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라는 거대한 숲, 헤쳐 나가기
"삼성" 이라는 키워드는, 그리고 굳이 저의 지금까지의 다른 직장 경험들과 비교하자면, 저런 어둡고 침침한 사진을 써야 할 것 같았습니다. 비교는 상대적인 거니까요. 그리고 삼성을 겪었던 2011년~2014년의 경험을 저는 책 한 권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우스전자라는 웹툰의 존재도 알게 해 준 직장이고. 유사점이 꽤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스스로의 존재가 작다고 여겼던 어린 시절,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삼성' 이라는 브랜드가 거대하고 얼굴이 없으며 철벽으로 만들어진 요새와 같은 존재로 인식 되었습니다. 별로 인간적으로 와 닿을 일이 없었고 뉴스에서나 보던. 주변 친척들이나 아는 사람들 중에서 삼성이나 LG같은 대기업을 다니는 사람도 생각해 보니 별로 없었네요. 그리고 대학교 때에도 딱히 "삼성전자 같은 한국기업에서 유학생 대상 설명회를 하러 오면 가 봐야겠다" 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는 것, 한국기업에 취직을 하는 것, 이 모두가 제 안중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질적 관심이나 호기심은 막판까지 별로 없었던 1인.
(사실... 애플에 입사했을 때에도, 취직이 확정 되고 난 뒤에 '... 아 맞다 회사에 대해 너무 모르는데 회사 역사나 좀 찾아 보고 또 Steve Jobs biography 정도는 사서 읽어 봐야겠다' 라고 생각이 들어서 그 때에도 부랴부랴 벼락치기를 했었습니다. 뭐... 내 커리어가 중요하지 큰 회사 수장이나 창업자가 누구고 해당기업의 정체성이나 존재의 의미가 어떻고 하는 건 관심이 없었죠. 철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어쨌든 병역의 의무를 해결해야 했던 입장에서 무엇보다도, "살아 남아 보자" 라는 마인드가 제일 컸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저를 너무 잘 아는 주변 지인들 (학교친구들 또는 개발자 지인들) 모두 하나같이 "넌 성향이 너무 아메리칸 이라서 한국형 기업문화의 정수를 지닌 삼성에서 조심하고 잘 살아 남아야 한다" 는 이야기를 상시 해 주었거든요. 심지어 어떤 친구들은 "이인배가 삼성에서 병특 기간이 끝나자마자 튀어나올 확률은 000 이다" 는 내기 까지 하려고 했었습니다. 누가 얼마나 걸었고 이겼는지는 일부러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잘 적응하고 3년의 기간만 잘 보내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실제로, 입사 직후 받았던 경력입사 교육기간 동안의 키워드는 "soft landing" 이었습니다. 용인에 있는 연수원의 퀄리티도 그렇고 (호텔 같더라구요) 또 각 계열사 사업 현업부서에서 굳이 자원해서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같이 짜고 교육을 진행해 주는 젊은 "회사 선배들" 의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모습이 눈에 밟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진심이 많이 와 닿아서, "아 이런 분들이 모인 기업이다 보니 1등기업이 될 수 있었고 그런 대우를 받는가 보다"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2주간의 기간 동안 다양한 국내외 기업에서 근무를 하다가 오신 분들과도 어울리면서, 3년을 버티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겠다 생각이 들었던 정말 좋은 경험의 onboarding period 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삼성에서의 3년반 기간동안 정말 최악의 순간이 그 2주의 교육의 끝자락에 덜컥 찾아왔더랬습니다. 방심하고 있는 순간에 뇌까지 흔들릴 정도로 징~하게 맞은 권투 펀치와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함께 한 기간이 끝나 버림을 아쉬워 하며, 입사동기들과 함께 같이 열심히 살아 보자! 라고 결의를 다지고, 교육 종료를 상징하는 퇴소식을 하는 날. 그 동안 코빼기도 비치지 않던 인재개발원의 원장이라는 사람이 무대 위에 올라왔습니다. (삼성 인재개발원은 제 기억으로는 삼성 그룹 전체의 임직원 교육을 관장하는 곳이고 파워가 엄청난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새로 진급한 임원들의 "정신"교육을 해 주는 곳이니까요. 소문으로는 회장님의 오른팔 정도는 되어야 여기 원장이 된다, 이런 이야기도 동기들 사이에서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분이, 갑자기 연수생 전체 명단을 꺼내 오더니, 소위 "튀는" 사람들을 모두 한 명씩 호명하면서 일으켜 세워서, 본인 하고 싶은 이야기 (=드립) 를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제 차례가 오니까, 이 분의 눈에 불이 붙으면서, '어라 지금 우리가 타도 A사 / 사과농장 / 과수원 모드인데, 마침 애플에서 온 녀석이 하나 있네?' 라는 생각이 들으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뭘 기대해야 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수백 명 앞에서 마이크를 건네 받고, 갑자기 시작되는 인신공격 수준의 훅훅 치고 들어 오는 멘트들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세상에. 그런 오만과 빈정과 무례함을 저렇게 높은 사람이 다수의 청중 앞에서 그렇게 치고 들어올 줄이야. 그래서 여러 개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휘둘리고 나서 자리에 앉았을 땐, 그냥 제 존재 자체가 순식간에 숯검댕이 된 기분?
(주변의 분들은 끝나자 마자 저를 위로해 준 것 같고, 저는 괜찮다고 했던 것 같은데, 사실 전혀 괜찮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차차 시간이 지나고 나니, 속으로 '그래... 이게 일종의 참교육 이라고 생각하자, 여기는 분명히 이상과 고귀함을 추구하는 집단은 아닌 것 같다, 정신 놓지 말고 호랑이굴에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조심조심 튀지 않게 지내 보자, 생존을 목표로 터널 끝 빛을 기다리다 보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때를 제외하곤 저는 쓰레기같은 마인드를 지닌 실무자들이나 동료들을 상대할 필요는 전혀 없어 전반적인 인복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수십만 명을 모아 놓은 공화국 내에 이상한 사람이 어찌 없겠느냐만은, 저는 다행히도 E (engineering) 직군 이었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내의 "연구소"로 배정 받아서 R&D 조직 내에서만 생활을 하면 되었으니까요. 아무래도 연구소 소속의 분들은 학력이 높고 점잖을 분들일 확률이 높아서인지, 다들 멀쩡하고 원만한 분들 밖에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천만 다행입니다.
어쨌든 전 애플에서의 역할과 거의 비슷한 역할을 하기 위해 무선사업부의 시스템소프트웨어그룹에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들어가고 난 뒤에 알게 된 사실인데, 회사에서는 제가 엄청난 존재였고 그래서 모셔와야겠다고 판단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왜냐면, 당시에 ongoing 으로 제일 큰 내부 이슈 중 하나가 바로 "아이폰 대비 갤럭시폰은 UI 성능, UX 가 왜 이리 버벅이고 별로이냐" 였거든요. 그래서 사장 레벨에서부터 현업 분들이 들들 볶였던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어? 이 문제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하드웨어라네?" 라는 성능분석 결과가 나왔고 (정확히는 안드로이드 OS 내의 스토리지 관련 소프트웨어 스택 이슈였지만 그건 eMMC 라는 스토리지 칩 제품 구조 상 어쩔 수 없었던 것...) 이어서 "어? 반도체사업부에서는 다른 형태의 제품을 경쟁사 애플에게 공급하고 있었다고 하네?? 뭐냐 너네들?? 우리한텐 왜 안 줘?"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반도체사업부 입장에서는, 사실 eMMC를 공급하는 게 당연했었을 겁니다. 무선사는 사실 system integration 밖에 할 줄 모르는 그런 완성품업체였고, 그런 관점에서는 (비유하자면) 하드디스크드라이브 또는 SSD드라이브 제품을 줘야 plug and play 를 할 줄 알지 그 안의 내용물인 디스크만 주면 그걸 어떻게 다룰지 전혀 모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실제로 이슈는 그거였습니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리눅스) 기반의 오픈소스 OS (안드로이드) 를 가져다 쓰고 구색을 맞춰 제품을 만들려니 당연히 하드웨어도 "갖다 쓰기 편한" 류의 eMMC를 줘야 서로가 편했던 거였죠. 하지만 결국, full stack 으로 애플처럼 만들지 않으면 이게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겠다는 판단 하에, 무선사 입장에서는 결국 TF를 꾸리고 반도체사업부 사람들을 파견 받아서 애플과 동일한 형태의 반도체제품을 호환되게 돌아가도록 하자, 라는 실험을 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실험적인 TF에 끌려 들어온, 아직 파란피가 덜 들어간, 해외채용 인력인 셈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TF는 정치적 기술적 이슈 등등 때문에 1년이 채 못 가고 해산되었고, 삼성은 애플과 같은 길을 가지는 않기로 노선이 정해집니다. 대신에, 삼성답게, 차별적인 하드웨어 스펙 싸움을 계속 택하게 되죠. 스토리지 쪽도 어떻게어떻게 해서 개선책을 찾은 다음 계속 다음 제품들을 내 놓게 되고, 그런 나날들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저도 사실은 애플에서 말단 직원으로 일을 조금 해 본 정도의 개발자이지 뭔가 획기적인 아키텍처를 짜거나 삼성을 기술 문제에서 구원을 해 줄만한 그런 S급 인재가 아니라는 게 이렇게 판명이 나면서, 제 마음도 좀 더 편해졌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상 기술 디테일 이야기는 끝.)
이렇게 이 악 물고, 들어간 삼성. 그럼에도 처음에는 분위기 적응이 확실히 필요했습니다. 생각 만큼 살벌했습니다. 정확히는, 살벌할 때들이 가끔 있었습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사장"급 회의에 같이 불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TF에 몸을 담고 있었던 때였던 거 같고, 이 프로젝트는 언급한 대로 사업부 간의 관계가 얽힌 그런 묘한 과제였기 때문에, 그리고 타도 A사 라는 전사 차원의 미션과 결부되어 있었기에, 높은 임원들의 관심을 받을 수 밖에 없지 않았었나 봅니다. 그래서 우리 그룹의 장이신 상무님의 직속 상사, 개발실 전체를 총괄하는 부사장님 앞에 수십명이 다 같이 모인 적이 있었습니다. 무선사 소속 동료들, 반도체사업부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 그리고 에스코어 라는 티맥스 출신의 회사 분들.
이 부사장님은, 마이크로소프트코리아에서도 높은 자리까지 있다가 왔던 나름 업계에서 알려진 분이라고 다들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심기가 불편하셨던 모양인지, 툭하면 회의 때 소리를 지르고 뭔가를 집어 던지는 스타일이라고. (!? 집어 던진다고!?) 물론 저는 한 번도 그걸 본 적은 없습니다만. ㅎㅎㅎ... 그래도 소문은 괜한 소문이 아녔겠죠. 그리고... Steve Jobs 도 프로토타입이 맘에 정말 들지 않았을 때 집어 던졌던 적이 있다는 myth 가 있던 사람이었으니 비슷한 부류라고 봐야 하나? 에이. 아닐 겁니다. 뭔가 컨텍스트가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회사에 있을 땐 가드를 올리고 살아야 하는 그런 뭔가 묘한 기류가 있습니다. 처신을 조심해야 하는 그런 느낌. 이게 미국에서 자유분방한 캐릭터로 살다가 들어와서 더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심조심 하면서, 튀지 않으면서, 살아야 겠다고 작정을 하고 3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 생각과 지금 생각 중 변함 없는 부분은, 저희 부서 사람들과 분위기는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전에 언급한 대로, 여기는 제일 점잖은 축에 속하는 대학교 연구실 출신 분들이 많이 모여 있던 "기업 내 연구소" 입니다. 석사 박사급 분들도 꽤 있고, 같이 새로운 것을 공부해야 할 때는 스터디 및 발표도 진행하고, 온순하고 선한 분들만 모여 있고 질 나쁜 이상한 사람은 수십 명 중 한 명도 없었습니다. 물론 그 중에서 맘에 들지 않았던 성향을 지닌 사람도 있기는 있었습니다만, 어떻게 다 똑같이 좋아할 그런 사람들만 모일 수 있겠습니까. 같이 동고동락 하고, 회식과 축구도 자주 하고, 또 저는 부서 밖 분들 중에서는 가끔 사내 농구 동호회에 나가서 꼽사리로 활동도 하고, 그러면서 3년 이상의 시간을 잘 보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R&D 조직은 대부분의 무선사 부서와 마찬가지로 수원 사업장에 들어가 있고, 시설도 전반적으로 좋습니다. 축구장과 실내농구장도 몇 개 있고, 근무는 고층건물에서, 식사는 멀리 나갈 필요 없이 에버랜드가 운영하는 구내식당에서 아침~저녁까지 계속 먹을 수 있고 등. 아, 이젠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으니 요새 복지 또는 근무경험이 어떤지는 제가 잘 모르겠네요. 주변 지인들 중에 현재 다니는 분들이 계시면 직접 물어 보시는 게 베스트일 것 같습니다.)
너가 감히 수 년 전에 몇 년 경험해 본 걸로 감히 삼성 이라는 브랜드를 전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 라고 생각 한다면, 뭐 할 말은 없습니다. 만사가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혼자서 처음부터 일구어 내고 만들어 보고 실패에도 부딪혀 본 다음에 "내가 A 부터 Z 까지 다 해 봤는데 말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몇 안 되겠죠.
어쨌든 단편적으로 전달을 드리려는 게 아닌, 10년의 과정 속에서 제가 어떤 식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라는 맥락 내에서, 저에게 또 다른 큰 축이고 formative period 였던 삼성에서의 경험을 함축적으로 전달을 해 보겠습니다. GDP의 아주 큰 부분을 맡고 있고, 세계적인 입지로 올라간 것 등 칭찬해 줄 건 칭찬해 줘야 하고, 그 외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고 실제로 잘못된 부분이 있었던 시스템의 요소들은 당연히 비판 그리고 댓가를 치루고 해야 하겠죠.
첫번째. 칭찬.
1등기업이 되기 위해 부던히 노력을 해 왔다는 것은 다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항상 위기의식을 갖고, 항상 경쟁을 두려워 하며, 반 박자라도 앞서 나가려는 것은 경쟁사회 그리고 기업운영에 있어 당연한 것이고. 이를 한국 내에서 top 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점은 당연히 높이 사야겠죠.
인사 관리 차원에서의 그 결과물로, 가끔씩 제게 "숙제" 들이 날아 왔습니다. 일년에 한 번 꼴이었는데, 예를 들면 '글로벌 기업의 기업문화 벤치마킹' 이라던지, '미국/글로벌 선도 기업들이 "애사심"을 어떻게 직원들에게 심어 주는지' 등.
... 그런데 생각해 보시면, "애사심" 이라는 단어 자체는 영어로 없습니다. 그래서 이걸 설명해 주기 위해, 저는 소환 되어서 "미국 정서상 그런 건 없구요, 단어도 없고요, 음, 애사심 컨셉 자체가 한국에서 왜 필요한 지를 생각해 보시면 이러이러한 것일 것 같고, 그런데 미국에서는 고용과 근무 자체가 이런 식으로 사회적 합의에 따라 blah blah... 결국 "주인의식"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 등을 갖춰 놓기만 하면..." 이렇게 설명을 하다 보면, 듣는 분들의 고개는 끄덕끄덕, 얼굴 표정은 굳어지다 못 해 일그러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저는 속으로 '아 이 분들 보고서 쓸 때 뭐라고 써야 할 지 지금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시는 중이구나...' 라는 죄송한 마음도 들고 그랬습니다. ㅎㅎ...
암튼, 지금은 훨씬 더 좋아졌으리라 믿습니다.
두번째. 안타까운 부분.
"관리의 삼성" 이라고들 하죠.
저 표현은 아마도 외부적으로 '슈퍼갑' 삼성과 공급업체들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형용사인 것 같지만, 내부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오너, 매니지먼트, 그리고 인사 조직이 갑이고, 제일 힘이 셉니다. 특히 고과평가(performance review) 권한을 갖고 있는 인사과에서는, 다른 임직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고압적이고 고자세일 수 밖에 없습니다. 채용을 성공 시킬때까지는 고객을 대하는 마인드로 일하시겠지만, 울타리 안에 들어오고 나서 부터는 "관리의 대상" 이 되겠죠.
직군을 막론하고 "머슴"으로 대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 분들 입장에서의 머슴이 아니고, 회사 입장에서 모든 임직원이 머슴 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계약직 고액연봉 임원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는 잘 몰랐지만, 적어도 직원 임장에서는, 사업장을 들어 올 때 사원증 태깅을 하는 시간으로 출근/퇴근 시간이 시스템에 자동 입력 됩니다. 그런데 만일 딱 1분이라도 모자라면, alert 가 뜨고 시스템 상으로 이메일이 날아 옵니다. 당사자 뿐 아니라 부서장 에게도요. 그러면 이를 소명하는 사유서를 같이 작성해서 보고를 해야 "보완 조치"가 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참. (다른 기업들도 그런 경우가 있지만)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이고 다녀야 합니다. (그리고 요새는 덜 하겠지만 당시엔) 경쟁사 제품을 쓰면 '충성싱 없고 신뢰가 떨어지는 임직원' 취급을 받습니다. 시리얼번호도 등록해 둬야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아이폰 자체를 보안봉투에 싸서 들고 들어갔다가, 퇴근할 때 꺼내고 해야 합니다. (터치스크린, 통화는 됩니다.)
스마트폰, 소비자제품을 만드는 회사이니 제조업인 거고, 수만 명을 통제해야 하고, 그리고 지난 과거에 있었을 수 많은 사건사고들 때문에 점점 더 이런 추가 사항들이 생겼던 것이겠지만,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다는 점은 동의합니다만, 그래도 이를 매일같이 겪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별로 달가운 부분일 수가 없죠.
세번째. 이건 정말 낮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는 부분.
다양성을 좋아하지 않는 부분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정확히는, 튀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 위의 아이폰 차별 사례도 그렇고, 워낙 blue blood 로 뭉쳐야 하는 그런 자기들만의 공화국 이다 보니, 배타적일 수 밖에는 없겠습니다. 대체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투로 쓰는 게 아닙니다.
다양성 존중의 부재는, 사실 우리 한국사회 전체를 봐도 여전히 만연하고 팽배해 있는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건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인 겁니다. 삼성은 이를 축소해 놓은 microcosm 이구요. 삼성이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 하기에 이렇게 쓰는 것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미국에 오래 살았고, 영어를 잘 하고, 애플에 실제로 있다가 왔고, 생각하는 방식이 여전히 서구화 되어 있다는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가끔은 (친근한 톤으로) "양키 또는 앱등이" 라고도 불렸습니다. 친한 부서 내 분들 사이에서 말입니다. 웃기다고만 할 수는 없고... 시민권은 커녕 영주권도 없어서, 없는 상태에서, 결국 미국에서의 잘 풀리고 있었던 삶을 버리고 한국으로 온 건데. 그 때 그 분들이 왜 그렇게 저를 대하셨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 바 아니나... 뭐 그래도 악의 없는 분들이었다는 것은 지금도 알고 있고요.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하고자 이렇게 남겨 둡니다.
다음은 "하드웨어 위주" 풍토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삼성 같은 직장에 몸 담고 있는 소프트웨어쟁이들이 많이 공감을 하셨었고 지금도 하고 계실지도 모를 그런 포인트이겠습니다. 우선, 제품 컨셉과 스펙을 정하고 이를 어떻게 만들어 팔 지를 정하는 상품기획 같은 부서들이 맨 앞단에 있는 점은 애플과 거의 같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제조 사업에 있어서는 하드웨어 하드웨어 설계/개발, 양산기술, 그리고 공장관리를 하는 조직들의 입김이 소프트웨어 보다 더 셀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분들 또한 회사 입장에서 소프트웨어쟁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고압적이고 또 소프트웨어 빌드 또한 "부품"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시생산 또는 양상 단계에서 만일 한 대라도 이상이 발견되는 등의 이슈가 발생하면, 즉시즉시 바로바로 이슈 트래킹 시스템을 통해서 리포트가 날아옵니다. 그러면 그 "이슈 카운트 (갯수)" 관리에 들어갑니다. 임원 입장에서는 "야, 지금 이거 몇 개야 & 매일 몇개씩 나와" 를 바라 보며 인력들을 압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데드라인을 맞춰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shipping 이 밀립니다. 출시가 늦어집니다. 출시가 늦어지면 브랜드 타격과 매출 타격이 있을 수 밖에 없죠.
그러다 보니, (공장이 있던) 구미 분들과 매일같이 전화로 싸우거나 아니면 이슈 클로징을 위해 고생을 해야 합니다. 협상/밀땅/구스르기/적당히하고넘어가기 등을 시전해야 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많은 잠재적인 소프트웨어 이슈들이 '카페트 밑으로 밀어 넣고 넘어가기' 식으로 덮이는 것도 보았습니다. 삼성은 사실 SI업체이니, Linux 라는 오픈소스 + Android 라는 구글의 semi-오픈소스 + 자체적으로 튜닝하거나 얹은 다양한 레벨의 소프트웨어들의 향연이 되는 완제품에 있어 엄청나게 복잡하거나 풀기 힘든 이슈들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제 기준으로 이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꾸역꾸역 제품이 만들어 지는 과정을 지켜 보며, 그리고 많은 갤럭시폰을 썼다가 실망하고 팔았다가 다시 사서 써 보는 과정을 그 기간 동안 반복하며 (아이폰 차별 문화에서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했었던?) 저는 갤럭시폰을 굳이 주변에 추천하지 않게 되는, 점점 더 애플 생태계에 종속되는, 그런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삼성이라는 존재는 저에게 딱 저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3년 반이나 일하다 나왔으니, 저의 Korean identity 2.0 을 단단하게 만들어 준 훈련소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정해진 기간 이상으로 함께 하기에는 힘들었던, 서로의 상성이 잘 맞지 않은 그런 match 였습니다. 하지만, 대기업 병특 포지션이 많이 없어졌다고 들었는데, 제 기억 상으로도 제 기수 이후로 확 줄였다는 걸 들은 적도 있고 해서, 저렇게 들어갈 수 있었던 것 자체가 큰 행운이고 또 기회를 제공 받은 점에 대해서도 모든 의사결정자 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삼성을 다녔던 기간 중에도, 나온 후에도, "삼성은 망해야 한다" 또는 "삼성이 망해서 우리나라가 더 잘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노키아 & 핀란드 사례를 빗댄 표현)" 등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삼성에서 성공적으로 은퇴하는 분들을 copy + paste 해서 정부 각계와 정치판에 이식할 수 있으면, 정말 최고이지 않을까" 라는 농담도 입버릇 처럼 합니다.
저에게는 좋은 이야기만을 할 수 없는, 복잡시원섭섭, 그리고 고마움이 혼재되어 있을 수 밖에 없는 직장이었다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어쨌든, 지금의 입지를 쌓을 수 있었던 시스템적인 장점 그리고 한국 최고의 인재들을 모아 놓고 어느 정도까지 가두어 놓을 수 있었던 점 등은 다른 기업 대비 월등합니다. 다른 기업들은 분명 본받아 할 점들,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시스템이 없는 회사에 가서 일을 해 보면, 아 그래도 그런 시스템이 있는 회사가 어디냐 라고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더라구요.) 마지막으로, 2014년 기준의 last impression 기반으로 쓴 글입니다. 지금은 확연히 다른 곳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삼성에 몸 담았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다음 편에서는 삼성 이후의 행보를 어떻게 밟아 나가기 시작했는지를 써 나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