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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일 May 03. 2019

어린이날 선물

 일주일 전쯤이었다. 저녁에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아이패드가 요란하게 울렸다. 페이스타임 통화였다. 아이패드를 집어 드니, 화면에 두둥 첫째 조카 얼굴이 떠올랐다. 


 "삼촌, 이번 어린이날 선물에 뭐 사 줄 거야?"


 아하! 벌써 5월이지. 5월 5일이 어린이날이라는 걸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그럼. 삼촌이 벌써 준비해뒀지."


 나는 웃으며 태연자약하게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핸드폰으로 바삐 어린이날 선물을 검색했다. 처음 눈에 들어온 선물은 부가티 시론을 모델로 만든 레고였다. 첫째 조카는 레고를 무척 좋아한다. 분명, 이것을 받아 들면 만족스러워할 것이다. 그러다가 두 번째로 눈에 들어온 제품은 물총이었다. 요즘 날씨도 더운데, 디자인공원에서 조카와 물총 놀이를 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물론, 나는 주로 물을 맞는 역일 것이다. 나는 두 가지 선물을 영상통화로 보여주었다. 조카는 두 가지 선물이 모두 마음에 들었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삼촌! 오늘 하루 정도 고민한 다음에 내일 말해줄게."


  나이에 맞지 않게 매우 신중한 대답이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아침에, 카톡으로 답장이 왔다. 


<삼촌, 아무래도 물총이 좋겠어.>


 그래서 대형 물총을 샀다. 

 첫째 조카 선물은 인터넷으로 주문하니 금방 도착했다. 도착한 물건을 받아 보고 나니 둘째 조카 선물을 안 산 것이 마음에 걸렸다. 둘째 조카는 아직 3살이라서 어린이 날이 뭔지 모르지만, 눈치가 빨라서 형이 뭔가를 하나 얻으면 자기도 갖고 싶어 한다. 내가 첫째에게만 주고, 자기한테는 아무것도 안 주면 나에게 뛰어와서 커다란 눈망울로 간절하게 나를 바라보며, 

  

"나그! 나그! 나그! (나도! 나도! 나도!)"


 외치면서 항의를 할지 모른다. 누나는 첫째 조카 선물만 사라고 말을 했지만, 3살 된 조카 선물을 안 사면서 돈을 아껴봤자 뭐 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 같은 조카에게 선물이라고 해봤자 돈 몇 천 원짜리 선물을 안겨 주면 되는 것이다. 어린 아이한테는 장난감은 5천 원 짜리나 50만 원 짜리나 다 비슷한 물건이다. 중요한 것은 삼촌이 나타나면 어린 자기한테도 뭔가 돌아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믿음과 신뢰를 주는 것이 핵심이다. 

 

 오후 햇살이 저물 무렵 다이소에 갔다. 다이소에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물건을 고르려고 북적였다. 나는 인형 코너에서 적당한 인형을 몇 개 골랐다. 인형을 고르는 나만의 요령이 있는데, 인형은 얼굴 표정이 재밌어야 한다. 상투적인 표정을 짓는 인형들은 제외 1순위였고, 웃는 얼굴을 하더라도 그냥 웃는 얼굴이 아니라 보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인형이어야 했다. 

 그래서 첫 번째 고른 인형은 가지였다. 웃는 표정이지만, 썩소를 날리는 듯 입술이 조금 삐뚤어진 모습이 개성적이었다.


'이걸 살까?'


 몇 초간 망설였는데, 생각해보니, 이건 안될 것 같다. 가지의 보라색이 왠지 피부색이 파리한 병자처럼 느껴졌다. 어린 조카가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야 하는데, 이걸 조카에게 선물해주면, 어린 조카가 보라색 인형을 사랑한 나머지 무의식 중에 자기 피부색도 보라색처럼 핏기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길까 봐 두려웠다.

  

 두 번째로 고른 것은 배추였다. 씩씩한 배추, 모자도 건전해 보인다. 게다가 얼굴 표정이 무척 웃겼다. 

'둘째는 이걸로 하자!'

 배추를 안고 계산대로 향하니, 다이소 직원도 인형을 보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벌써부터 흥행 조짐이 보였다. 어린이날 조카들에게 사랑받는 삼촌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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