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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일 Apr 17. 2019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를 보며

고 노회찬 의원을 추모한다. 

2018년 7월 어느 날이었다. 나는 집 밖을 나와 뜨거운 햇빛을 피해 그늘을 따라 길을 걷고 있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을 따라 내려가니 한적한 동네에 400년 된 느티나무가 서 있었다. 


굳이 수령을 읽지 않아도 조선 왕조의 역사만큼은 되었으리라 짐작이 될 만큼 거대하다. 몸통은 코끼리처럼 우람하고 하늘로 뻗어가는 나뭇가지와 잎새들을 합하면 푸른 고래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 거대함과 긴 역사에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무는 스스로 서지 않았다. 

나무 옆구리 사이로 쇠막대기가 나무를 지탱하고 있었다. 

인간이 만든 쇠막대기가 없다면 나무는 쓰러지거나 부러질 터였다. 

인간이 억지로 수령을 늘리고 있었다. 

나무는 더 살고 싶을까? 

아니면, 죽어서 거름이 되어 자식 나무들의 양분이 되고 싶을까?


폭염에도 싱싱하게 뻗어가는 나뭇가지들을 보면, 나무는 살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나무의 기우뚱한 몸을 보면 이제 그만 영원한 잠에 빠져들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자연의 법대로라면, 나무는 중력이 이끄는 대로 쓰러지는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과거의 아름드리나무로써의 위풍당당했던 역사를 뒤로하고, 다음 세대의 나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양분이 되는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부러지지 않고 죽어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하다고 기형도 시인은 말했었지.

노동자를 위해 일했던 노회찬 의원은 죽었다. 그의 죽음은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한국 사회의 비극이다. 그만큼 노동자 인권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정치인은 한동안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리사욕에만 눈이 어두워 거짓말과 막말을 일삼는 노회 한 정치가들은 살아남는다. 오늘도 그들은 영웅의 죽음을 조롱하며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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