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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계영 Feb 17. 2016

향기(香氣)와 온기(溫氣)

 – 세련미와 인간미에 대하여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마음을 빼앗는 화장 향수 냄새를 맡을 때, 아내에게 그런 향수 하나 선물해야겠다고 마음 먹기 전까지 잠시 소속 불명의 생각을 했다면 그것은 인류의 위대한 고안품인 향수가 저를 향해서도 효과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자신의 향기를 냅니다. 봄날 들꽃처럼, 외모가 예쁘거나 화려하지 않아도, 그리고 누군가가 선물했을 향수를 뿌리지 않았어도 그러합니다.

틀림없이 그 향기 때문에 만난 연인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 향기가 체취가 아니라 화장 향수든 혹은 어느 소설에 나온 비누 냄새였든 간에 그것은 더 이상 제조업자의 원재료 선택이나 배합 공식의 산물이 아닌, 소위 ‘필연적 만남’을 촉발한 매치메이커가 된 것입니다. 이 얘기가 길어지면 삶의 행복한 만남을 너무 깎아 내리는 삐딱함으로 보일 터이니, 이제 그만하겠습니다. 사실 향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사람을 끄는 다른 종류의 느낌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해 늦가을 꽤 매서운 찬 바람 부는 야외에서 오전을 보낸 뒤 외로운 젊음의 뒷골목에 있던 저의 하숙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추위로 곱은 손을 녹이려 욕실의 온수 꼭지를 틀었을 때, 아! 그때 쏟아져 내린 그 따뜻함이란 … 그 느낌은 곧바로 몸 전체를 감쌌고 저는 인생 모든 긴장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였을까요? 그건 아마 그날 오전에 만난 어떤 사람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그 사람의 태도, 말씨, 눈빛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미국 출장 중에 한 분의 초대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대기표를 받고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사람들 속에 서서 꽤 오래 기다려야 했는데—저는 그런 곳을 싫어합니다. 붐비는 백화점, 버스 터미널 대기실 … 이런 곳은 교감이 없는 맹숭맹숭한 눈동자들만 저를 쫓아 다닙니다— ‘미국인들도 차 한 잔 하자고 이런 요란을 떠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차례가 되어 테라스에 있는 자리로 안내 받았을 때, 아, 이럴 수가! 그곳은 조금 전까지 20여 분간 서 있었던 기다림의 공간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우리를 맞이하였습니다. 호화스러운 곳은 아니었지만, 거기엔 너무나 차분한 분위기와 정감을 뿜어내는 시선들, 무엇보다도 꽤 쌀쌀한 밤 공기로부터 저를 감싸 주는 그런 느낌이 있었습니다.

잠시 후 밤하늘을 향해 언뜻 고개를 들었을 때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스 히터였습니다. 사람 키 한 배 반 정도 높이에서 우리를 내려다 보며 감싸는 듯 온기를 내려 주던 그것은 기둥 위에 붙은 조그만 가스 램프에 소박한 갓을 씌워 만든 그런 것이었습니다. 머리를 적시며 내려 오는 그 온기는 온갖 비판과 경계심을 만들어 내기 위해 제 머리속에 준비된 섬세한 장치들을 밀랍처럼 녹여 버렸고, 마치 꼬냑(cognac)을 처음 마셨던 저녁에 그랬던 것처럼, 저는 너무나 우호적이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어 그 저녁 대화를 즐겼습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조합의 우리 일행은 빗속에서 한 우산을 쓰고 좋아하는 아이들처럼 그 온기의 우산 아래서 가벼운 대화를 나누느라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향기로운 사람—멋진 향수를 뿌린 사람을 포함해서—의 옆을 지나칠 때 잠시 생각이 멈추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보다 저는 경계심을 풀게 하고 느긋해지게 하는 온기를 지닌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나 제가 아는 젊은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의 향수로 단장하는 센스에 더하여 제가 만난 몇몇 사람들처럼 따뜻함으로도 기억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소문으로 듣는 위대한 모험담이나 먼 발치에서의 동경보다는 함께하면서 나누는 일관성 없는 대화를 더 좋아합니다. 가벼운 대화를 위해 반경 2미터 안의 공간에 마주 앉은 사람에게는 그 어떤 세련됨이나 명성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온기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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