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엠케이랩 Dec 16. 2019

DDP에 앉아 머티리얼 디자인을 생각하다

기획의 건축 두 번째 이야기

“건축은 사람들을 연결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 단순히 교차점을 계획하고 장벽을 없애, 만남의 장소를 유용하고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다.” (데니스 스콧)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선 땅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한다. 기반을 다지고, 벽을 쌓고, 지붕을 올린다. 그곳을 우리는 ‘집’이라 부른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있다. 그 사람 역시 자신이 선 땅에 집을 세운다.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두 사람은 나무를 베고, 흙을 다져 연결을 시도한다.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 ∙∙∙∙∙∙. 마을이 만들어지고, 도시가 형성된다.


한때는 한양, 또 한때는 경성이었던 그곳은 지난한 전쟁 이후 많은 것이 사라진 공간이 되었다. 빈자리 곳곳에 누군가는 자신의 집을 지었으며, 자본을 획득한 다른 누군가는 수 십 층의 건물을 올렸다. 필요에 의해 모인 사람들은 제 필요를 제때제때 얻고자 가까이, 보다 가까이 모였다. 그곳이 한양이라 불리던 시절의 대문 하나가 덩그러니 놓인 자리, 그곳에는 옷과 신발, 장신구류를 파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다.


낡고 오래된 건물과 신식의 빌딩, 강점기의 운동장이 밀집한 기묘한 공간, 새로 부임한 젊은 시장은 그곳을 보며 원대한 꿈을 품었다. 상징적인 건축물로 쇠락한 도시를 살려낸다는 빌바오 효과가 펼쳐질 곳을 그곳을 점찍은 것이다. 젊은 시장에게 서울은 쇠락한 도시였으며, 아무런 계획 없이 무분별하게 건축물들이 자리잡은 공간이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부임 직후 서둘러 도장을 찍었으며, 그를 모시던 참모들은 더더욱 급하게 사업을 추진했다. 새 건물을 지을 사람은 빌바오 이펙트에 걸맞는 인물이어야 했다. 서둘러 바다 밖으로 눈을 돌렸으며, 당초 계획과는 달리 천문학적인 액수를 감당하는 것도 문제되지 않았다.


과정에서 소외된 건축가들은 새 건물을 UFO라 불렀다. 누군가는 뱀이라고 말했으며, 조금 더 과격한 누군가는 똥이라고 비아냥댔다. 건축가의 탈 지역적이며 일관된 개성이 드러난 건물을 보며 ‘주변 지역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쏟아지는 비난에 건축가는 


여기 지역 문화랄 게 뭐가 있냐. 패션타운이 내 건물로 들어와 시장을 열어도 난 상관하지 않는다. 그건 정치인들이 결정할 일


이라며 기자회견장을 박차고 나갔다.


과정에서 소외된 건축가들은 새 건물을 UFO라 불렀다. 누군가는 뱀이라고 말했으며, 조금 더 과격한 누군가는 똥이라고 비아냥댔다


구글의 머티리얼 디자인(Material Design)이 공개된 날, 동대문에 자리 잡은 디자인 플라자를 떠올렸다. 지역의 역사나 공간의 기억을 배제한 채 어느 지역에나 자신의 정형화된 건축물을 올리고 만다며 비난이 되었던 어느 건축가의 작품. 그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머티리얼 디자인을 보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앱 고유의 기획과 디자인적 상상력이 사라져 버릴 거예요”라고 말이다.


같은 해(2014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하나의 물리적 실체와 또 하나의 가상적 실체. 둘은 다르지만 꽤나 닮아있다. 하나는 작가 고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그만의 디자인 세계를 구축했으며, 다른 하나는 플랫폼 고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기 위한 방편으로 하나의 정형화된 디자인 방식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출처 : pixabay


장점과 단점은 명확하다. 그 작가 혹은 플랫폼의 세계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용자는 보다 익숙하게 그 작품을 마주할 수 있게 되지만, 자칫 잘못할 경우 주변 환경 또는 개별 아이디어와의 조화가 상대적으로 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건축물과 하나의 디자인 가이드라인에 대한 논란은 이제 다소 김이 샌 모양새다. 긍정과 부정,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은 사용자들이 매일 건물 곳곳을 탐험하고, 하루에도 수 백 번 수많은 종류의 앱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논란이 줄어든 이유는 기획자와 디자이너들의 노력도 한 몫 했다. 그 건축가가 그랬던 것처럼, 기획자와 디자이너들도 같은 가이드라인을 사용함에도 각각의 앱이 새로운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도록 고민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다시 첫 인용구로 돌아가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단어 하나만 바꿔서 말이다. 


기획은 사람들을 연결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 단순히 교차점을 계획하고 장벽을 없애, 만남의 장소를 유용하고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국회의사당, 산으로 간 기획의 맨얼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