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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위의청년학교 Aug 05. 2022

나는 왜 이 길 위에 서있나

길위의청년학교 조은빛

누군가에게 혹은 어딘가에서 빛이 되고 싶다.

등불은 한치 앞만 비춰줄 뿐, 멀리까지는 비추지 못한다고 한다.

그들의 곁에서 등불을 비추며 한 발짝 한 발짝 함께 걷고 싶다. 


반짝반짝 빛을 내며진짜 어른으로 살기     

 청소년시기에 만났던 윤이라는 친구가 있다. 고등학생 때 교회 수련회에서 만났는데, 나는 그 친구가 속한 조의 조장이었다. 그 친구는 평상시 반항적인 태도와 협조적이지 못한 태도 등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도 지쳐있는 상황이었다. 그 수련회에서 윤이를 담당하는 인솔자 선생님도 나에게 “윤이를 잘 부탁한다.”라는 한마디의 말만 남긴 채 윤이에게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그때에 나는 벼랑 끝에 서 있는 친구들을 감싸 안아줘야 할 교회가, 그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청소년들과 함께 걸어줄 진짜 어른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보란 듯이 그 친구를 더 적극적으로 챙겼다. 나의 호의와는 상관없이 그 친구는 여전히 나를 무시했다. 하루는 핸드폰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선생님들에게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며 핸드폰으로 뺏어서 수련회 장소를 탈출하려고 했다. 나도 함께 그 친구를 말리며,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나의 말도 듣지 않고, 욕을 하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때의 나는 수련회 기간 동안 그 친구에게 진심으로 대했던 것 같은데, 나를 무시하는 태도에 서운하기도 하고, 마음이 상했었다.      


 하지만, 속상한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그 친구에게 동일한 태도로 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계속해서 대화를 시 도하고, 활동에 참여 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했다. 그러자, 점차 마음의 문을 여는 것 같았다. 함께 활동에 참여하자고 하니, 큰 불평 없이 활동에 참여하고, 점차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문득, 그 친구가 나의 말도 들어주지 않고, 위협적인 행동을 취했을 때, 나도 똑같이 친구를 무시하기 시작했다면, 이렇게 참여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의 반응과 상관없이 일관적인 태도로 상대방을 대할 때, 상대방이 나를 신뢰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뢰하는 한 명의 어른이 있을 때, 청소년들의 삶도 조금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청소년을 만나고 있는 이유이다.     

 

청소년들을 끝까지 믿어주고, 함께해주는 어른이 진짜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어른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진짜 어른 한 명만 있다면 그들의 삶도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진짜 어른이 없어서 아픈 친구들이 참 많다. 그 진짜 어른,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함께 해주면 좋겠다.     

           

진짜 어른이 되고 싶어서     

청소년들을 만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청소년들과 함께 꿈꾸고 걷고 싶다. 청소년을 만나는 일을 하고 싶다.'라고만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에 대해 소개하는 특강에서 ‘교정복지’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되었다. 소년원 등에서 상담을 통해 청소년을 만나고 있다고 하시며, 치아를 바로 잡는 것이 교정인 것처럼, 교정복지도 위험 상황이나 어려움 상황 속에 있는 이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돕는 일을 한다고 하였다. 이 특강을 듣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런 일이구나. 사회복지를 해야겠다.’하는 확신이 생겼다.     


진로를 정한 후, 고등학교 3학년이 시작될 때쯤 나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은 친구들을 모아 사회복지 동아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매주 동아리 친구들과 봉사활동을 함께 다녔다. 10명 이상의 청소년을 한 번에 받아주는 봉사처는 요양원뿐이었다. 처음에는 요양원 청소 등 단순한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조금은 더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르신들의 손톱을 깎아드리게 되었는데, 어르신들과 눈을 맞추며, 같은 높이에 앉아서 대화를 하게 되었다. 오며 가며 인사만 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하니, 나를 반가워하시는 것이 느껴졌고, 고마워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며, 친밀감도 생겼다. 감정이 교류되고 나니, 이전보다 재미있게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여전히 몸을 쓰며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어르신들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는 사회복지와 심리상담학을 함께 공부했고, 청소년들을 만나기 위한 준비를 했다.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년원, 지역아동센터 등에서 청소년 멘토링 등을 하며 청소년을 만났다.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만났던 청소년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로 아이를 낳아서 남자친구와 함께 키우고 있었다. 남자친구의 집에서 남자친구의 아버지와 어린 동생들과 함께 지내며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느라 학업을 포기한 상황이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검정고시에 합격해서 청소년이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검정고시 준비를 돕고, 포기하지 않도록 지지하는 것뿐이었다. 결국 전과목은 아니지만 몇 과목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것에 대해 지지해줬다. 그리고 정해진 기간의 멘토링이 모두 끝난 후에 SNS를 통해 나에게 연락이 왔었다. 나에게 연락을 해준 것 자체가 너무 고마웠다. 이후로도 종종 고민을 들어주기도 하고 안부를 확인하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청소년들을 미리 만나보기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청소년 현장을 가야겠다는 확신이 쌓여갔다. 

    

졸업 후에 어떤 일을 먼저 할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나는 하고 싶은게 너무 많은 사람이다. 하고 싶은 일들 중 내가 젊을 때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당시 내가 결정한 일은 아웃리치이다. 근무시간도 규칙적이지 않고, 밖에서 근무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젊고 체력이 좋을 때 경험하고 싶었다. 그 당시 전국에서 아웃리치 담당자를 뽑는 기관은 서울에 있는 일시쉼터 딱 한 곳이었다. 전북 토박이였던 나는 아무 고민도 없이 서울을 올라가 거리의 청소년들을 만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아웃리치는 시설에 찾아오지 않는 위기 청소년들을 거리에서 발견하고, 그들의 상황을 파악하여 긴급지원 및 자원연계 등의 일을 한다. 저녁 시간대에 길거리에 부스를 펼쳐놓고 청소년들이 부스에 올 수 있도록 안내하고, 부스에서는 정보전달 및 기관 소개 등의 활동을 진행했다. 가만히 있는다고 청소년들이 오지 않기 때문에 거리를 돌아다니며 청소년들에게 기관을 안내하고, 활동부스를 안내한다. 하지만, 거리에서 처음 보는 친구들에게 말을 걸고 다가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다가가서 말을 거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고, 우리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청소년인줄 알고 말을 걸었는데 성인인 경우도 많이 있었다. 청소년과 성인을 구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교복으로 청소년들을 구분하는데, 사실 우리가 찾는 위기청소년들은 교복을 입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더 어려웠다. 체계 밖에서 지내는 청소년들을 찾아도 문제였다. 그들은 우리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체계 밖의 친구들은 이미 가정에서도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학교나 시설에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설의 규칙 등에 적응을 하지 못하거나, 어른들을 향한 신뢰가 없어서 시설을 아예 이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미 어른들을 향한 불신으로 가득한 청소년들에게 꾸준한 태도로 다가가는 것이 중요했다.       

 

쉼터를 떠나 새롭게 일하게 된 곳은 성착취 피해 청소년을 지원해주는 일이었다. 성매매 피해자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한 치료, 재활 사업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었던 교정복지와 맞닿아있기도 했다. 꿈을 이뤘다고 여겨질 수도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나는 느꼈다. 몇 년 사이 나는 청소년에 대한 인식이 또 바뀌어 있었다. 이전에 교정복지를 하고 싶었던 이유가, 어려움 가운데 있는 위기 청소년들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옆에서 돕고 싶었던 것인데, 내가 만나는 청소년들은 교정의 대상인 범죄자가 아니라, 피해자 혹은 남들보다 아픔이 많은 친구들이라는 것을 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건 교정복지가 아니라, 그냥 청소년들과 함께 꿈꾸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센터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을 가해자나 범죄가담자가 아닌, 피해자로 보며 청소년들의 편에 서서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일을 했다. 법률지원, 심리지원, 의료지원, 교육 등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들은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청소년들도 자기 자신이 피해자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성착취라는 개념에 대해 알려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했다.      


활동가들의 수년간의 노력으로 인해 아청법(아동·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일부 개정되었다. 성매매의 피해자들을 범죄에 가담한 범죄의 대상으로 보는 대상·아동청소년 개념이 삭제되고, 성매매에 이용된 모든 청소년을 피해자로 보게 되었다. 나는 대상·아동청소년을 지원하는 치료·재활 사업팀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청법이 개정되며 내가 일하던 팀은 사라졌다. 관련 법적 근거가 사라졌기 때문에, 사업도 종결된 것이다. 그토록 바라던 아청법 개정이었기 때문에 미련은 없었다.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청소년을 만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대학교에서 청소년과목을 가르쳐주셨던 교수님께서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을 해주셨다. 위기 청소년을 만나는 일만 해봤던 나는, 청소년 활동도 경험하고 싶었다. 교수님께서 제안해주신 곳이 지금 함께하고 있는 청소년자치연구소이다. 대학을 다닐 때부터 청소년자치연구소의 다양한 활동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이 있었고, 살아있는 곳 같아 보였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임은 확실했다.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이곳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아주 재미있게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다. 청소년들과의 관계와 활동을 통해 많은 것을 고민하게 되고 배우기도 한다. 활동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하고 의미를 찾아가는 중이다. 여전히 나는 청소년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    

      

나는 왜 이 길 위에 서있나?     

청소년자치연구소로 합류하기 직전, 정건희 소장님과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었다. 청소년을 만나겠다는 꿈은 있지만, 만나서 뭘 할건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 없는 나에게 다양한 질문을 해주셨다. 그러던 중 나의 10년 후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짧은 경력이지만, 서울에서 두 기관에서 다양한 청소년들을 만나고, 다양한 기관들을 경험하며, 청소년들이 진짜로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실적 때문에 청소년들을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청소년들이 먼저 가고 싶은 그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어떠한 모습이든, 청소년들이 아무 때나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학교가 끝나고 편하게 들려서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친구들과 갈 데가 없을 때 들려서 음료 한잔 마실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의 친구가 되어주면 참 좋겠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그런 공간이면 좋겠다.     


10년 안에 청소년 공간을 만들어보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소장님께 말씀드렸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소장님께서는 길 위의 청년학교(길청)에 합류할 것을 권하셨다. 길청에서 청소년과 청소년 현장에 대해 공부하고 준비해서 5년 후에 독립을 하라는 것이다. 5년 후에 내가 독립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꿈을 꾸며 배우고 싶다. 내가 꿈꾸지 않으면서, 청소년들에게 꿈을 물어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길의 끝에 뭐가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른다. 이 길의 끝은 모르지만, 이 길을 걷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그 길 끝에서 또 다른 길을 향해 계속해서 고민하며 걷고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길 위에서 계속해서 관계하고 배우는 것, 이것이 내가 지금 이 길 위에 서 있는 이유이지 않을까?


또 다른 청년의 이야기

https://brunch.co.kr/@youth-road/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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