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서 위로, 안에서 밖으로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아서
중학교 졸업장을 받아서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아서
학사학위를 받아서
석사학위를 받아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공부가 끝나는 것
'공부를 마쳤다' 라는 개념은
정해진 교육과정에 맞추어 진도를 나가는 제도권 안에서 하는 말이다.
아마존 부족의 어린이는 어른이 하는 일과 같은 종류이면서 가벼운 일을 감당한다. 멧돼지는 못 잡아도 토끼는 잡는 식이다. 자라면서 자연히 멧돼지를 잡을 수 있게 된다. 스무살, 서른살이 되면 그대로 20~30년어치의 경험을 갖는다. 우리나라도 농경사회일 때는 자식이 부모의 가업을 잇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어릴 때 하던 일을 어른이 되어서도 그대로 하므로,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그것의 전문가가 된다. 뿌리부터 열매까지 줄기가 이어진다. 청소년기를 지나 자각이 생길 나이가 되면, 이미 그것을 수 년간 해왔기 때문에 또다른 관심분야를 따로 찾아헤메지 않아도 된다. 진로상담도 필요가 없다. 불투명한 진로라는 개념이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도시가 생기고 사람들이 자기 뿌리를 떠나면서부터 문제가 된다. 도시에서 공교육을 받으며 자라는 어린이는 어른이 되어서 할 일과 전혀 다른 것을 배운다. 어릴 적에는 산수를 배우다가 청소년기에는 문과를 갔다가 어른이 되어서는 고깃집 주인이 될 수도 있다. 스무살, 서른살, 마흔 살이 되어도 어느 분야 하나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경우가 빈번하다. 기본 소양이라는 것이다. 평생에 걸친 전문성을 포기하는 대가로 우리는 누구나 다 갖는 기본 소양을 얻는다. 관심도 없는 전과목을 억지로 배우느라, 높이 올라갈수록 중도 탈락자가 수도 없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다.
공교육은 사람의 개성과 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진 진도만 있다. 모든 발달과정을 위에서 아래로 관리한다. 운이 좋아서 교과 진도가 우연히 잘 맞는 아이만 끝까지 살아남는다. 나머지는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공부를 떠난다. 졸업장이란 곧 더 이상 공부하지 않겠다는 선언문이다. 박사학위를 했다고 전문가가 되지 않는다. 같은 학위의 남들이 다 있는 기본 소양을 그저 조금 높게 갖는 것 뿐이다.
제도권의 교육은 위에서 아래로, 밖에서 안으로 밀어넣으면서 배운다. 배운다는 것도 사실은 착각이다. 시험이 끝나면 대부분 잊고, 졸업을 하고 나면 전부 잊는다. 배운다고 하는 것들이 애초에 자기 뿌리와 관계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배우는 모든 것들에 자기 맥락이 전혀 없다. 교과 진도를 정해준 남의 맥락만 있다.
언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를 사전에 정한 바 없이, 그때그때 아이로부터 기인하는 것만을 꺼내어 다듬어주는 교육이 있다면 어떨까. 아래로부터 위로, 속에서 밖으로 표현하면서 자라나는 교육이 있다면 어떨까. 스무살이 되었을 때 20년 어치의 표현력을 갖게 해주는 교육이 있다면, 서른 살이 되었을 때 30년 어치의 표현력을 갖게 해주는 교육이 있다면. 배우는 모든 것들이 자기 뿌리와 이어져 기억이 되고 추억으로 남는 배움이 있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