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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일 Sep 10. 2023

거미를 헤치다.

26인치 팻바이크 전기자전거는 크고 무거웠기 때문에 실외에 둘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 쓰레기 처리장 옆에 있는 실외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두었다. 그곳은 바닥이 시멘트로 잘 포장되어 있었고, 지붕도 있어서 비가 오는 날에도 안심이 되었다. 


하루는 연두색의 알록달록한 무당거미가 자전거 거치대 한쪽 편에서 집을 짓고 있었다. 거미도 명당을 알아보는 듯했다. 비도 피하고, 천적도 피하고, 가로등도 있고, 쓰레기도 있으니 벌레도 많이 잡힐 것 같았다. 


나는 거미의 활동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거미줄이 몸에 닿지 않는다면, 굳이 거미줄을 부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반대로 거미줄이 나의 자전거에 엉겨 붙어서 자전거의 이용에 불편함을 준다면 단연코 없애야 했다. 나의 철거의 논리는 인간 중심적이고 편향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길에서 사는 고양이나 까치, 까마귀도 거미에 대해서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후로도 거미는 영리하게도 마치 나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 나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석 달이 지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종종 자전거를 가져가거나 가져올 때, 거미줄을 관찰했다. 어떤 때는 거미줄에 파리 몇 마리가 걸려 있기도 하고, 손바닥만 한 매미가 붙어 있을 때도 있었다. 거미는 식욕이 왕성했다. 아무리 거대한 먹이도 며칠 만에 다 먹어치웠다. 거미줄은 점점 더 확장했다. 거미줄은 수완 좋은 사업가의 기업처럼 번창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성실함에 감동을 느꼈고, 자연이 나처럼 어리석은 인간에게 교훈을 주기도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비가 계속 내렸다. 장마였다. 


장마가 끝나고 자전거 손질을 하러 갔다. 거미줄에서 작은 움직임을 발견했다. 거미 새끼였다. 한 마리, 두 마리....... 모두 다섯 마리였다. 나는 거미의 출산을 축하할 겸 파리  한 마리를 잡아서 거미줄에 널어놓았다. 파리는 거미줄에서 버둥거렸지만 그것은 거미에게 신호를 주는 것이었다. 거미는 알록달록한 다리를 바쁘게 움직여 파리를 음식으로 만들었다. 거미가 나의 선물을 기쁘게 받아줘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자전거 체인에 기름칠을 한 뒤, 회색 커버를 씌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주말 동안은 자전거 탈 일이 없다. 


삼일 뒤에 자전거를 꺼내러 갔다. 세상에! 맙소사!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단 삼일 만에 내 자전거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어린 거미들이 나의 자전거와 다른 자전거 사이를 흰색 거미줄로 덮어버리고 그곳에서 놀고 있었다. 이것은 명백히 나와 거미 사이에 금 그어 놓은 영토 협상 위반이다. 이것은 거미가 걸어온 전쟁 선포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거미와 공존할 수 없다. 나는 분노하기로 했다. 기다란 나무 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나무 막대기는 거미줄 한 복판에 떨어졌다. 거미줄은 한 번도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사라졌다. 거미들이 달아났다. 신발이 쿵쿵 소리를 내며 그들을 짓밟았다. 265mm 누벅 가죽 등산화가 그들에겐 탱크만큼 무서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들의 출발지였던 거미줄도 모조리 제거했다. 어미 거미는 다리 두 개를 잃은 채 땅바닥에 체액을 흘리며 길게 뻗었다. 개미 떼가 어미 거미에게로 몰려왔다. 어디선가 시끄러운 아기 비명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방금 한 일을 모두 잊어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거미 몇 마리 죽인 일이 기억할 가치가 있는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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