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bae lee Feb 17. 2024

An Ode to Kakao Ventures (2)

운, 업적, Legacy

스타트업도, 투자자도, 인재도,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인데, 뭐냐면, 각자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운도 좋아야 하고, 간택을 받습니다. 사용자에게, 시장에게, 인정 받아야만 성공적으로 사업이 크고, 회사도 인재경쟁이 심한 상황에서는 여러 취업 옵션들 중에서 결국 선택권이 있는 그 분에게 간택을 받아야 하죠. 모든 운이 따르는 것 같아도, 예상하지 못 한 내/외적 변수 때문에 한 순간에 바스러질 수도 있고 (워낙 재정적 etc 자원이 부족하고 작은 조직이다 보니 날아 가거나 무너지기 쉽다고 봅니다), 또 운이 없는 것 같다가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경쟁을 뚫고 한 순간에 시장에서 치고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업계 1위를 차지할 수 있기도 하고.


VC도 투자를 받아야지만, 즉 펀드에 출자를 지원받아야지만, 비즈니스가 성립되기 때문에, 출자자들에게 간택을 받아야 한다고도 봅니다. 출자자가 얼마나 엄정한 기준을 놓고 선별하느냐를 떠나서, 간택을 받는 것 자체가 큰 일이고 생존의 필수입니다.


더 나아가서, 스타트업들이 투자를 받을 때 “좋은 투자자에게 투자받는 것” 을 선호하는데, 당연하겠죠. 좋다고, 투자 잘 한다고 알려진 저들에게 투자받는 것 자체를 마케팅 포인트로 쓸 수 있고, 채용에도 사업전개에도 (또한 가족들을 안심시키기에도) 무조건 좋으니까요. 그래서 수준 높은 투자자들과 출자자들은 이 점을 유의하고 신경 써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관리합니다. 커넥션이 생기고 나서 부터는 한 배, 이런 느낌이죠. 사람 관계도 똑같지 않나요.


그래서. 저는 2020년에 카카오벤처스와 당시의 제가 간택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고 두고 남을 그런 인연과 추억, 그리고 저만의 트랙레코드 이기도 한 그런 간택.




간택 1. 리벨리온.

간택 2. 파빌리온.


공교롭게 이름이 비슷하죠?


제 전 글에서 이미 다룬 리벨리온 이라는 회사는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 버린 스타트업이라, 굳이 글을 더 적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도 멋지게 1천억이 넘는 규모의 신규 자금을 시리즈B 투자라운드를 통해 성황리에 유치했더군요. 짝짝짝. 앞으로 한국 핵심산업의 핵심 역할을 계속 해 주기를 기대하며.


파빌리온은, 스타트업이 아닙니다. 벤처펀드에 출자를 하는 대형 기관입니다. 그리고 해외출자자 입니다. 국부펀드라고 불리는 SWF (Sovereign Wealth Fund) 의 하나로서, 싱가포르의 한국투자공사 같은 역할을 하고, 전세계 다수의 사모펀드와 벤처펀드에 출자도 하지만, 스타트업들에게 직접적으로 투자하기도 합니다. 혹시 테마섹 이라는 싱가포르 국가대표 투자사를 들어 보셨나요. 그 쪽 계열이라고 보시면 되고, 저희는 그런 브랜드로부터 간택을 받았었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일반인들에게 큰 영향과 영양가가 없는, VC업계 금융업 종사자들이나 관심을 갖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길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카카오벤처스가 어떤 특별한 존중과 인정을 동종업계로부터 얼마나 받았는지를 조금만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현직자들 입장에서는 함부로 마케팅을 하면 안 되는 사안이기는 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렇게 퇴사한 사람 입장이 되어야 좀 더 당당하게 자랑을 이렇게나마 할 수 있는 것 같아서, 쓰고 싶었네요.


사건의 전말을 간단히 서술해 볼게요.

카카오벤처스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한국에서 최고의 초기투자사로 거듭나기 위한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있었습니다. 2019년 제가 카카오로부터 복귀했을 때, 마침 타 VC를 통해 갑자기 “해외 국부펀드” 로부터 미팅 요청이 들어왔다고 하여, 저도 저희 대표님도 얼떨떨했지만 식사미팅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해외출자자들과의 접점도 없었고, 앞으로 어떻게 가져가야 할 지도 그림이 없었던 상황에서, 오히려 감사하게도 먼저 인바운드 요청이라니요. 마치 게임을 시작해서 이제 막 레벨업을 하기 시작하고 무기와 방어구를 완전히 갖췄다고 생각했을 때, 중간보스 문턱에 다다른 상황에서 갑자기 최종보스가 딱 하고 등장한 그런 타이밍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 제가 회사에서 영어를 제일 잘 했기에 대표님을 따라 미팅에 참석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그 분들을 뵙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을 받게 되는 건가 라는 기분 좋은 생각이 들면서도, 저희들끼리는 “설마 우리들에게 바로 출자를 해 준다고 하겠어요, 기대를 하지 맙시다, 기대치가 낮아야 마음이 편한거니” 라고 말을 맞추고, 가벼운 마음으로 식사미팅을 하고 끝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1년 후,

다음 펀드를 모집하기 위해 펀드레이징 활동을 시작하며, 그래도 예의상 영어로 자료를 적당히 번역해서 제공은 드려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제가 혼자서 장표 튜닝을 한 후에, 이메일로 상황과 자료를 공유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크게 온도의 변화 없는 느낌으로 이메일을 몇 번 주고 받고 난 후, 펀드 모집금액이 거의 다 차 갈때쯤, 갑자기 상대측에서 불이 붙어서 열심히 출자 검토를 하는 상황이 전개가 되었네요. ‘어? 뭐지? 진짜 출자를 할 생각이 있는건가?’ 라는 의혹도 함께 커져 가며, 적극적으로 들어 오는 질문 공세 (DD, Due Diligence 라고 하는 검토 절차)를 받아 내며, ‘아 외국계 출자자들은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군’ 이라는 레슨을 얻어 가며, 혼자서는 벅차기에 대표님과 투자팀과 관리팀 헤드 이사님이랑 머리를 맞대어 가며 저희도 열심히 열을 올려 응대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받아 보는 질문도 받아 가며, 때로는 너무 단도직입적으로 ”임직원들이 충분히 급여와 상여를 포함해서 보상이 주어진다고 생각하는지?“ 등의 솔직함을 요구하는 질문을 객관적으로 답했어야 하는 그런 상황도 맞닥뜨려 가면서, 유의미한 DD 과정을 끝내게 되었습니다. 설령 출자를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글로벌 출자자들은 이런 식으로 업무를 진행하는구나 라는 학습효과, 더 나아가서는 한국의 딱딱한 관계와 방식과는 차원이 다른, 이들은 진정한 파트너십의 상대감을 고르려고 노력하고 권위의식이나 우월감 그리고 대접받아야 하는 심리 이런 게 없는, 진짜로 국가를 대표해서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납세자들의 출자금(을 운영하는 집단이라 더욱 그렇겠죠)을 잘 불릴 수 있도록 의무감에 기반한 꼼꼼한 방식의 일처리를 하려는 프로들이구나 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진짜로, 그 과정을 끝으로 하고, 그들의 출자를 받지 못하고, 그들과 더 볼 일이 없어졌더라도, 후회가 없을 그런 경험이랄까요.


하지만 저희는 결국 그 분들의 출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짜릿했고, 엄청난 자부심이 생겼고, ‘아 이건 내가 주도적으로 해 낸 프로젝트였기에 더 뿌듯하군’ 이라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회사 동료들로부터는 물론, 업계의 다른 분들에게도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업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내가, 이 때, 여기에서, 이런 브랜드를 대변할 수 있었기에, 같이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참으로 귀한 경험과 성과라는 생각. 그리고, 그 덕에 드디어 회사에서의 내 입지도 앞으로 이걸 특장점으로 내세워서, “투자팀 소속으로서 심사역의 본분도 하지만, 이렇게 매니지먼트와 관리팀과의 협업을 통해 다른 VC들은 쉽게 해낼 수 없는 그런 역할을 한 팀으로서 해 낼 수 있는 그런 존재감” 을 앞으로 내 브랜드로 가져갈 수 있다는 생각이, 참으로 기뻤습니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기쁘네요.


돈? 뭐 시중에 벤처 자금이 많이 풀렸었던 타이밍 아닌가요? 라고 하시면, 그 말도 맞습니다만,

디테일 입니다만,

한국 기반의 창투사가 한국형 펀드를 한화(KRW) 기반으로 운용을 하면서, 우리말을 하예 하지 못 하는 분들의 외화(USD)를 펀드에 끼워 넣고, 모두의 이해관계가 틀어지지 않도록 잘 관리하고, 그리고 돈을 받고 나서 10년간 어떻게 파트너십을 운영해 나가는지는 많은 생각과 노력과 타협과 운이 많이 따라야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은행에 가서 어느 투자상품을 우리말로 설명을 듣고, 믿고 맡겨 놨다가, 시간이 지나서 저금통을 깨야 할 때 원금과 수익을 돌려 받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타국으로 건너가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줄을 서서 은행이든 어디든 상담창구에 가서, 처음 보는 상품과, 그 상품이 어디에 투자될 지에 대한 설명을 외국어로 듣고, 외국어로 된 설명서를 읽고, 리스크를 판단하고, 돈을 맡기고, 10년을 기다린다고 생각을 해 보시면,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스스로의 도전의식은 물론, 주변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고객을 위해 불안하지 않게끔 잘 운용을 할 책임감은 물론, 수시로 방문설명을 해 줘가면서 신뢰를 쌓고 지식을 심어 주고 더 생각해 주는 차원에서 케어를 투입하는 노력이 있어야만 그 관계가 훌륭했다고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목표로 이 분들과 함께 해 나가야겠구나 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 관계는 내 관계라고 생각하고 오너십을 갖고 직접 케어를 해야겠구나 라고 마음 먹고 선봉장이 되려고 노력했었습니다.


덕분에 지금도, 두 회사와 조직간의 관계는 훌륭합니다. 저는 비록 퇴사를 했지만, 나오는 과정에서도 양측에게 충분히 안심과 준비를 시켜 놓고 인수인계를 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각각의 관계를 잘 가져가려고 노력할 것 같습니다. 저의 역할을 물려 주고 나온 분에게는 제가 정기적으로 전화영어 스타일의 영어회화 연습을 시켜 주고 있습니다. :) 그리고 싱가포르 (전) 고객님들과는, 사실 영어를 쓰면서 친구처럼 지낼 수 있던 사이였기에, 앞으로도 다시 볼 일이 있을 때마다 친구처럼 지내게 될 것 같습니다. (존댓말이 없고 수평적인 그런 사회문화는 평등성이라는 이런 큰 장점이 있고, 전 그게 저와 너무 잘 맞다고 생각.)




Legacy 라는 말은, 좋게도 나쁘게도 쓰이기는 합니다. 어떤 오래 된 조직만의, 또는 프로세스만의 누적 부채 또는 문제들을 이야기할 때도 쓰고, 또는 상류층 집안에서 대대손손 물려 받는 그런 특혜를 이야기할 때에도 쓰고, 하지만 두고두고 회자될 그런 영웅적 전설을 이야기할 때에도 쓰고. 전 그래서 좋게만 쓰고 싶네요. 내가 남길 그런 유산, 딱히 꼭 자손에게만 물려 줄 재산만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남기고 갈 족적이라는 의미에서, 레거시는 누가 되었든 한번 쯤 생각해 볼 그런 토픽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냥 방랑자 처럼 잠깐 이 땅에 왔다가, 흔적 없이 떠날 그런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고 산다면, 별로 이런 부분에 의미부여를 할 필요가 없겠지만, 너무 큰 욕심을 내지 않는 차원에서, 그래도 뭔가는 남기고 가고 싶고, 나 다음으로 여기를 거쳐 갈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내가 창출한 가치를 통해 편리함이나 이득을 느끼고 향유할 수 있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 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거창하게 전인류적 차원에서의 업적? 그 정도로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기왕이면 숨쉬며 이 땅에서 살아 가는 동안, 그리고 기왕이면 그 많은 직장들 조직들 사회들 중에서 특히 이 위치와 입지에 머무는 동안, 그리고 이 역할을 하고 있는 동안, 내가 받고 누린 것 보다 좀 더 만들고 바꾸고 남기고 갈 수 있는 게 쓸모 있는 인간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그런 방법 아닌가 라고 생각.


그래서 저는, 리벨리온의 초기 기업 단계에 투자를 경험해 볼 수 있었고, 파빌리온의 출자를 받아볼 수 있었고,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 보면 카카오라는 스타트업이었던 거대기업그룹이 좌충우돌 성장해 나가는 단계에 놓여 있을 때에 파생되었던 투자조직인 케이큐브벤처스 때부터 몸을 담아 카카오 자체는 물론 한국의 스타트업-VC 생태계가 제대로 태동해 나아가는 시점에 잠깐 올라타서 여러 큰 파도들을 8여년 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지나간 흔적이 앞으로도 계속의 작은 울림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구성원으로서 함께 해 왔고, 별 후회는 없습니다.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아마, 한 편 정도는 더 쓸 거리가 남아 있기는 한데, 이 부분은… 민감할 수 있는지라, 아마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나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토록 좋아했던 직장은 그러면 왜 그만 둔거에요?” 에 대한 진솔한 대답을 지금 풀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아서요. 저희 대표님이 본사 대표님으로 올라가시기 직전의 타이밍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So maybe… in two or three years? 그 때 되어 까먹지 않고 다시 펜을 들 수 있기를 바라며, 이만 접습니다.


카카오벤처스는 진짜로 안녕.


(아, 저는 참고로 새 직장을 찾아 일을 시작했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도 쓸 수 있는 시점이 오면, 또 풀어나가 볼 지도요.)

매거진의 이전글 An Ode to Kakao Ventures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