수한 동식물이 있지만 그 중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 먹어서 에너지를 얻기에 유익한 것은 그다지 자주 접할 수 없었다. 사람의 장 길이가 7m나 되는 이유는 음식물을 몸 속에 오래도록 품고 있기 위함이라 한다. 음식을 언제 다시 먹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한 번 섭취한 음식을 오래도록 보존하는 편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특히 소화가 느리게 되는 섬유질이 사람 몸에는 더 좋은데, 먹은 뒤에도 오래도록 포만감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굶주림이 기본이던 세상에서는 그랬다. 요즘 우리는 고열량 음식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몸은 그런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몸을 가만 놓아두면 자연히 음식을 원하는데 어느날 뷔페 식당을 매일 무료로 이용할 권한을 얻는다면 살이 안 찌기 어렵다. 몸이 고열량 음식을 원하는 비위를 전부 맞춰줄 처지가 아니라는 전제에서 우리 몸은 음식을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서는 적절한 단식이나 절식이 건강에 유익하다.


또 인류가 자연에서 얻는 수많은 자극 중 기억해서 유익한 것 (=의미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사람은 대부분 무의미한 정보들로부터 자신에게 의미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려내야 했다. 자연에 널브러진 잎사귀나 모래알의 생김새까지 전부 외우려고 드는 것보다,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짐승이 나에게 어떤 해를 끼칠지를 예민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니 정보가 많기를 바라는 것보다 한 번 접한 정보를 깨끗하게 이해하는 편이 자신에게 더 유익하다. 사람이 자신에게 의미있는 정보만 기억하는 이유다. 요즘처럼 우리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된 지도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다. 개울의 자갈 모양처럼 싱거운 정보와 달리, 요즘 접하는 정보는 모두 고밀도로 농축되어 있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편의 연구논문이 인터넷으로 쏟아진다. 그래서 사람 눈에는 모든 것이 의미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전부 다 기억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에 시달리는 것이다. 고열량 음식 섭취가 문제를 일으키듯 고급 정보 과잉도 문제를 일으킨다. 평소에 접하는 대부분의 정보들이 고농도로 압축된 것이라, 나에게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가리는 기본 감각이 마비될 지경에 이른다. 


고열량 음식에 집착하면서 비만이 되는 것과 유사하게, 사람은 인터넷에서 정보를 많이 쓸어담으려 한다. 책을 읽든 신문을 읽든, 검색을 하든, 내가 많이 갖는데 집착한다. 처리는 모르겠고 일단 구입하고 보는 쇼핑객처럼 행동한다. 시선은 내가 아니라 내 밖을 향한다. 그 결과로 머릿속에는 소화되지 않은 정보의 파편이 쌓인다. 다 이해하지도 못할 것들을 전부 기억하려고 든다. 그리고 내일 또 새로운 정보를 찾아다닌다. 이런 세상에서는 적절한 정보 차단이 정신건강에 유익하다. 스스로 소화가 안 되는 자료를 쌓아두면 오히려 낭비가 된다는 말이다. 정신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그렇다.


시선을 안쪽으로 향해보자. 나에게 주어진 음식을 처리하는데 눈을 두기보다 내가 지금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아보자. 굶주린 기분을 지우는데는 소량의 음식이면 충분하다. 그 기분이 충족된 후의 음식은 괜히 먹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미 가진 것을 완전히 정리하고, 다듬고, 소화시키고, 그때 부족한 양 만큼을 외부로부터 받아와 보자. 음식물이 넘치는 세상에서는 일부러 굶는 식단이 건강에 유익하듯,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는 종종 정보를 차단하는 쪽이 정신건강에 유익하다. 평소에 하는 일은 정보수집이 아니라 자기관리다. 소화를 시킨다는 말이다. 자기 생각, 자기 경험을 매일같이 들여다보면서 깎고 다듬는다. 스스로 부족함을 느낄 때에만 외부에서 정보를 들여온다면 어떨까. 안 (IN)과 밖 (OUT)의 경계에서, 바깥쪽에서 접하는 정보의 양은 적은 대신 그 정보를 해석하는 노력은 더 들어가도록 유지해본다. 하나를 오래도록 곱씹는 것이다. 


사람은 평소에 꾸준히 소화를 시키고 가끔 음식을 먹는게 자연스럽다. 쉼 없이 먹기만 하면 소화기관에 문제가 생긴다. 마찬가지로 평소에 꾸준히 자기 생각을 다듬고 반성하면서 가끔 바깥 정보를 취하는 쪽이 자연스럽다. 쉼 없이 남의 정보를 검색만 하고 다니면 나는 스스로 생각할 수 없게 된다. 


많은 양을 먹어서는 완전히 소화시킬수가 없듯, 많은 정보나 복잡한 기술을 한꺼번에 다루어서는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가 없다. 적은 양을 먹고 혼자서 오래도록 소화시킨 후에 다른 정보를 접하는 편이 낫다. 굶은 뒤에 먹는 음식이 더 맛있듯, 생각을 많이 해서 대부분 다 소화시킨 정신상태를 유지해야 새로 접하는 정보마다 그 뜻의 맛 (=의미)을 충실히 볼 수가 있다. 일을 성취하는데 보상이나 칭찬, 기술의 뛰어남이나 서투름 같은 요인을 철저히 배제하는 이유는 내가 다루는 그것을 완전히 이해 (=소화)하는 주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포정과 같이 그를 칭찬한 왕은 이렇게 외친다. "그대는 무슨 비법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종 틀을 만들었나?" 포정처럼 경도 자신이 만든 것이 아주 특별하다는 것을 부인하면서 반박을 한다. "당신의 신하인 저는 비천한 목수에 지나지 않는데, 무슨 대단한 비법이랄 것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몇 차례 질문을 받은 후에 자신의 성공에는 비밀이 있으며, 그 비밀은 자신이 그 일을 시작하도록 하는 정신적인 방법과 관련이 있다고 인정한다. "소인이 종 틀을 만들 때 결코 함부로 기를 소모하지 않고, 반드시 재계하여 마음을 고요하게 합니다. 재계한 지 3일이 되면 상이나 벼슬, 녹봉 따위를 감히 마음에 품지 않습니다. 재계한 지 5일이 되면 비난이나 칭찬, 기술의 뛰어남이나 서투름 같은 것을 감히 마음에 품지 않습니다. 재계한 지 7일이 되면 온전히 평온하여 제가 사지와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홀연히 잊어버립니다." 사람의 사지나 몸에 대한 감각 없이 종 틀을 조각한다는 생각은 이상해 보이지만, 요점은 경의 집중이 모든 외적 요인을 떨어져나가게 했다는 것이다. 
                                                                                                       - 애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p.58 


레이저로 금속을 절삭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전체 모양을 어떻게 그릴지 염두에 두면서 에너지는 한 점에다 집중한다. 그 점은 나와 세계가 의미를 맺는 유일한, 작은, 그러나 대단히 밀도높은 통로다. 한 점을 통해 소량의 정보를 다루되,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는 느낌을 유지해보자. 마음에 와닿는 글귀가 보일 때까지 글을 읽는다. 마음에 와닿는 것을 글로 표현한다.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있어야만 뭔가를 제대로 할 자유도 생긴다. 뭔가를 제대로 한다는 말은 나를 들여다보면서 내 생각을 조각한다는 뜻이다. 내가 나무를 조각하는게 아니고 나무가 나를 조각한다는 말이다.

그런 다음에야 숲으로 들어가 나무의 천성을 하나씩 하나씩 관찰합니다. 완벽한 모양과 생김새가 빼어난 나무를 우연히 발견하면, 이미 그 안에서 완성된 종 틀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손으로 일하기 시작하면 되고, 그러면 그것이 됩니다. 특별한 나무의 부름이 없으면 나는 그냥 갑니다. 이렇게 하면 나의 천성과 나무의 천성이 하나가 되는데, 작품이 귀신의 솜씨로 의심되는 것은 이 때문인가 봅니다!

이 이야기가 전혀 다른 시대와 문화를 살았던 위대한 공공예술가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1475 - 1564)의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는 외관상 초자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조각 재능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일을 위탁받으면 대리석 덩어리에서 작품이 보일 때까지 그냥 기다린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이라곤 불필요한 부분을 떼어 내는 것이었다. 여기서 목수 경의 경우처럼 재료 자체가 예술 과정을 명령한다는 느낌이 있다. 그 예술가가 공헌하는 것은 최소한의 것으로 묘사되고, 그의 창조적 행위는 전혀 힘들이지 않는 것으로 느껴진다.   
                                                                                                     - 애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p.59


어떤 분야의 명인이 작업을 수행하는데 기술과 기교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기술이나 기교란 도로망을 구석구석에 건설하는 일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물류를 운반하는데 도로망이 잘 발달되어 있어야 빠르고 정확하게 운송할 수 있지만 도로를 건설해도 운반할 물자가 없다면 도로 건설은 의미가 없다. 도로 인프라가 잘 발달되면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도로 위에서 주고받을 뭔가가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작품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든다고 말하는 이유다.

제가 처음 소를 잡기 시작할 때 제 눈에는 소만 보였는데, 3년이 지나자 더 이상 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감각과 의식적 자각이 멈추고, 영적 욕망이 나를 인도합니다. 살 속으로 나 있는 자연의 결을 따라 큰 틈 속으로 칼을 밀어 넣고, 뼈마디에 난 큰 구멍을 따라 칼을 당겨 본디 생겨난 길을 따라갑니다. 지맥과 경맥 그리고 경락과 근육이 미세하게 뒤얽혀 있는 부위조차 칼날로 끊어낸 적이 없으니, 큰 뼈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 애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p.56


작가의 이전글 길찾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