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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계영 Feb 17. 2016

무지(無知)에의 부지(不知)

Unknown unknowns

언젠가 단지 사업상의 필요에 의해서 광학(optics)을 공부해야 했던 적이 있었다. 학창 시절 물리학 시간엔 그토록 복잡하고 이해되지 않던 온갖 이론과 공식들이 그토록 머리에 쏙쏙 박히는 경험을 하는 것은 당시 사십을 훌쩍 넘은 내게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부양 책임이 나를 얼마나 이해에 목말라 하고 기꺼이 배우려는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깨닫고 내심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멋쩍음보다 더 마음을 채운 것은 우리가 매일 만나는 세상에 가득 찬 것, 어디에나 존재하고 넘쳐 나는 빛과 색에 대한 내 이해가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는가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이 수치심은 이내 내가 알고 있다고 여기던 영역이 얼마나 많은 오류, 엉터리 추측들로 채워져 있었는지에 대한 반성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느낌은,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영역(known unknowns)에 대한 자각, 더 나아가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영역(unknown unknowns)에 대한 감지로 이어지면서 기대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자(孔子)가 말했다는 ‘지천명(知天命)’에 들어서는 첫걸음이었으며, 역설적이게도 내가 사실상 ‘아이’에 불과함을 마음으로부터 인정하게 만든 겸허의 출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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