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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처럼 Jan 10. 2022

초5 아들이 지워놓은 숙제 리스트

겉으로는 웃으며 타이르지만 속에서는 열불이 나는 그런 이야기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막바지인 아들은 사춘기를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아들의 세계관에도 게임과 친구가 중심을 잡은 지 오래. 엄마 아빠 동생과 모든 것을 함께하고 차분한 활동을 즐기던 유아기를 벗고 독립의 시기로 발걸음을 성큼 내딛기 시작한 모습이다. 엄마 아빠 동생은 주변인으로 서서히 물러나는 중이다. 


점점 본인의 취향과 독립적인 활동을 즐겨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기특하기도 하지만 반대급부로 열불이 터지는 일도 한 두가지가 아니다. 자아는 매우 빠르게 강해지는 데 비해, 주변에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소통 방법이나 성숙한 사회생활을 배워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복잡한 욕구를 설명하기 어렵고, 아이 마음을 투명하게 알기 어려운 부모는 답답하다. 주변에 사춘기 자녀를 둔 선배 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느 가정이건 이 시기에는 아이와 부모가 늘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벌이는 것 같다.   



우리 집 초5 아들의 욕구는 게임과 친구에 맞춰져 있다. 


아이에게 굉장히 기쁜 일을 포함해 크고 작은 가정 내 분란도 이 두 가지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식사하거나 수다를 나누는 시간에 우리 가족은 오로지 게임 이야기만 들을 수 있다. 마인크래프트, 로블록스, 배틀 그라운드, 포켓몬 Go와 관련된 최신 게임 뉴스, 게임을 좀 더 재미있게 해주는 플랫폼 사업자들, 예를 들면 음성 챗 기반의 디스코드, 업데이트 소식을 우리 가족은 그 어느 누구보다 빠르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엄마, 아빠, 여동생이 거기에 관심이 있느냐 여부는 아들에게 이미 중요하지 않다. 이러한 4차원 급 해맑음과 단순함이 넘사벽으로 귀엽기도 하고 때론 어쩜 저렇게 단순하고 해맑을까 싶어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것을 반대로 말하면, 아들은 게임과 친구 외에는 전부 초특급격으로 하기 싫어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가족 내 크고 작은 분란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사건사고들은 대충 이렇다. 네 식구가 기분 좋게 외출하기로 하고 모두 준비를 마쳤는데, 휴대폰 알림만 확인하겠다며 문 닫고 들어간 아들은 알림을 확인하다가 게임을 안 할 수가 없어서 옷도 갈아입을 수 없었다며 하소연을 한다던지, 숙제를 다 하고 나서 게임하는 중이라는 당당한 말을 기분 좋게 믿어주었는데 알고 보니 답칸에 적어놓은 큰 글씨들은 모두 아무 말 대잔치였다던지 하는 일들.  


정도가 심해지면, 학교 숙제나 독후감 숙제를 너무 하기 싫은 나머지 아무도 못 읽게끔 흘림체 신공을 발휘한다거나, 게임 신작 출시 시간이 과외 시간과 겹치는 바람에 과외 시간 내내 세상 우울한 목소리로 선생님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았던 일과같이 선을 넘는 일들을 벌이곤 한다. 이때는 웃으며 넘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동생도 바짝 긴장할 정도의 냉랭함이 집안에 서린다. 





아이의 세계관이 점점 확실해지기 시작할 때쯤인 5학년 초창기 시절, 

욕구에 충실한 이런 행동은 충격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 나의 반응을 기억해 보면  

(어차피 변하지 않았을 텐데... 아무튼) 친절하게 설명하기를 여러 번, 큰 소리로 다그치기를 수 번. 

휴대폰이나 게임을 금지하는 것으로 벌을 주기도 여러 번. 

그렇게 우리 부부의 마음도 상처받고 아이도 상처받기도 여러 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이 방법 저 방법을 동원해 보았던 것 같다. 


어떻게 아이와 소통해야 하는가, 하고 싶은 일 외에 해야 하는 일과 사회생활 규칙에 대해 어떻게 이해시켜야 하는가는 우리 부부에게 큰 숙제였다. 


그러기를 반복하며 서로 울고 웃다가, 5학년 1학기에서 2학기를 넘어가던 시기에 '칭찬 세러모니 전략'을 통해 아이 마음 돌리기를 시전하기도 했다. 그동안 사춘기로 향하는 입구에서 제대로 길을 찾지 못해 헤매였던 시점에 '칭찬 세러모니 전략'은 아이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처음으로 찡~~~하고 통했던 순간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감지하고 변화를 위해 같이 노력하자는 암묵적인 신호가 집안에 자리 잡았던 순간. (칭찬 세러모니 전략에 대한 후기는 이전 저장 글로 정리해두었다.) 



그때 꽤 감동적이고 드라마틱 했었는데 말이다.




역시나 지금 드는 생각은, '어차피 변하지 않을 거였는데 감동도 조금만 받을걸' 이라고나 할까. 훗- 


그 시간을 지낸 뒤 생긴 노하우는 '같은 잔소리를 백 번 반복하니 조금은 듣더라'라는 에미애비의 마음을 반쯤 태우고 몸에 사리 생기게 하는 이성적이고도 고전적인 방법이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5학년을 북적북적 시끄럽게 보낸 지 일 년. 주말을 겨우 두 번 남긴 12월 중순 월요일에 우리 아들은 주말 숙제를 다 끝냈다는 자랑스러운 말과 함께 행복하고 해맑은 표정으로 학교를 갔다. 그렇다. 아이에게 학교는 즐거운 곳이다. 숙제는 싫을 지언 정 말이다. 학교에 가면 게임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 년간의 고된 노력 끝에 '해야 할 숙제는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다'라는 책임감을 드디어 이해했나 싶어 아침 등굣길을 보며 뭉클해지기까지 했다. 감동스러운 마음에 모닝 커피를 기분 좋게 들고 아들의 빈 방에 들어가 과외 선생님이 적어주고 가신 숙제 리스트를 펼쳤다. 확인 사인을 해놓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내 앞에 보이는 것은 하얀 수정펜으로 정성스럽게 지워져 있는 숙제 리스트들. 


숙제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둔 페이지들. 다 풀어두었어야 했을 문제집 사이사이는 너무나 깨끗했다. 그렇다. 내가 방심한 것이다. 아들은 내 예상을 뛰어넘는 4차원 급 반전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또 잊고 말았다. 일 년 동안의 고군분투도 처음부터 없었던 것인마냥 새하얘지는 순간이었다. 


아들은 숙제 리스트를 지워두면, 알아보지 못하게 꼼꼼하게 칠해두면 엄마 아빠가 확인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전에는 리스트에서 체크만 하고 문제집 풀지 않았다가 대차게 혼났기 때문에, 속이는 방법을 나름 고도화한 것 같았다. 


머리에 열감이 느껴져 거실로 나왔다. 따뜻한 커피에 얼음을 부어 아이스커피로 만들었다. 차가워진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교 후에 아이가 집에 오면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고민해 보는 시간이었다. 머리속에 지난 일 년간 수많은 사건사고가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이와 했던 수 많은 약속들이 생각났다. 부모를 속이려 드는 아이가 괘심했고, 화가 났다. 거짓말하지 말자고, 속마음을 잘 설명해 보자고 수 백번 이야기했는데. 차라리 왜 하고 싶지 않은 지, 주말이 아닌 평일에 더 하겠다고 마음을 표현하면 좋았을 텐데. 당장 아이가 눈앞에 있었다면 답답한 마음을 표현했을 것만 같다. 차라리 지금 각자 집과 학교에 떨어져 있는 게 이성적 판단을 내리기에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반복되는 속고 속임, 마치 처음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이 상황이 괘심해서, 휴대폰이나 게임 금지라는 (아이에게 최악인) 벌을 줘야 할까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렇게 지워두는 건 소용없고, 해야 할 일과 약속을 책임감 있게 해내는 것이 멋진 일'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해줄 거라는 것을. 수 백번 반복했을 그 말을 말이다. 그리고 부글거리는 속내를 감추고 웃으려 애쓰는 얼굴과 함께 지을 것이다. 상처를 주고받지 않기 위해, 더 나은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라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일 년간의 과정을 통해 나도 배운 점이 있다. 어느 한 쪽이 잘못한 상황일지라도 다그치거나 상처될 만큼 혼을 내면 둘 모두에게 결국 상처만 남는다.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내가 얻은 결론은 '수 십 번, 수 백 번 귀에 딱지 앉을 만큼 반복해서 말하기'가 가장 효과적이고 이성적인 소통 방법이라는 것이다. 


나 스스로 이런 대응을 '우아하다'라는 표현으로 위로하기로 했다. 


속상한 상황에서도 나는 큰 소리 내지 않았다며 '와~ 나 엄청 우아했다'라고 생각하면 고단함에 빠진 나에게 누군가 위로를 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은, 몸에서 사리가 나올 것 같은 인내인데 말이다. 




이제 곧 겨울방학이 다가온다. 


아이는 또 어떤 고도의 심리전을 우리와 펼치며, 게임과 친구의 세계관으로 빠져들 궁리를 할까. 나는 어떤 제스처로 점점 진화해갈 아이의 사춘기를 맞이해야 할까. 겨울방학이 끝나고 아이가 6학년이 되면 나도 육아휴직을 끝내고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서로 간의 시간적 공간적 밀도가 떨어지면 그 공란을 어떤 커뮤니케이션으로 채워야 할까. 고민의 연속이다. 


겉으로는 웃으며 말하지만, 속으로는 열불이 터지는 아들의 사춘기 고군분투기는 이런 고민에서 비롯되었다.

 

아들의 사춘기가 시작된 지 오래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본격적인 좌충우돌 고군분투는 초6을 앞둔 지금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 같다. 그 시간을 서로 상처를 주고받지 않고, 갈등을 드라마틱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기억으로 남기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고군분투기를 차곡차곡 쌓다 보면, 현재 고민을 이성적으로 정리해 볼 수 있고, 과거를 반추하며 해결에 대한 실마리도 얻게 되지 않을까?   

 


두렵지만 두근거리는 아들과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 가족의 성장기. Keep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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