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일에 나쁜일을 더해 우연히 되찾은 웃음.
씁쓸함으로 여물 저버린 직장생활을 스스로 정리하고 돌아가는 길, 교통사고가 났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기로에 섰던 그때 온 우주가 하나로 힘을 모아 나를 한방 먹이기라도 하듯, 작은 건널목에서 30km의 속력으로 달리던 택시에 치여 튕겨나가 횡단보도에 엎어졌다.
응급실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욱신거리는 허리와 골반을 침대에 뉘이고서 실실 쪼갰다. 산산조각 나 유리가루가 묻어나는 휴대폰 액정 너머의 친구와의 통화에서도 서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네거티브(-)에서 네거티브(-)를 더하니 포지티브(+)가 됐다. 그 이전의 감당할 수 없던 괴로움과 현실의 벽들 사사이에 서 '드라마'를 찍고 있었다면 택시에 치여 날아간 직 후엔 그 이전의 일들까지 모두 통틀어 '시트콤'이 되어버린 것이다.
최근 더 깊이 더 진득하게 고민하고 괴로워했었다, 마치 세상 무너질 듯하게 온 세상의 걱정을 내 스스로가 다 짊어진 듯 살아왔었다.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고, 두 눈엔 총기를 찾을 수 없었다. 다른 때보다는 덜 추웠던 이번 겨울, 스스로를 눈보라 속에 묻어 차갑게 굳히고 있었다. 얼음장처럼, 마음을.
그 끝나지 않는 겨울 속에 얼어있던 나를 와장창 깨버린 사건이 신기하게도 교통사고라니.
주변 사람들은 최근 내게 일어난 일련의 일들을 보며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난다고 했다. 사촌 언니는 온 우주가 너를 구렁텅이로 끌어내려 살아남는지 보자고 달려든 것 같다고 했다. 올해 얼마나 크게 좋아지려고 액땜을 이렇게 치르느냐는 이도 있었다. 그 모든 말들에 나는 상쾌한 큰 웃음소리로 답했다. 누가 보면 반어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차에 치여 튕겨나간 내 몸처럼 그 무겁게 누르고 있던 네거티브한 것들이 함께 튕겨 나가떨어진 기분이랄까. 그냥 그랬다. 이보다 어떻게 더 안 좋아질 수가 있겠어? 하고 진정으로 깊게 꺼진 바닥에 발바닥을 딛게 되어 안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간 에워싸고 있던 근심들이 모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그래 '각성'이 좋겠다, 난 각성하게 된 것이다. 몸이 아픈진 몰라도, 마음은 개운하다.
고통이나 불행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으로, 누군가에게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는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괴로움을 주기도 한다. 이와 같이 연속적으로 일어난 -들이 내겐 정말 신비하게 +가 된 것이다. 태생이 포지티브와는 먼 내가 지금 이 순간 현 상태에 대해 밝은 전망의 글을 써 내려간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그냥 상쾌하다, 아무 걱정이 없다. 좀 더 튼튼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임을 눈치챘다.
아주 오랜만에 입원해 있는 내내 내 다음을 생각지 않고 웃어본 것 같다. 아주 근원적인 질문인 '뭐해 먹고살지?'조차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내 몸을 치유하는 것, 마음을 치유하는 것에 충실할 참이다. 그리고 이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 이 순간, 너무나 빠르고 견고하게 튼튼해지는 나 자신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어 미소 짓게 된다.
맞다 내게는 구질구질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내게 있어서 터닝포인트의 순간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다. 오지 않은 내일에 본격적으로 진득하게 설레어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