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ll that was unexpected.
크으. 지난 주에 TV 뉴스 인터뷰 출연을 하게 됐습니다. 태어나서 첨으로 방송국 스튜디오에 들어가 보게 되었네요.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일기처럼 기록을 남겨 놓고 싶어서 적어 둡니다. … 소식을 들은 어느 미국인 친구는 “your life achievement” 라고 놀려 주었습니다. 그래 그렇다고 하자 이눔아.
아는 분을 통해서 아리랑TV의 윤 작가님이 연락을 주셨습니다. 주중 저녁 뉴스 끝 무렵에 항상 나오는 In-depth 라는 7~10분짜리 코너가 있는데, 거기에서 요새 조금 회자되었던, “한국 유니콘 기업 (1조원 가치 이상을 인정받은 비상장 기업)은 현재 외국인 돈잔치 중” 이라는 기사에 대해서 다루고 싶다고. 그래서 윤 작가님은 교포 창업가인 제 지인에게, “영어 잘 하는 VC 소개해 줄 수 있나요” 라고 물었다고 하고. 그 분은 거침없이 “Inbae” 라고 했다고 합니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영어를 잘 하는 우리 업계 분들은 많습니다. 저보다 더 멋지고 훌륭한 직장 또는 대학(원)을 나오신 분들도 많아요. 단지 그 분은, 한국 VC들을 만나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유일하게 아는 저를 지목했던 겁니다. 다음 번엔 꼭 다른 분들을 제물로 바치리…)
제안을 받고 조금 고민되었습니다. 우선, 그 회자되었다는 기삿글만 보아도, 기자 분이 프레임을 정하고 “돈잔치 중이다 이거 문제다” 라고 쓴 글인데, 이게 정말로 정확한 기사인지는 제가 일단 당장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사에 인용되었던, “유니콘 기업에 들어간 (투자된) 90%의 자금은 해욋돈일 것이다” 라는 업계 관계자의 말이 정말인지는 저도 궁금한데, 진짜 그 정도로 비중이 높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높은 수치였구요. 그렇다고, 인터뷰에서 그 기사가 얼마나 정확한지에 대해 왈가왈부를 하는 것도 웃길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인터뷰에 그대로 응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러나. 그래도. 아리랑 같은 매체라면 부담도 적고. 지상파 등이었으면 너무 부담스러웠을 텐데. (뭐 일단 저한테 요청이 올 이유가 없겠죠, 저보다 더 유명하고 말씀 잘 하시는 VC 분들은 워낙 많습니다.) 그리고 또 사실 우리 업계, 정확히는 한국의 VC 생태계와 생리를 영어로 외부인에게 잘 이해 되도록 풀어서 이야기를 해 줬던 사례가 얼마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 이런 이야기는 내가 해 봄직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미 부여를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 한국 VC가 나와서 한국의 scene 은 이러이러하니 알아 두면 좋다고 해 주면, 한국의 그런 면에 대해서 궁금해 했던 사람들은, 세상에 몇 없다 해도, 고맙게 생각하지 않을까? Paying it forward.
윤 작가님에게, 일단 회사 분들과 이야기해 보겠다고 말씀 드리고, PR 담당하는 Jay 그리고 투자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에, 인터뷰 요청을 수락하였습니다. 단 가급적이면 라이브 방송에 나가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요청을 역으로 드렸습니다. TV 출연은 처음이다 보니, 일단 제가 잘 할수 있을지도 몰랐고, 만에 하나 실수를 하거나 얼어 버리거나 하게 되면 얼마나 민망할까 라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다행히, anchorperson 의 스케줄만 맞으면 가능은 하다고 알려 주셔서, 냉큼 사전녹화 옵션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Jay 랑 이야기 하다가, PR 인턴인 Wendy 까지 함께 같이 가시지 않으시겠냐는 말씀도 드리고, 작가님께도 회사가 직접 운영하는 소셜채널들이 있어서 가서 사진 조금 찍고 내용도 활용해도 되겠느냐고 확인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VC에서 PR & communication 을 담당하는 분들 입장에서는 항상 소재가 필요하니, 같이 촬영현장을 방문할 기회를 드리면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네요. 당연히 좋아들 하셨고, Wendy 가 저와 함께 아리랑 방송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윤 작가님이 사전 질문지를 주말에 주셨고, 읽어 보고 충분히 고민 및 답을 생각해 볼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질문의 핀트가 조금 조정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작가님에게 제안도 드려서 좀 더 부드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신경을 쓰게 되더라구요. 예를 들면, 질문의 전제가 조금 잘못되어 있어서, 유관 내용을 좀 더 유익하게 전할 수 있도록 질문을 steer 하는 그런. 이걸 같이 주고 받으면서, 세상 모든 토픽을 다뤄야 하는 뉴스업계 종사자 분들, 더 나아가선 언론인들 전체, 모두 고생이 많으시겠구나 하는 점도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기레기는 싫다고라…)
3시반쯤 부터 촬영을 하기 위해, 지난 주 화요일 3시에 방송국에 도착했습니다. 작가님과 인사하고, sign in 한 후에 분장실에 가서 조금 기다리다가 anchorperson 인 문건영 아나운서가 분장을 먼저 받으신 후에 저도 간단한 분장을 받았습니다. (생각보다는 분칠을 덜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나서 바로 스튜디오로 입장했습니다.
질문지를 사전에 받고, 답변을 열심히 작성했었는데, 작가님 왈 내용이 너무 많다는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그걸 듣고 나니, “뉴스에 나올 땐 (전문매체는 예외이겠죠) 가급적 중학생 정도의 대상자를 생각하고 쉬운 표현을 쓰라” 는 어딘가에서 읽은 인용구가 떠올랐습니다. 아, 그러면 할 이야기들을 일단 머릿속에 대충 넣어 놓고, 한->영 번역을 한 후, 또 이걸 쉬운 영어로 풀어서 이야기해야겠구나 라는 살짝의 압박이 왔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읽지 말고 일단 포인트 몇 개만 머리에 넣어 놓고 친구 앞에 앉혀 놓은 거라고 상상을 하기로.
그리고 중간에 카카오벤처스의 자랑스러운 포트폴리오 회사인 당근마켓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고 끼워넣기 성공. 이런 걸 미국에선 shameless plug 라고 합니다. 염치 없이 사심 가득한 뭔가를 중간에 턱 하니 꽂기.
끝나고 나니, 생각 보다 재미있었고 너무 긴장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콘텐츠가 사전에 정해져 있었고 또 녹화촬영이다 보니 말실수 한 부분 하나는 잘 편집해 주시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네요. 결과물을 보니 당연히 그렇게 매끄럽게 해 주셨고요. 방영은 그 다음 날인 수요일에 나가게 되어서 저도 맘 편하게 잠옷 갈아 입고 본방 사수를 했습니다. 소파에 앉아서 제가 TV 화면에 실시간으로 나오는 걸 보니… 솔직히 오글거리기는 하더라구요. 그리고 내가 정말 잘 했나 모니터링도 하게 되고. 아쉬운 대목이 있기는 있었지만 그래도 뭐 선방 했다 인배야…
윤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렇게 매 주 매일 밤 있는 코너를 위해 외부인 섭외가 정말 너무 빡세다고 합니다. 하루에 2명 정도는 섭외를 계속 하게 되어서 작가로서 시간과 노력을 많이 써야 한다며. 그 말씀을 듣고 보니, 궁합이 맞는 사람이 나타나면 고정 패널로 출연해 주는 걸 매우 선호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naive 한 생각이었겠지만, 저는 정말로 질문지에 있는 질문만 아나운서께서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일 마지막 돌발 질문이 치고 들어오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당황했고, 자연스럽게 넘기기 위한 “좋은 질문이에요” 라는 대꾸를 하면서 잠깐이나마 시간을 벌어 보았었습니다… 휴… 몇 년 감수.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방송에 나가 본 것도 좋았고 재밌었고 주변 분들도 신기하다고 해 주셔서 또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단, VC 업에 대해서 더 할 말이 많았지만, “지면 상” 다 제대로 하지는 못한 걸로… 예를 들면, 스타트업은 왜 여러 차례의 펀드레이징을 해야 하는지, VC 들은 왜 어떤 관점으로 펀드를 만들며 펀드를 굴려 가는 건지, 투자를 할 때는 어떻게 하는 건지, 한국 VC 로서는 어떤 제약과 한계가 있고 어떤 걸 원하고 바라 보는지, 한국 대비 해외 VC 들은 진짜 어떻게 다른지, 등등.
10분이 아니라 한 30분 정도 잡고 해도 모자랄 듯… 언젠가는 또 그런 이야기 보따리를 풀 기회는 생기겠죠.
자막은 없습니다… 영상 링크:
https://youtu.be/zNro37RcEz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