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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포츠파이 Nov 27. 2023

1할타자 염경엽 감독이 보여준 진심

2023년 오해를 스스로 극복한 주인공들 2탄

2009년 겨울 LG 트윈스는 7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한때 2위까지 올라가기도 했지만 약한 팀댑스 탓에 주축 선수들이 부상 당하자 맥없이 무너졌고,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LG팬들은 믿을 수 없는 7년 연속 실패에 화풀이 대상을 찾아야 했는데, 그 대상은 감독이나 단장, 주장이 아닌 운영팀장 염경엽이었다. 


이미 팬게시판인 '쌍둥이 마당'은 모든 사태의 주범은 염경엽인 것을 기정사실화하며 '마녀사냥'식의 비난글이 가득했다. 팬들은 경기 중 조인성과 심수창이 신경전을 벌이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망신을 겪고, KIA로 트레이드 한 김상현이 MVP급 시즌을 보낸 이 모든 사태의 주범을 찾아야했다. 이미 김재박 감독은 사임한 상태였고, 시즌내내 프론트에서 정치질한다는 염경엽에게 비난의 화살이 쏠렸다. 


염경엽 당시 운영팀장의 잘못이 하나도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 개인의 잘못' 같은 단편적인 이유 때문에 팀이 망가지진 않는다. 이런식의 마녀사냥은 근본적인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임시방편 땜질식 처방을 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가져온다. 오히려 이 시즌 페타지니라는 거물 타자를 영입한 것은 염경엽의 공이었다. 


염경엽 운영팀장은 팀 사정도 좋지 않은 상황에 전면에 나서 변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소문이 잦아지길 기다렸다. 하지만 근거없이 퍼진 마녀사냥은 겉잡을 수 없이 퍼지기 시작했고 언론들도 이를 놓치지 않고 기사화하기에 이른다. 당시 상황을 놓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회고할 정도로 염경엽 개인의 고통은 극에 달했다. 어떻게든 오해를 풀기위해 2010년부턴 프론트가 아니라 코치로 현장에 나서서 선수들과 직접 호흡하려했지만, 이마저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2011년 수비 코치를 마지막으로 LG를 떠난다. 

염경엽이 LG를 떠난다는 기사가 나오자 엠팍이나 포털 야구 게시판의 LG팬들은 축포를 터트리듯 기뻐했다. 



모든 악의 근원이라 여겨졌던 염경엽이 떠났지만, 그 뒤에서 LG 프런트의 일처리가 후진적인 것은 여전했다. 마치 예전 '펄녀' 한 명 때문에 프로야구판이 개판이 됐다는 '마녀사냥'이 끝난 뒤에도 사고칠 선수들은 사고치고 다녔던 것처럼 LG 트윈스도 큰 변화는 없었다. 2012년부터 가을야구를 맛보긴 했지만 팀 전력은 여전히 부침을 겪었는데 이런 혼란은 2019년 차명석 단장이 부임한 이후에야 잦아들 수 있었다.  

당시 엠팍 관련 게시글. 댓글엔 심증 가득한 비난만 가득했다.

밑바닥부터 감독까지 올라간 '1할 타자'

아마 스타 플레이어 선수 출신이었거나, 평범한 프론트 직원이었다면 이런식의 압박과 비난을 견디기 힘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의지나 의도가 곡해당하고 비난 당하는데 해명할 수조차 없는 상태에 몰리게 되면 포기하거나 순응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염경엽은 2013년 넥센 히어로즈 코치로 직을 옮겨 다시 야구판에 투신했다. 2014년 넥센 감독으로 전격 발탁됐고, 2017년엔 SK 와이번스 단장, 2019년엔 SK 와이번스 감독을 역임했다. 그리고 2023년엔 LG 트윈스 감독으로 자신을 쫓아냈던 팀으로 돌아와 감독 커리어 첫 우승을 달성한다.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선수 때부터 백업선수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최선을 다했던 근성과 자신이 하려는 일이 맞는 일인지 끈임없이 확인하고 이를 굽히지 않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1991년 태평양 돌핀스 소속으로 데뷔한 염경엽은 뛰어난 수비력 덕분에 초창기 많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178cm-64kg의 왜소한 체구 탓인지 타격 능력은 시원치 않았는데 오죽하면 51타석 무안타, KBO리그 최장타석 무안타 기록의 소유자였을 정도였다. 데뷔한지 얼마되지 않아 주전과 백업을 오가는 처지가 됐고 1996년 KBO리그 역대급 유격수로 평가받는 박진만이 입단하자 출전기회는 거의 없다시피 사라졌다. 현대가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해 현대 유니콘스로 재창단하며 우승을 맛보기도 했지만, 백업 선수였던 염경엽의 고민은 깊어갔다. 캐나다 이민까지 알아볼 정도로 제 2의 인생을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만약 이때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면 우승감독 염경엽이 아니라 배트 사업가의 인생을 걸었을 수도 있었다. 


이민이 무산된 염경엽은 코치직을 조건부로 몇 년만 팀 매니저를 맡아달라는 친정팀 현대의 부름을 받는다. 선수 출신 매니저가 어떤 일은 하는지 궁금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이돌 소속사 매니저나 야구팀 매니저들이나 하는 일은 비슷하다. 선수이 운동을 하는데 장비와 일정 뒷바라지를 하고, 전표 정리를 하거나, 선수 개개인의 불편함을 해결해주는 마당쇠 같은 역할이었다. 보통 은퇴 선수들 같으면 코치가 되기전 거쳐가는 자리라 여기고 대충할 법도 하지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얼굴로 오는 헤드샷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심정수를 위해 턱 보호대를 덧댄 검투사 헬맷을 구해온 것도 염경엽 매니저의 공적 중 하나였다. 


팀 운영 매니저로 최선을 다했지만 열악해진 현대 팀 사정 때문인지 약속했던 코치직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래도 두산이나 LG 등 다른 팀에서 염경엽의 열정을 높이샀다. 그 중 LG는 코치직을 조건으로 스카우트 자리를 제안했고 2008년 현대에서 LG로 옮겨간다. 그리고 그 이후 스토리는 앞서 언급한대로 차근차근 윗계단으로 올라가는 스토리가 이어지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긍정적으로 변할수 있다.

물론 LG를 떠난 이후에도 우여곡절은 많았다. 


매니저 시절부터 디테일한 부분을 챙기는 성격 때문에 감독이 되서도 선수들을 너무 디테일하게 챙기다보니 '잔소리가 심하고' '자기말 안듣는 선수를 대놓고 싫어한다' 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자신이 속한 조직에 공유하려하는 성격이 컸는데, 일반적인 회사라면 긍정적인 요소지만 폐쇄적인 야구단에선 자칫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상부를 거스르는 정치질을 한다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는 외곬수라는 오명을 들을 수 있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특히 2019년 우승 단장에서 감독으로 역할을 바꿨을때 사람들의 오해는 극에 달했다. 이로인해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경기 준비도중 쓰러지는 불상사가 발생했고 결국 시즌 도중 감독직을 사임해야 했다.


바뀌지 않을 것 같던 염경엽은 2023년 LG 감독으로 돌아왔을때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개개인의 사정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공감 능력을 갖추게 됐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기존 자신의 장점과 시너지를 내기 시작했다. 


정치질을 잘한다는 평가는 위아래를 넘나들며 조율을 잘하고 팀 관리에 탁월하는 평가로 바뀌었고, 잔소리가 심하다는 평가는 팀 내 어느 누구와도 실무에 대해 토론하고 결론을 도출하며 실행할 수 있는 합리적인 리더란 평가로 바뀌었다. 한국시리즈에서 박동원이 역전 홈런을 때리고 덕아웃에 들어와 염경엽 감독을 질질 끌고 선수단과 함께 환호하도록 만드는 장면은 4-5년 전엔 상상도 못할 장면이다. 


한국시리즈 2차전 참치에게 끌려가는 염갈량


그리고 바뀐 염경엽 감독의 리더쉽은 결국 2023년 한국시리즈에서 LG 트윈스를 29년만에 우승을 되찾게 만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오해를 받고 상처를 받으며 좌절한다. 

혹자는 그 순간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포기하거나 떠나지만, 혹자는 어떡하든 상처를 봉합하고 더 단단한 굳은살과 경험을 무기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식으로 10~20년이 지난 뒤엔 두 사람의 결과는 전혀 다를 가능성이 높다. 


"두려움과 망설임은 최고의 적이다"
- LG 감독이 되고 팀 라커룸에 걸어놓은 좌우명


물론 가능성 없는 일을 붙잡고 매달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고 포기하면 후회할 것 같은 상황이라면, 2023년 염경엽 감독의 성장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긍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될 것 이다. 


51타석 무안타의 한숨 나오는 타자가 잡일하는 매니저를 거쳐 우승팀 감독이 되기까지의 성장과정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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