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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da Jul 10. 2021

서른 살, 호주에서 노점상을 시작하다 (3)

첫 번째 일요일 (2)



일요일 오전 9시부터 2시까지

시티 외곽에 있는 작은 헤이그 공원

그중에서도 구석에 위치한 3m x 3m 공간이

우리에게 허락된 전부였다.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우리 둘이서 시작을 하기엔 충분했다.


가제보 밑에 기다란 테이블 2개를 기역자 모양으로 두고

한쪽 테이블에서는 내가 주문을 받기로 했고

다른 한쪽면 테이블에서는 남자 친구가 셰프로 일하기로 했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미리 만들어서 가져오는 빵을 팔기보다는  

주문이 들어오면 그 자리에서 바로 구워서

따끈따끈한 빵을 내가는 방식을 택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자격증을 따느라 비용이 좀 더 들었고

야외라는 특성상 전기를 끌어올 수 없어서 발전기와 기름도 구매해야 했지만

갓 구운 빵만큼 맛있는 게 없었기에

맛이 관해서는 아낌없는 투자를 하기로 했다.






헤이그 공원은 시티 살짝 외곽에 있는 작은 공원에서 일요일 아침에만 열리는 작은 마켓임에도  

이곳에는 이미 우리 외에도 60여 개의 매장들이 자신만의 물건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제 막 들어온 신참인 우리의 자리는 제일 구석진 끝 자리였고

줄지어 늘어선 천막들 사이를 걷고 또 걸어야 우리의 자리가 보였다.



처음 시장 조사할 때는 빵집이 3개 정도 있었는데

우리가 시작할 때 보니 7여 개 정도가 크로와상, 컵케잌, 프레첼, 도넛 등등

가지 각색의 베이커리류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제야 우리의 경쟁력은 그 자리에서 갓 구운 빵이라는 점과

3.5불이라는 싼 가격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백종원 선생님 말씀을 따라 가격을 책정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어느 한 분야에서 정상을 찍은 사람은 달라도 뭔가 다른 것 같다.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매 순간 정말 백종원 선생님 말씀은

한국 시장뿐만 아니라 호주 시장에서도 틀린 게 하나 없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아침 9시, 가제보만 덜렁 하나 쳐두고 서서 사방에서 들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자니 손과 발이 너무 시렸다.


우리가 있는 곳은 호주 캔버라 지역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생각하는 화창한 호주 날씨와 다르게

쌀쌀하고 패딩을 꼭 챙겨 입어야 하는 한국의 늦가을~초겨울과 비슷한 날씨를 지녔다.


일요일이라 다들 늦잠을 자는지 지나가는 사람들도 몇 없었고

간혹 강아지 산책을 하는 사람들만 보였다.


빵이라는 제품의 특성상 오늘 팔지 못한 제품은 다 버려야 했기에

9시 20분이 되도록 한 개도 팔지 못하자 긴장감이 한층 고조되었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기 전에

어떻게 되든 오늘 가져온 건 다 팔아보자!라고 심기일전하고

저 멀리 지나가는 사람도 눈만 마주치면 인사를 하고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누구든 눈만 마주쳐라 하는 마인드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보이기만 하면 바로 헬로~ 웰컴투크로플을 외치고

너무 멀어서 말소리가 안 들릴 거 같은 사람에게는 두 손으로 엄지를 날리며 제품을 어필했다.



남자 친구는 빵 냄새로 사람들을 유혹하기로 하고

어차피 못 팔면 버릴 거 그냥 계속 크로플을 구워냈다.











세상일 모든 게 다 불공평해도

노력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고

우리의 발악은 금방 빛을 보았다.



10시가 다 되어가는 순간부터

갑자기 우리 자리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사람이 하나 둘 가게 앞에 모이기 시작하자

그걸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계속 주문을 해서 크로플을 계속 구워내니

고소한 버터 냄새가 주변에 퍼지는 덕분에 그 냄새를 맡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손님이 다시 손님을 불러들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10시 30분이 될 무렵부터 어떤 리듬에 올라탄듯한 기분이 들었다.

꾸준히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고

우리가 준비해 간 도우들도 한 통 두 통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구워서 그 자리에서 포장까지 해가는 시스템이라서

정신이 없었지만 장사가 잘 되기 시작하자 힘든 것조차 즐거웠다.



다만 첫날이다 보니 장사가 잘되어도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문제들에 부딪혔다.


일단 이렇게 사람이 몰리는 시간을 대비하지 않은 바람에

주문 내역을 적어둘 펜과 노트가 없었다.


그래서 영수증이 나오면 그걸 테이블 사이에 끼워두고

그 금액을 통해 대충 어떤 메뉴를 몇 개 시켰는지

기억하는 방법으로 위기를 넘겼다.


중간중간에 기억이 제대로 안 나서 일단 구워놓고

주문한 사람 아무나 물어보고 주기도 했다.



특히 호주에서는 손님 이름을 꼭 물어보고 기억해서 불러주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적을 공간과 펜이 없다 보니 이름도 물어보지 못했다.

대신 one classic croffle~ two cheese croffle~ (클래식 하나요~ 치즈 두 개요~)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불러야 했다.


실로 매우 초보적이고 어색하고 부족했던 서비스였다.


그래서 다음 주 장사 때는 꼭 포스트잇과 볼펜을 챙겨서

주문 순서대로 메뉴를 적고 이름도 물어봐서

좀 더 원활한 진행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포스기 였다.

카드 결제를 위해서 여러 가지 포스기를 고민해보다가

호주 커먼웰스 은행과 연계된 포스기를 대여했다.






대여할 때 분명 배터리를 충전하고 나면 8시간 이상 사용 가능하다고 했는데

막상 사용해보니 6시간 만에 배터리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그래서 거의 끝무렵에 손님을 받을 때 포스기가 자동으로 종료되는 바람에

결제가 불가능해서 돈을 안 받고 빵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손님이 결제 안 하고는 안 받겠다고 그냥 간다고 그래서

다시 시도해본다고 하고 다시 기계를 켰다.


어차피 못 팔면 버려야 하는 거 마지막 남은 빵은 그냥 드릴 수도 있었는데

한사코 싫다고 그냥 간다고 했다.


으레 핸드폰도 배터리가 없어도 한 번은 다시 켜지듯이

포스기도 다시 켜자 딱 몇 번 더 주문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배터리가 다시 돌아와 있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마지막의 마지막 빵까지 전부 팔 수 있었다.


다음 장사 때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포스기 충전기, 핸드폰 충전기 전부 다 챙겨 오기로 다짐했다.








이 외에 메뉴에도 문제가 있었다.


우리가 가져간 건 플레인, 누텔라, 치즈 이렇게 총 세 가지 맛이었는데


날씨가 너무 춥다 보니 누텔라가 딱딱하게 굳어서

짤주머니를 이용해 뻑뻑해진 누텔라를 짜는 일도

힘에 부쳤고

손님의 입장에서도 누텔라가 너무 굳어서 맛이 없는 상태였다.




만들기만 힘들었다면 어떻게든 팔았을 텐데

맛도 없으니 괜히 첫 장사부터 이미지가 나빠질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누텔라는 몇 개 팔아보다가

바로 sold out 품절이라는 푯말을 걸어버렸다.







그리고 남은 문제의 누텔라들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버렸다.


오늘은 바로 우리의 첫인상이었고

우리의 목표는 한 번 사 먹었던 사람이 또 사 먹으러 오는 것이었기에

맛이 없는 건 절대 팔지 말자고 아까워하지 말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실패에도 봉착하고 손님들도 몰리고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12시를 넘긴 시간이 되어있었다.


그쯤 되자 다시 손님들이 한산 해지기 시작했다.


준비해온 도우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해보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가져온 도우 세 통 중에 이미 두 통 반을 다 판매한 후였다.





“우리 남은 게 이게 다야?”



내가 놀라서 물어보자 그때까지

정신없이 크로플을 굽던 남자 친구가 뿌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거봐 내가 이거 팔린다 했지? 내가 맛있다 했지?”



깐족거리는 듯한 말투를 듣자 뭔가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장사가 잘되니 기쁜 건 기쁜 일이었다.



그리고 남은 반통마저도 오후 한 시가 되기 전에 다 팔려서

우리의 첫 오픈 날은 완판! 매진! 성공!이었다.



마켓 시간은 2시까지 였지만 이미 준비해온 모든 제품을 판매했기에

바로 자리를 정리했다.


남자 친구가 먼저 무거운 발전기랑 기타 등등을 수레에 싣고 집으로 갔고

나는 남은 물건들을 정리하며 남자 친구가 다시 돌아오길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오늘 찾아와 줬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리기 위해 핸드폰을 켰다.

하필 제일 바쁜 시간에 친구들이 찾아오는 바람에 제대로 고맙다고 인사도 못하고

돌려보내서 신경이 쓰였다.



인스타에 정말 맛있었다고 사진도 올려주고

사진도 찍어서 보내줘서 정말 맙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다 팔았다고 하니 다들 축하한다고

정말 맛있었다며 좋은 말들을 보내줬다.




첫날 첫 오픈, 여러 가지 문제들은 있었지만

준비해 간 물품은 전부 판매했고

사람들도 모두 맛있다고 하고 반응도 좋았고

이렇게 앞으로도 꽃길만 펼쳐질 것 같았다.


부푼 꿈을 안고 그날 저녁 집에서 물건 정리를 끝낸 후

단잠에 빠졌다.


이렇게 첫날부터 장사가 잘된다면

2호 점도 내고 3호 점도 내는 미래가

코앞일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가 잠든 사이 핸드폰으로 메시지 하나가 날아왔다.



호주에서 다시 코로나 케이스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날 자정부터 락다운과 마스크 의무화가 시작됐다는 내용이었다.


이제 막 가게를 시작한 우리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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