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본 것만 알고, 나머지는 모르는 나, "해 보고 싶어요"
저는 경험주의자 입니다. 먹어 본 맛만 알고, 직접 해 본 것만 잘 할 줄 아는 거라고 믿습니다. 경험해 보는 것이 최고이고, 또 그래서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솔직히 “해 보지 않아서 몰라요”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마음도 편하고 일이 더 잘 풀렸던 것을 경험했습니다. 공대생 출신이어서 확실히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지? 라고 신기해 합니다. 특히 미국인들의 “talk big first and figure out later” attitude 가 항상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젊은 사람들 중에서 경험치가 높지 않아도, 자신감이 만빵이어서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확언하고 확신차게 행동하고. 중국인 성향에도 어느 정도 그런 부분이 있는데 그건 완전히 근간은 다른 그런 면인 것 같고. 한국인이라고 또 그런 사람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어쨌든 제가 이런 “능력”이 있었더라면 지금까지 면접들을 더 잘 보고 다녔을 수도 있고, 휘몰이 또는 이미지메이킹 등을 더 잘 하며 살아왔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틀렸을 때, “아님 말고요” 그리고 맞혔을 때 “거 봐요” 라고 말하고 사는 건 쉬운 것 아닌가. 하지만 이게 꼭 잘잘못 또는 정답이 있고 없고의 관점으로 볼 것인가. ... 아직 살아 온 인생으론 이 것에 대한 답을 찾기엔 세월이 부족했나 봅니다.
삼성을 그만 두고, 시간이 많아지며, ‘나는 무엇을 아는 사람이고, 무엇을 할 줄 아는 사람인가’ 에 대한 생각을 은연 중에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난 할 줄 아는 게 코딩밖에 없는 것 같은데...’ 오랜 세월 갈고 닦은 영어, 학교 때부터 입에 단내 나게 즐겨 해 온 다양한 운동과 활동에 대한 경험, 또는 취미로 지금까지 해 온 다양한 것들, 이런 것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뭔가를 찾아 나서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퇴사 이후 첫 두 달은 팽팽 놀았습니다. 놀 때는 정말 신났습니다. 한국에서 한 달을 놀고, 두번째 달은 미국 투어를 하기로 합니다. 동부 서부 그리고 평소에 쉽게 갈 일이 없는 알래스카까지 포함해서 (당시에 로스쿨 다니는 친구가 연방판사 밑에서 인턴십 비슷한 걸 앵커리지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전역을 돌아 다니며, ‘나에게 스스로 부여한 안식휴가’ 라고 생각하며, 자유를 만끽해 보자고만 생각했습니다. 6년간 꽤 열심히 일했으니 - 워커홀릭 처럼 일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군대 전역에 대한 셀프 포상이랄까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느라 수고했다는 의미의 - 쉬어 가는 타이밍은 합당하고 정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John Mayer 노래의 No Such Thing 이라는 제가 좋아했던 노래의 한 소절처럼, “bust out the double door, and when I stand on these tables before you” 를 할 생각만 했지, careful planning 없이 백수 기간을 맞이했던 겁니다. 보수적으로 보고, ‘다음 취직 혹은 next something 이 아주 오랜 시간 뒤에나 다시 찾아 올 수 있다는 가정’ 을 하지 못했던 패착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낙관적이었나 봅니다. 뭐, 지난 일이고 좋은 밑거름이 되었었다 쳐도, 앞으로 다시 백수기간을 갖게 된다면 조금 다르게 접근하고 계획을 할 것 같네요)
한 달짜리 미국여행이 끝나고, 대학교/미국 친구들과의 캐치업은 성공했지만 그들의 행보와 나의 잠재적인 미래 직장/프로젝트와의 접점을 찾지는 못한 채, 한국에 다시 돌아온 후, 통장 잔고를 들여다 보니 갑자기 우울해 졌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유유자적을 하고 다닌다는 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드는 행위이구나’. ㅎㅎㅎ.
그렇게 찾아온 불안감과 어두운 기운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지배하나 봅니다. 당시에 저를 기억하던 친구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얼굴에 혈색도 없어졌고, 웃음기가 전혀 없어졌다” 라고들 이야기 해 줬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앞날이 막막했습니다. '나... 뭐 해먹고 살아야 하지?' 돈도 떨어져 가고, 자신감도 떨어져 가고. 문을 박차고 퇴사를 하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 준 대신, 그 값을 치르는 건가, 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이래서 다들 어딘가에 걸쳐 놓고 그만 두는 이직을 하는 거구나. 자유퇴직은 아무나 하는 거 아니구나.
절박한 마음에, 갑자기 새로운 것을 배우자고 결심하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학교 때 너무너무 x10 재미 없었던 회계 수업을 회계사준비 학원에서 듣기로 한 겁니다. 대학 1학년? 2학년? 때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기초회계 수업은, 안 그래도 재미 있기 힘든 수업 내용을 노교수가 흥 없이 조곤조곤 이야기 하시는 게 귀에 들어 올 리 없었던, 짜증 나는 C학점짜리 수업이었습니다. '난 컴퓨터를 코딩을 배우러 왔지 왜 내가 이 재미 없는 고생을 하고 있는가' 라고도 생각 많이 했습니다. ... 물론 10년 뒤의 저는 현재 시점에서 '그 때 그걸 좀 더 열심히 들어 놓을걸' 이라고 생각하게 된 건 내 발등 내 돌도끼 였을 지도요.
CPA, 정확히는 미국 CPA (AICPA) 자격증 준비 학원에 들어갔습니다. 등록금을 선급으로 턱 내고, 백수+풀타임공부 모드로 5~6개월 만에 수강을 완료하고 최단기간에 자격시험에 합격을 하겠다는 각오로 덤볐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다시 가닥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프로그래머로 돌아갈 생각은 내려 놓았으니, 어떻게든 다른 직종으로 전환을 해야 하고, 이런 다른 '스킬셋'을 장착해야만 저는 다시 쓸모 있는 지식노동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시 테크기업으로 돌아가더라도 다른 직무 부서로 들어가면 되니까, 라고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그리고 왠지 (조금 불안하고 조바심은 있었지만) 자격증은 집중 잘 하고 노력만 잘 하면 딸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급 취직이 됩니다. 그런데 회계사 자격과는 전혀 상관 없는, 헤드헌터로부터의 연락 때문에, 완전히 잊고 있었던 SK텔레콤 연구소의 잡 오프닝입니다. 헐... ㅋㅋㅋ... 이 때의 이야기는 자세히 쓰지 않겠습니다. 왜냐면, 이력서와 링크드인 상에서 지울 정도로, 너무 기간이 짧고, 또 당시의 분들에게도 죄송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삼성 퇴사하기 직전에 헤드헌터가 인터뷰를 어레인지 해 주었다 -> 면접을 보니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었다 -> 삼성보다 조직문화가 좀 더 좋다고 하고, 또 과장급으로 대우를 바로 올려서 해 주겠다고 한다 -> 이렇게 된 거 그냥 다시 꼬리를 내리고 엔지니어의 삶으로 돌아가자, 일단 밥벌이가 중요하니까."
이렇게 완전히 까먹고 있었던 면접 프로세스가 갑자기 재개 되었습니다. 삼성을 나오기 직전에 최종면접 합격 여부 및 안내가 감감 무소식이어서,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임원면접을 최종적으로 보러 오라고 하는 겁니다. 2014년 11월쯤 이었습니다.
2015년 1월 분당 소재의 연구소로 입사를 하고, 2달째가 되어 분위기 천천히 적응 및 이제 수십명 되는 연구소 내 팀원들 얼굴 이름 직함 그리고 백그라운드를 다 외우기 시작할 때 쯤, 또 한번의 급작스런 이벤트와 변곡점이 옵니다. 바로, 벤처캐피탈 회사로 이직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온 것 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의 생활을 접고, 2011년 한국으로 돌아 온 후에도, 왠지 그 동네의 뉴스는 계속 모니터링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비록 몸은 병특이라는, 그리고 수원에서의 근무라는 틀에 넣어 반복적인 생활을 해야만 했지만, 두고 온 동네에 대해서는 잊지 않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를 받아서 어딘가에 저장해 두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맛집 찾으러 다닐 때 열심히 읽던 Eater SF 는 물론, TechCrunch 부터 시작해서, 애플 전문 커버리지 Asymco, 이렇게 점점 더 구독 블로그를 늘려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간 다시 미국으로 갈 날이 올 텐데. 난 아직 그 쪽에 박아 놓은 뿌리가 없지 않으니까.'
그래서 이런 블로그들을 하나 둘씩 찾아서 Google Reader 에 넣고, 서비스 종료 된 뒤에는 Feedly 를 유료결제 해서 쓰고. 암튼 삼성 다니면서 부터 열심히 습관을 들여, 아침에 출근해서 약 10분간 커피를 마시며 쌓여 있는 기사들의 제목을 눈에 바르는 취미가 생겼고, 그러다 보니 점점 한국에서의 테크 쪽 블로그들도 찾아서 넣게 됩니다. 플래텀, 벤처스퀘어, 비글로벌 등 주로 스타트업 쪽 매체들이 블로그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고 RSS feed 를 똑같이 받아서 넣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조중동 등의 주요 매체들은 이런 테크 friendliness 가 없어서 그닥 읽지 않게 되고...)
출근해서 여느 날 처럼 기사를 읽던 2015년 2월, 갑자기 눈에 띄는 포스트 하나가 있었습니다. jimmyrim.com 이라는 블로그의 새 글, "투자팀과 관리팀에서 사람을 뽑습니다".
(지미림닷컴은 한 때 나름 유명한 블로그였는데 지금은 폐쇄되었네요, 지미 블로그는 티스토리로 옮겨졌다가 그것 또한 방치되었다가 어느 순간 브런치로 또 옮겨 가셔서 어쨌든 역사 속 이야기인 걸로...)
어? 이게 뭐지? 투자팀? 관리팀? 벤처캐피탈에서?
사실 벤처캐피탈이라는 것의 존재는 전부터 어렴풋이 아는, 일종의 여러 다리 건너 지인같은 존재였습니다. 뭔지는 아는데, 정확히 어떻게 생겨 먹은지는 모르고, 명성만 조금 들어 알고 있는.
제가 미국에 살 때 종종 왕래하고 지냈던 먼 친척분께서도 저를 볼 때마다 "넌 나중에 엔지니어 그만 둘거면 벤처캐피탈 쪽을 생각해 봐라, 너한테 맞는 것 같다" 라는 일종의 예언적인 이야기를 해 주시곤 했습니다. 사실 그 때만 해도 한 귀로 흘리고 넘겼습니다. 왜? 별로 와 닿지 않았으니까요. 또 어차피 전 회사에 (취업비자 및 영주권 신청 등) 몸이 묶인 신세라, 엔지니어로서 잘 살아가는 것만 생각해야 했고요. 난 컴돌이 공돌이인데 캐피탈 어쩌고 하는 거랑 나랑 별로 상관없는 거 같은데 하고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아, 그리고, 백수기간 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어째저째 해서 "재미 있는 사람들" 이라고 하여 소개 받은 사람들이랑도 만나는 보고, 또 갑자기 "자리가 있으니" 면접같은 것도 보기는 보고 했었는데, 제대로 된 준비는 커녕 그냥 가서 만나 본 수준이었습니다. 여전히 '벤처캐피탈이 뭐야?' 에 대해서는 이해도가 없었고, 그냥 틈날 때 마다 만나 보는 걸로 족하는.
그런데 저 글을 보자마자, 갑자기 번뜩이는 호기심이 마구 솟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저 블로그를 몇 번 읽어 보긴 했었지만, 내용들이 다 이해되진 않았지만, 제게 머릿속에 남는 키워드들은 "스타트업", "선순환", "조력자", "미래" 등등 희망적이고 듣기 좋은 그런 단어와 주체들, 지향점들 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집에 가자마자 공돌이 이력서를 비즈니스 전공자 이력서 비스무리하게 고쳐서 제출합니다. 즉 디테일들을 다 빼고, 템플릿도 좀 더 이쁜 걸로 넣어서, "투자팀 & 관리팀 둘 다 지원" 이렇게. ㅋㅋㅋ. 당시엔 정말 투자와 관리의 역할 차이도 몰랐습니다. 일단 둘 다 지원해 보고자 하는 의향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어이 없었겠어요.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바로 다음 날 이메일 답장이 왔습니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
와우... 새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딴 생각을 하게 될 줄도 몰랐고, 케이큐브벤처스에서 저렇게 빨리 반응을 하실 줄도 몰랐습니다. 이걸 어쩌지? 하면서도, 일단 너무나도 가서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 왠지 뭔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새 조직생활에 적응하면서 기존에 끊어 놓은 회계학원 수강료도 아까워서, 퇴근 후 일주일에 몇 번 야간수업을 들으러 다니고, 회사에겐 티내지 않고. 그러다 이렇게 학원을 다니는 게 당분간 sustainable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 즈음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ㅎㅎㅎ.
첫 면접을 보러 역삼동 사무실로 시간 맞춰 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이 쪽에 지원을 했는지, 어떻게 일을 배워 보고 싶은지, 그리고 아는 것 할줄 아는 것과 반대로 모르는 것 해본 적 없어 모르는 것 등을 최대한 숨김 없이 다 말씀 드리고 나왔습니다. 그게 제 인터뷰 보는 스타일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나서, 바로 구정연휴가 시작 되었고, 연휴가 몇 일 지난 시점에 합격 통보를 받게 됩니다.
와우!
심지어, 이메일 찾아 보니, 입사 직전에 "케이큐브벤처스 카카오 계열사로 편입" 뉴스가 발표되어, 회사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변화가 많은 2015년 3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https://platum.kr/archives/36261
들어갔던 대기업 직장을 2달 반만에 나오게 되며, 그 과정에서 욕을 참 많이 먹었습니다. 욕할 만도 했죠. 기껏 뽑아놨더니 갑자기 "죄송합니다 이렇게 될 줄 저도 몰랐습니다" 라며 퇴사를 한다고 하고... 심지어 헤드헌터 분도 "이러시면 저도 곤란해요 커미션도 다 뱉어 내야 해요..." 라는 우는 소리를 하셨어서 또 한 번 사과를 드려야 했죠. "캐피탈 회사" 가는 거냐, 그리고 "영세한 곳 가면 불안할 텐데" 라는 이야기도 좀 들었습니다.
그래도 전 왠지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있을 것 같았고, 한치의 미련도 없이 엔지니어 생활을 접고 새로운 도전을 해 보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에서 과장 대우를 받아 가며 부족하지 않은 급여와 상여 수준으로 살아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케이큐브에서는 "당장은 연봉을 맞춰 주기 어려운데요" 라고 하셨어도, 전 전혀 개의치 않고, 완전히 많이 깎아 가며 일하겠다고 분명히 말씀 드렸습니다. 그 만큼 이 쪽 일을 경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또 저를 이렇게 좋게 봐 주신 다른 벤처캐피탈 회사 분들이 왠지 더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기회를 주신다고 하는데, 그 기회가 너무 탐났고 붙잡아야 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대체 뭘 보고 기대하며 들어가고 싶어했는지의 이야기는, 마지막 편이 될 다음 글에서 더 상세히 풀어 써 볼게요. 이제 거의 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