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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위의청년학교 Jul 17. 2024

사랑 받기 위한 몸부림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 있습니다.

이 질문을 받았을 당시는 2019년도였고, 전 29살 이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짦게 살았는데, 도대체 '그 동안의 삶을 어떻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 질문은 좀 무례하다. 어떻게 우리 삶의 수많은 일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4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제 삶을 표현할 수 있는 한 마디를 찾았습니다.

그 동안의 제 삶은 '사랑받고 싶어 몸부림 친 인생'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게 된 계기는 10대 초반의 청소년을 만나면서 였습니다.


2021년에 초등학교 5~6학년을 대상으로 한 자살예방교육의 강사를 모집하는 글을 봤습니다.

초등학생보다 중고등학생을 만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지만, 자살예방교육이라서 활동이 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저는 중학교1~2학년 때,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전 소변을 보는 것을 제일 먼저 하는데, 이때 아침마다 변기에 앉아 생각했습니다.

'아 죽고 싶다. 살기 싫어. 차라리 학교 가는 길에 자동차가 나를 쳐버렸으면 좋겠다.' 

이런 괴로운 마음을, 요즘 아이들은 저보다 더 이른 시기인 초등학생 때 느낀다고 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감사하게도 기회가 왔고, 자살예방교육 강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막상 강의를 하면서는 큰 위기가 있었습니다. 강의는 OX 퀴즈로 시작하는데, 첫 번째 질문이 저를 곤란하게 했습니다.

그 질문은 이러했습니다. '공부를 못 하면, 내 가치가 떨어진다.'

당연히 정답은 x였고, 청소년들에게 "여러분! 우리는 운동을, 공부를, 노래를, 무언가를 잘해야만 가치 있는 게이 아니에요.

태어나서 열심히 살아가는 그 자체로 우리는 가치가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머리로 당연히 맞는 말이기 때문에 학생들 앞에서 이렇게 말을 했는데, 마음속 양심이 저에게 자꾸 딴지를 걸었습니다.

'거짓말 하지마! 너 그렇게 생각 안 하잖아. 넌 네가 무언가 잘해야지만, 가치있다고 생각하잖아.

그래서 맨날 뭐라도 하나 더 잘해보겠다고 이것 저것 하면서 열심히 사는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왜 맨날 그렇게 열심히 사는 건대?'

다그치듯이 물어보는 양심의 물음에 바로 댇답하지 못 했고, 당황스러웠습니다.

다행히 자살예방교육 강사를 부르는 별칭이 '꼬북킹즈'라고 따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살예방교육을 할 때는 신수경이 아니라 '꼬북킹즈' 부캐가 출동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한 동안 청소년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청소년을 잠깐 안 만나는 여름방학 때에 이 부분을 다시 들여다 봤습니다.

그 동안의 삶을 정직하게 돌아보니 양심이 저에게 태클을 걸었던 것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께, 학교 다니면서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어른이 되어서는 회사에서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기 위해, 뭐 하나라도 더 배워서 잘하려고 애썼습니다.

쓸 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그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제가 사람들을 쓸 모 있냐 없냐의 잣대로 대했습니다. 그러니 남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죠.


청소년 앞에 설 때는 늘 진실되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들을 만나면서는 뜻 하지 않게 제 마음 깊은 것과 조우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점이 청소년을 만나면서 정말 감사한 순간입니다.  

자아탐색을 하면서 청소년들이 자기를 알아갈 수 있게 돕고 있지만, 그 덕분에 저 역시 깊은 자아탐색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게 진정한 win-win이 아닐까요? 그래서 전 청소년을 만날 수 있는 많은 콘텐츠 중 자아탐색 프로그램을 제일 좋아합니다.




[ 삶의 결정적인 순간 ] 


그러면 보통 물어봅니다. "아니! 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려고 하세요? 아이들도 줄어드는데, 성인을 대상으로 하세요. 그래야 돈이 돼요."라고 말합니다.

전 인생에서 10대가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성인이 되어서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힘들고 바닥까지 내려가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그 시기를 어떻게 견디고 이기는지 보면, 10대 때 배운 것을 써 먹으며 이기더라고요.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10대를 '공부만 잘하면 되는 시기'라고 여깁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저는 '10대가 인생에 제일 중요한 시기'라고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을 청소년기 때 만났습니다. 

그러니 그 시기를 잘 보내고 싶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양한 경험이 하고자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성인이 되어 마음이 힘들 때도 전 '주도적으로 움직이다가 긍정적인 자극과 활력'을 만나서 기운을 차립니다.

20대 때 상담, 심리에 대해서 많이 공부하다 보니 마음이 힘들 때는 움직이고 뭐를 하려고 하기보다 감정을 흘려 보내며 돌보는 게 필요하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방법을 성인이 되어 배워 그런지 자유자재로 편하게 쓰지는 못 했습니다. 힘든 시기에는 더욱 더 못 하겠더라고요.

사실 사람이 힘들다는 것은 마음에 에너지가 없다는 뜻이고, 그만큼 바닥난 에너지를 긁어서 써야하는 순간이 힘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힘든 순간에 써야 하는 바닥난 에너지를 10대 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0대 때 배운 것은 평생 간다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청소년기의 24시간은 어른의 24시간 보다 더 비싸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을 만나는 강사는 물론 사람 실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반적으로 연봉이 높은 직종은 아닙니다.

기업 교육에 비하면 보수는 귀여운 수준이죠. 2년 전에 기업교육을 하는 회사에서 잠깐 일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3주 만에 그만 두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사람을 '인적자원'으로 여기는 것은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청소년을 만날 때, 특히 공교육으로 들어가면 페이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회사 입장에서는 교육의 질을 낮출 수밖에 없죠.

비용만 생각한다면요. 그런데, 전 청소년을 만나면 비용의 개념에서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되는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의 가치 관점을 갖고 와야 합니다. 공교육 현장에서 한 학급에 20명인 반을 들어가 1시간 수업을 하면, 1시간의 가치가 아니죠.

20명이기 때문에 20시간이고 10대 어드벤티지가 붙으면 그 가치는 더 올라갑니다.

이 시간의 무게를 견디면서 청소년을 만나는 강사로 성장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 사랑 나누기 위한 몸부림 ] 


앞으로 저는 죽을 때까지 계속 몸부림 치는 인생을 살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좀 다른 몸부림을 쳐보려고 해요. 

이전까지는 사랑받고 싶어서 몸부림을 쳤다면, 앞으로는 사랑을 잘 주고자 몸부림을 치고 싶습니다.

사랑을 주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사람마다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는 방식도 다르고, 그래서 신중히 상대를 관찰해야 하죠.

또 아무리 줘도 받을 준비가 안 되어 세어 나가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마음의 상처도 각오해야 하죠.


청소년들을 만나다 보면, 일부러 못 되게 구는 청소년들을 만나곤 합니다.

괜히 탯글 걸고, 말끝마다 비아냥 거리고, 활동하기 싫다며 구시렁 거리죠. 

선배 강사들은 "아이들을 휘어잡아야 돼.", "네가 얘들 안 잡으면 얘들이 널 잡아"라고 말하며 조언합니다.

전 좀 다르게 생각해요. 청소년들의 테스트를 통과하는 과정이라고 여깁니다.

청소년들도 제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전 일부러 못 되게 구는 아이들을 더 신경 써서 사랑으로 대하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못 되게 구는 아이들을 변함없이 사랑으로 대하면, 오히려 그들이 마음을 열었을 때는 정이 많고 속도 깊어 관계가 오래갑니다.


저는 특성화고에서 1일차 6교시, 2일차 6교시로 총 12차시 수업을 많이 했습니다.

아이들이 1일차 때, 열심히 안 하고 엎드려 자고 떠들고 하기 싫어하며 개판을 칩니다.

그러면, 2일차 때 아이들은 선생님이 열심히 안 준비해 왔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합니다.

그런데, 전 그렇게 개판일수록 더 보완하고 그 반의 특성에 맞춰 준비를 해갑니다.

보통 2일차 1교시 때 초상집 분위기로 시작하는데, 변함없이 아니 오히려 더 잘 준비해온 것을 보면 그 모습을 보고 참여하는 청소년이 있습니다.

오후 시간으로 갈수록 참여 안 하다가 관심을 보이며 해보고 싶다며 합류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반 전체가 다 참여하는 그런 기적이 일어났다고 거짓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한 반에 평균 2~6명 정도가 이런 변화를 보입니다.


사랑을 나누고, 사람이 변하고, 결코 쉽게 되는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랑을 주는 것이 몸부림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러나 정말 감사한 것은 이렇게 몸부림 치는 과정에서 제가 점점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질 것을 확신합니다.

그 재미로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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