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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위의청년학교 Jul 24. 2024

아동•청소년이 신뢰할 수 있는 어른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있었다]


 2008년 5월 어느 날이었다 자고 일어났는데 속옷이랑 침대에 피가 묻어있었다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았고 등교 시간은 다가와서 헐레벌떡 옷을 입고 학교로 갔다 도착해서 여자 친구들한테 “있잖아 자고 일어났는데 피가 묻어있어 너네도 그래? 내 몸 이상한거 아니야?” 비밀 속삭이듯이 말하는데 한 친구가 “그거 월경, 생리야” 라고 하는데 머릿 속에 처음 들어본 말이라서 “그게 뭐야? 안 좋은거야?” 물었었다 여자라면 당연히 월 1회 해야 하는, 진짜 여자가 되는 날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급하게 보건실을 같이 갔고 보건선생님한테 말씀드리니 생리대를 주면서 팬티에 붙이면 돼. 라고 하고 친구랑 화장실에 가서 친구가 알려주는대로 속옷에 부착했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그래도 옷에 묻지는 않으니 다행이었나? 세상 잊은 듯이 하루를 보내고 수련관으로 갔다.


 수련관에 도착해서 사무실에 인사드리고 미설샘 팔을 끌고 “선생님 저 생리해요!” 라고 말씀드리니 “정말? 너무 축하해! 은지도 이제 진짜 여자가 되네!” 라며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는데 기분이 묘했다 이게 축하 받을 일인가? 무튼 기분이 좋았었다. 방과 후가 끝나고 셔틀 타러 가기 전에 선생님이 나한테 손에 파우치 안에 생리대를 넣어서 주시면서 귓속말로 “다시 한 번 축하해 은지야” 말씀하시면서 집에 갔고 담임선생님이 어머니한테 말씀하셨는지, 집에는 생리대와 새로운 속옷이 가득했다 “딸 축하해” 라는 메시지도 함께.

 나의 첫 월경이 있었던 날, 많은 사람들에게 홍보하듯 알리고 다닌 것 같았지만 진정 여자로 축하 받은 건 미설 샘한테 처음이었다. 남들보다는 빠르게 월경을 했던 나에게 당황하지 않고 하나씩 알려주셨던 모습이 인상깊게 기억난다.


어린시절의 은지


 또 다른 날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크게 싸웠었다. 점심시간에 배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 있는 같은 반 친구가 패드립을 하며 놀렸다. 3번 정도 참다가 담임선생님한테 이야기했더니 해결되는게 없었고 내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더니 “신고해라 신고해라” 더 놀렸었다. 그래서 진짜 112에 전화를 했더니 말하는 도중에 친구가 분노에 찼는지 책상 위 커터칼을 꺼내서 나의 팔을 그었다 놀란 나는 일단 “여기 oo초등학교 o학년 o반 인데요 친구가 놀려서 신고하려고요 지금 바로 와주세요” 라고 하고 끊었다 피는 계속 나고 있는 상황이었고 나는 어버버했고 담임선생님도 놀란 상황에서 분위기는 어수선 그 자체였다 그러고 몇 분 뒤 경찰 2명이 왔고, 전교생이 무슨일인가 구경을 왔었다 나는 피나는 채 가만히 서있었고 친구는 커터칼을 가지고 있었다. 경찰분은 일단 정문으로 나와서 이야기하자며 우리를 경찰차에 태워 인근 파출소로 갔다. 파출소에 도착해서 어리둥절한 나랑 친구는 의자에 앉았고 보호자 번호 아냐고 여쭤봤는데 모른다고 했고, 그때 생각 난 사람이 청소년 방과후아카데미 담임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경찰분이 방카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했고 급하게 3명의 선생님이 학교로 찾아왔었다


 학교로 와서 보호자처럼 나를 다독여주시고, 놀란 나를 안정시켜주셨던 기억이 난다. “네 잘못 아니야. 연락해줘서 고마워. 잘했어.” 라고 말씀해주셨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초췌한 나의 모습을 보고 학교 근처 분식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 “말 안 해도 돼. 괜찮아.” 이 한마디가 나를 더 울게 했었다

 어린 나이에 경찰서를 가서 어머니 대신 나를 보호해 주고 지켜줄 어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일인지 알았다 만약 부를 어른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2008년에 다른 해보다 몸도, 마음도 성장하고 있었다. 성장하는 가운데 좋은 어른이 있었다. 말하기 힘든 것도 믿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것과 나를 보호해줄 어른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래서 나도 미설샘처럼 청소년이 신뢰할 수 어른, 청소년지도사가 되기로 했다.


수련관 선생님이 써주셨던 편지


[청소년 참여의 시작다시 꿈]


 여느 때와 같이 고등학교 1학년 생활을 하다가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잊고 있었던 집 근처 청소년 시설이 생각이 났다! '어 그럼 수련관 가야겠다.' 머리에 스치자마자 스승님한테 연락해서 무작정 버스타고 갔다 사업팀 팀장으로 승격되어 계셨던 선생님께 "쌤 저 학교에서 봉사시간 채워오라고 했어요. 여기서 제가 할 수 있는 봉사가 뭐에요?" 고민하시더니 시작은 문서작성 및 행정업무 보조였다 쌓여있는 서류를 날짜별로 분류해서 정리하고, 영수증도 붙이고 복사하고 파지 꽉 차면 치우고, 복사 필요하면 하고 행사 사진 촬영하고 조금은 따분한 일들의 반복이었다. 그러던 중 쌤이 "지금 수련관 청운위 모집하는데 해볼래? 아니 너랑 어울려 해. 너처럼 수련관을 제집 드나드는 청소년이 해야 잘할 수 있어" 권유 아닌 반강제? 로 신청서 쓰고 면접보고 합격해서 수련관을 다시 오고갈 수 있는 재미거리를 찾았고 갈 이유가 생겼다. 진짜 의미 있는 일을 하는거니까 가슴 속에서 뭔가 스멀스멀 뜨거운 열정? 간질간질한 설렘? 이 가득이었다.


 2014년 6월 4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청소년운영위원회 위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부산시 청소년 정책에 대해 목소리 내는 시간을 가졌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참여했던 첫 워크숍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우연한 기회로 부산시 청소년을 대표하여 워크숍 진행을 담당했었다. 우리의 공동 목표는 부산시교육감 후보, 부산시장 후보에게 청소년 정책에 대한 제안 즉, 질의서를 전달하는 활동이었다.


 청소년이 연합해서 부산시 청소년의 이슈를 도출하고, 도출된 이슈를 재정립하여 내용을 구체화하고 구체화한 것들에 대해 정책화하는 과정이었는데 이 경험을 토대로 청소년의 참여가 진정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몸소 체험하며 청소년시기에 이러한 의사소통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실제 당선된 교육감을 만나 간담회 하는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부산시 청소년들의 교육 뿐 아니라 환경도 적극적으로 개선해주세요. 질의서에 서명하였듯 청소년의 인권이 존중되는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경험한 청소년 참여는 역동적인 행동을 할 때 발현되고, 주어진 일에 책임을 다하고,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변화해나가는 것을 경험할 때 비로소 참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새로운 경험 속에서 돌고 돌아 청소년지도사의 꿈을 다시 확신했다.

     

[청소년지도사로서의 걸음]


“은지쌤, 청소년참여위원회 담당 해보실래요?” 

 2020년 3월 청소년지도사로 첫 발을 내딛고 우연한 기회에 팀장님께서 제안을 해주셨다. 잘해내고 싶은 욕심으로 똘똘 뭉쳤던 시기였고, 동작구청소년참여위원회 담당자가 되었다. 위원을 모집하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매 순간 난관이었다. 학교로 나가 아웃리치 하면서 “안녕하세요~ 동작청소년문화의집에서 청소년참여위원회 위원을 모집해요. 포스터 한번 확인하고 관심 있으면 신청해주세요.” 라고 말을 수백 번 했다. 2주 정도 모집을 했나, 총 12명의 위원이 함께 했다.


 위촉식 당시 “청소년참여위원회 들어본 사람?” 물었을 때 세상 정적이었다. 사실 마음속으로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지금부터 하나씩 채워나가면 되니까!’ 안심했다.



 청소년 참여에 대해 부딪히면서 느낄 수 있게 했고, 해단식을 하는 날 청소년이 말해준 소감들이 기억에 남았다.

 “선생님을 만나서 청소년이 주체적인 존재이고, 존중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청소년참여위원회가 뭔지 몰랐는데 6개월 동안 참여하면서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저 내년에도 할 거에요! 정책활동이 힘들었는데 의미 있어서 또 하고 싶어졌어요!”

 나 역시 청소년들에게 “부디 청소년참여위원회 경험이 개개인의 변화와 무한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길 바라며, 청소년으로서 주체적인 시민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앞으로도 보여줬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며 마무리했다.


“은지쌤, 과외선생님 같아요.”

“청소년들 왜 이리 자주 와요? 그러면 보호자들이 싫어해요~ 적당히 해야지.”

부산으로 이직하고, 직장 선배한테 들었던 말이다. 무슨 의미로 이야기 한 건지 궁금해서 여쭤봤다. 질문의 의도는 매주 청소년을 만나는 시간이 길고, 왜 꼭 선생님이 붙어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이었던 것이다.

 나는 여기서 머리를 한 대 맞았다. 청소년이 매일 오는 것도 아니고 주 1회 토요일에 와서 활동하고 가는데 하루 2시간 함께 있는 것이 과외선생님 이야기를 들을 소리였던가? 싶었다. 주말만큼은 행정업무가 아니라 청소년 만나는 게 먼저이고 그 시간만큼은 온전하게 만나는 청소년에게 써야 한다는 내 마음과 태도가 다르게 흘러가고 있음을 인지했다. 그래서 문득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잘하고 있는 건가?’ 물음표가 생겼다.


 한번 생긴 물음표는 답을 내리지 못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온전히 나를 위해 퇴사를 하고 쉬는 걸 선택했다. 청소년지도사의 꿈을 실현하려고 봤더니 실패자처럼 낙인찍힌 기분이랄까? 내가 사회생활을 못해서 모든 게 불편해보이고 온전치 못해 보이는 걸까? 부정적인 마음이 가득했다. 뭐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매번 나오는 꼴인 것 같아서 자존심도 상하고 내가 원했던 이상과 현실의 괴리의 차이였나. 스스로 한심하기도 하면서 내면으로 탓을 돌렸다.



[가장 나다운 모습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


 나의 신념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해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나도, 청소년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간, 내가 가장 나다운 모습일 수 있는 공간, 청소년이 사회구성원으로 존중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공간, 눈치 보지 않고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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