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와서 살 건 못 돼!”
눈가에 주름 잡힌 아내의 오랜 친구는 목소리를 높이진 않았지만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 말엔 7년 이민 생활의 고단함과 달관이 동시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녀는 예쁘고 예의바르게 자라고 있는 두 아이 부모로서 자기 몫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무리하지 않고 돌아올 수 있는 기회만 있다면 망설임 없이 한국행을 택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긴 제가 알기로도 미국은 그런 나라였습니다. 30대 중반부터 출장이며 이런 저런 용무로 그 나라에 드나들기 시작한 이후로 미국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대체로 피곤해 보였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겐 자신이 사는 모습을 다 드러내지는 않으려고 그곳에서의 ‘괜찮은’ 삶을 포장하지만 얼마간 익숙한 사이가 되면 그곳에서 먹고 사는 일의 버거움이나 한국인 이민 사회의 배신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곤 했었습니다. (물론 미국만 그런 건 아니고, 모든 이민 사회가 그럴 것입니다.)
제법 오랜만에 방문한 ‘사람 사는 세상’으로서 미국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지방 정부가 도심 교통 체증을 해결해 보겠다고 시작한 경전철 사업이 세금 먹는 하마로 변질해 버렸음을 알게 된 납세자(tax payer)들의 비아냥거림이나 미국 전역에서 모여든다는 집 없는 부랑자(homeless)들에 대한 주 당국의 우유부단한 대처에 대한 불만은 그 도시를 찾은 지 24시간도 되지 않은 방문객에게도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심(downtown)은 명품을 찾는 부유층(혹은 비슷한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서민들)을 끌기 위해 과도하게 치장된 가게들과 그 호사스러움을 좇아 어딘가로부터 왔다가 피곤함을 더한 채 흩어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가난한’ 우리 일행 또한 호탕한 웃음을 날리며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데는 손색이 없어 보였지만 마음 한구석 오롯이 자리잡은 개운치않음 또한 떨쳐지지 않았습니다. 관광차 해외에 갈 일이 많진 않지만 다들 자기 삶에 지쳐 허덕이는 대다수의 현지인들의 삶에 다른 목적으로 끼어드는 현실은 낭만과는 크게 거리가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맨 처음 뉴욕을 찾았을 때 보았던 그 번잡스러움은 그 삶에 익숙해진 현지인에겐 자연스러운 것이었겠지만, 지방 출신인 제가 혼자서 서울에 올라와 강남고속터미널 찬바람을 맞으며 느꼈던 스무 살 겨울의 허전함과 비슷한 면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호화로움에 익숙해지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습니다. 요즘 말로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라이프 스타일”엔 하방경직성이 있습니다: 생활 수준을 한 번 높이고 나면 좀처럼 아래로 내려가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마지막 자존심이 무너질 때까지는 그 스타일을 유지하려는 것 같은 허세쯤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인간은 원래 낙원에서 살게 되어 있기 때문인가요? 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 들면서 그 허세를 떨쳐내는 얼마의 솔직함을 얻게 된 건 다행입니다. 한국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도시에서 살면서도 “이민 와서 살 건 못 돼!”라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단칼에 난도질하는 그녀의 솔직함에 마음이 편안해지기까지 한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속사람을 소중히 여길 줄 알게 된 ‘나이듦의 보너스’ 때문일 것입니다. ***
사진: 한국인만 알아 보는 오아후섬의 지도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