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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일 Jun 20. 2019

만약, 먹던 쫄면에 당신의 눈썹이 떨어진다면?

 매운 음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우연히 들어선 식당에서 국물이 없으면서 시원한 음식은 쫄면밖에 없었다. 

"사장님! 여기, 쫄면 하나랑 왕만두 2인분 주세요."

"왕만두 2인분이요? 손님, 혼자 드시기 좀 많을 텐데."

"안 많아요. 저는 혼자 3인분도 먹는데요."

 쫄면은 1인분 먹더라도 만두는 2인분을 먹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쫄면보다 만두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더 사랑하는 음식은 양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싶어진다. 음식을 주문하는 동안, 잠깐 뉴스를 본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평양에 도착했다는 뉴스다. 미국의 트럼프와 무역전쟁 중인 시진핑 주석, 아마도 비행기에서 주판알 좀 꽤나 튕겼을 거다. 북핵 문제 해결로 미중 무역 갈등을 풀어보겠다는 듯한데, 갈등이 풀릴지 아니면 또 다른 갈등이 시작될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시진핑 주석이 평양을 방문하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흥미가 생긴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금리를 인하한다는 이야기도 보인다. 금리 인하는 우리에게 뭘 의미하나? 그것은 아마도 돈이 많이 풀린다는 것이고, 물가는 오른다는 것이고, 이자가 싸진다는 것이겠다. 사람들 호주머니에 빌린 돈이 잔뜩 몰리면, 사람들은 그 돈을 싸 들고 무엇을 할까? 집을 살까? 공장을 지을까? 주식을 살까? 그것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 집에게는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은행 예금 금리가 지금보다 더 떨어지기 전에 새로 적금을 하나 더 들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시원한 쫄면과 큼직한 왕만두가 나의 테이블 위로 올려졌다. 만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게 매우 뜨거워 보였다. 에어컨 바람에 식혔다가 먹어야 한다. 

 '그럼, 우선 쫄면부터 먹어볼까?'

 나는 젓가락을 한 짝씩 나눠 쥐고 면을 요리조리 비볐다. 붉고 달큼한 비빔 소스가 윤기나는 면줄을 타고 흘렀고, 들깨가루와 각종 채소 고명이 군침을 흐르게 했다. 침이 '꼴깍'소리를 내며 목구멍을 넘어갔다. 아! 당장 흡입하고 싶다!

 너무 몰입했던 탓일까. 그때, 나의 눈에서 반달 모양의 눈썹이 툭 떨어졌다. 내 이성은 지금 당장 비비던 작업을 멈추고 저 눈썹을 수습해야 한다고 외쳤지만, 내 손은 관성대로 비볐다. 눈썹은 비빔 소스 사이로 사라졌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 어쩐담! 한입도 못 먹었는데.'

그때, 악마가 속삭였다. 

 '사장님의 눈썹이 떨어졌다고, 바꿔달라고 할까?'

천사가 소리쳤다. 

 '아냐! 아냐! 그건 거짓말이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면 안 되지!'

합리적 이성이 말했다.

'문제는 눈썹이야. 지금이라도 눈썹을 찾아내면 안심하고 쫄면을 다 먹을 수 있어.'

그렇다! 눈썹만 찾아내어 건져 먹으면 된다. 좋은 생각이 났다. 면을 한 가닥씩 건져서 확인해서 먹는 것이다. 그러면 눈썹을 육안으로 금방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운이 좋으면 몇 가닥만에 눈썹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섬세한 젓가락질로 쫄면의 무리들 속에서 단 하나의 면을 조심스레 건졌다. 경찰 과학 수사대가 사건 현장에서 범인의 흔적을 찾듯이 면을 요리조리 살폈다. 혹시나 몰라서 앞뒤로 흔들어 보기도 했다. 완벽하게 깨끗하다! 나는 안심하고 만족스럽게 첫 번째 면을 후루룩 먹었다. 

 둘째 면도 그랬고, 셋째, 넷째 면도 그랬다. 열 번째 면을 젓가락으로 집어 들었을 때, 손이 저렸다. 어제 아침에 아파트 놀이터에서 턱걸이를 많이 했는데 그때 무리해서인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속도로 젓가락질을 하면 식사 시간이 끝도 없이 길어질 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한 번에 4 젓가락씩 확인하자!'

 나는 뭉텅이로 면을 들었다. 아까만큼 꼼꼼하게 면을 확인했지만, 먹는 기쁨은 배가 되었다. 먹는 기쁨이 점점 올라오자 점차, 면을 확인하고 먹는 속도도 빨라졌다. 먹는 즐거움이 이런 것이구나! 입에서 노동요처럼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중간중간에 눈썹 비슷한 물체가 보이긴 했지만, 자세히 보니 눈썹이 아니라 김가루가 물에 풀려서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면의 양은 줄었고 그릇은 비어갔다. 잃어버린 눈썹을 찾을 수 있는 확률도 점점 올라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긴장이 풀렸고 처음과 같은 꼼꼼함은 없고 대충 면을 그릇에 털고 먹게 되었다. 단, 몇 가닥의 면을 남겨뒀을 때, 나는 그 면을 바로 먹지 못하고 여러 번 요리조리 둘러보며 확인했다. 분명히 눈썹이 있어야 했다. 비빔 소스도 바닥에 거의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에, 그 면에 달라붙어야 하는데, 그래야 나는 눈썹을 먹지 않는 것이 되는데...... .

 "꺽."

 나는 트림을 하고, 물을 한 잔 마신 뒤, 왕만두까지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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