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명호 May 19. 2017

그 시간과 공간에 그녀가 있었다.

목욕탕 옆 인간극장 182 - 김미진(서귀포시 표선면)

목욕탕 옆 인간극장 182 - 김미진(서귀포시 표선면)
2017년 2월 2일(목) 한량유치원 어느 소파

그녀는 표선면 표선리 어느 조용한 바다 앞에서 거의 한 달을 살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수줍었다. 서로 며칠을 데면데면 했다. 공간에 아직 찬 공기만 머물 때 함께 정리를 하고 물건을 채우고 설거지를 함께 했다. 거의 나가지 않았고 가끔 다녔다. 그녀가 때때로 버스를 타고 먼 길을 다녀오게 되면 추위를 피해 데리러 갔다 데려 오면서 별별 이야기를 했다. 낮이나 밤에는 칭찬 받길 좋아하는 그녀에게 어쩌면 긴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좋아할 수는 있지만 어떤 위로가 될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과 공간에 그녀가 있었다. 늘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 일상은 쉽지 않아서 늘 어렵지만 그녀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오빠 이거 어때요?" 물어보는 순간들을 이제 꼭 기억하고 싶었다. 아침이 밝았고 바람이 덜 불고 바닷물이 빛나고 있는 어느 일상 사이에서 다 씻고 나와 화장을 하러 가는 뒷모습을 봤다. 사람들은 둥글게 앉아 밥을 먹거나 웃거나 가만히 누워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여기 한량유치원에서 드러누워 지내고 있습니다. 정말 진심이잖아요. 아까도 낮잠을 두 시간 자고 일어났어요. 10분만 분명 자려고 했는데 알람까지 맞췄거든요. 오늘 카페에 가서 책 읽고 다이어리를 쓰려고 했거든요. 오빠 때문에 다마스 타고 와서 힘들어서 그러잖아요. 제 잘못은 없어요. (웃음)”
 
 
“뭐 어떻게 지내요?”
“한 달 살이 지내는 분들과 밥 맛있게 해먹고 여행 온 분들과 이야기 나누고 드러눕고 그러고 지내고 있어요. 이거 못 쓸 것 같은데요. 드러눕는 이야기밖에 없잖아요.”
 
 
“여기는 어떻게 오게 된 거예요?”
“제가 하도 힘들어 하고 있어서 친구들이 제주도에 한 번 가보라고 나는 못 가니 너라도 가라고 태그해줘서 오게 됐어요. 술 엄청 많이 먹고 2시간 먹고 자고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술 덜 깬 상태에서 신청했어요. 기억도 잘 안 나요.”
 
 
“와보이니까 어떠세요?”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좋아요. 원래 너무 무서웠거든요.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무서웠거든요. 여기 오니까 제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거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웃음) 어제는 기세 좋게 전라도 친구 두 명 사귀었어요. 전주랑 광주 놀러가면 친구들이 밥 사주기로 했어요. 같은 방 쓰는 동갑 두 명.”
 
 
“제주에 오면서 세운 처음 계획은 어떤 게 있었어요?”
“그냥 뭐 올 때 계획은 정말 없고 친구들이 짐도 싸줬어요. 제가 짐도 너무 못 싸니까 친구들이 새벽 두 시에 와서 짐을 싸주고 새벽 4시에 집에 갔어요. 공항까지 데려다 줬어요.”
 
 
“어떤 게 힘들었어요?”
“그냥 사람들에게 너무 치이고 살고 사람들 만나는 게 너무 무서워서 이게 몇 달 동안은 동네 친구들만 만나고 아는 사람들만 만나고 누구랑 친해지는 게 무섭고 그래서 피해있다가 다시 한 번 해볼까 이런 생각으로 왔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제가 사람들을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웃음) 이야기 하고 그런 거. 제 친화력이 많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낯을 가린다고 생각했는데 언니들이 전부 넌 낯을 안 가린다고 너만큼 안 가리는 애도 없다고 했어요.”
 
 
“제일 기억에 남는 일 같은 게 있나요?”
“그냥 큰 일은 아니고 도착하고 이틀 있다가 밖에 나갔는데 바다가 너무 예쁘고 개들이 반겨주고 별이 너무 예쁜 거예요. 별을 정말 오랜만에 봤어요. 만날 피씨방 가고 그러다가. 이제 하늘 보는 게 일상처럼 됐어요.”
 
 
“이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떤 게 좋았어요?”
“제가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하잖아요. 제 나이대는 대학교 3학년이고 대학에 있어도 나이차가 많이 나봤자 4살 그런데 여기 오니까 나는 어리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고민도 듣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내가 생각했던 것에 비해서 사람들은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관심이 많은 건 보통 어떤 것들인가요?”
“뭐가 있을까. 저요. 저 그냥 사실 잘 모르겠어요. 지금도 제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초등학교 때는 책을 쌓아놓을 정도로 독서왕이었거든요. 요즘은 책도 별로 안 읽고 가끔 읽어요. 여기 와서요. 그냥 사람들 만나고 이러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왜 사람이 좋다 이런 걸로 이야기가 끝나는 걸까요. 여기 와서 너무 좋은 게 너무 힘든 시기였거든요. 가족들도 가라고 했어요. 생각도 하고 사람들 이야기도 듣고 그런 것도 듣고 와라 그랬어요. 진짜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있어요. 놀고 있고 윷놀이 하고 화투 치고 그러니까 좋아요. 처음 만난 사람이랑 같이 여행 가고 그러는 거 처음이거든요. 성연이 언니랑도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아무렇지 않게 밥 먹고 카페 가고 그랬어요. 처음 만난 날 같이 울었어요. 울보 같아요. 그때 아무 말 대잔치를 했는데요. 아무 말이나 돌아가면서 하는 거예요. 그때 저는 나는 돼지띠고 태몽이 리본돼지였고 그리고 지금 돼지라고. (웃음)”
 
 
“좋아하는 것들을 물어보면 뭐가 있을까요?”
“수다 떨기, 노래 듣기, 노래 부르기, 놀기, 여기 오기 전에는 만날 잤거든요. 하루 종일. 저는 제가 잠을 자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할 게 없고 그래서 잔 거였더라고요. 그냥 자면 아침에 있었던 거 까먹을 수 있고 그러니까.”
 
 
“또 좋아하는 것들 있어요?”
“친구들, 언니. 그리고 가족들 다 좋아하지만 언니. 존경하는 사람 꼽으라면 전 언니. 언니가 전 항상 대단하고 멋있다고 생각해요. 예쁘고요. 날씬하진 않지만. 며칠 전에 퇴사했어요. 아직 인수인계 중인 것 같아요.”
 
 
“초등학생 미진 씨는 어땠어요?”
“지금이랑 다르게 엄청 조용하고 책을 진짜 좋아해서 독서왕이었다니까요. 독후감 쓰기로 김해 대표 나가고 그랬는데 엄청 조용하고 존재감이 없었어요.”
 
 
“다른 기억이 있어요?”
“옛날에 짝궁 좋아할 때가 있잖아요. 운동 잘하고 잘생긴 애들 있잖아요. 걔가 의자 까닥까딱 하는데 제가 너무 크게 밀어서 뒤에 사물함에 부딪혀서 병원 다녀오고 그랬어요. 그 이후로 무서워서 한 마디도 안 했어요. 그때는 제가 여자 중에 제일 커서 맨 뒤였어요.”
 
 
“중학생 때는 어땠어요?”
“제 암흑기였어요. 좀 못된 애들이 저를 굉장히 괴롭혔어요. 왜 괴롭혔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지나가면 발 걸고 소위 말해서 찍혔어요. 지나가면 욕하고 그래서 진짜 만날 울었거든요. 이것도 제 트라우마라고 해야 하나요. 고등학교 지나고 한동안은 교복 입은 무리만 봐도 눈도 못 맞추고 그랬어요. 세상에서 제일 못 생긴 시기를 꼽으라면 중학생 때였어요. 까무잡잡 하고 안경 끼고 키 작고 못생겼었어요 진짜. 지금은 예쁘잖아요? (웃음) 아닌가요?”
 
 
“고등학생 때는 어땠어요?”
“친구들을 잘 만나서 성공한 케이스예요. 고등학교 때 지금 제일 친한 친구들을 만나서 중학교 때의 어두운 면을 다 벗어던지고 그랬어요. 걔들은 저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어요. 만날 양푼이 들고 가서 체육 선생님과 비빔밥 해먹고. 말하면 선생님들한테 혼나는 얘긴데요. 가스 버너랑 비빔면 3개 라면 3개 공기밥 장조림 가져가서 점심시간에 문 닫아 놓고 끓여먹고 그랬어요. (웃음) 그리고 지금은 화장해서 안 보이는데 친구가 머리 잘라주라다가 여기를 베서 아직도 흉터가 있어요. 평상 안고 가야할 흉터.”
 
 
“대학생 때는 어땠어요?”
“대학생 때는 뭐 약간 어두운 시기가 있었는데요. 학교 가기 싫어하고 사람들이랑 만나는 게 그때부터 힘들었거든요. 사람들 만나는 것도 싫고 그래서 학교에 잘 안 나갔어요. 그래서 학고를 맞고 집에서 쫓겨나고 그랬거든요. 그 시기에 첫 사랑도 했거든요. 학교가 편도 1시간 30분 걸리거든요. 학교가 가기 너무 싫은 거예요. 너무 싫어서 내려서 울다가 남자친구 집이 부산에 있는 영도거든요. 무작정 갔어요. 걔는 군대가려고 휴학했거든요. 걔는 공부를 잘해서 학교 안 갔다고 혼내는 거예요. 왜 나는 힘든 걸 위로 안 해주고 다그치기만 하냐고 울었어요. 그래도 힘든 시기를 그 친구가 다잡아 줬어요.”
 
 
"그런데 왜 어두운 시기예요?”
“그냥 저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이 들리고 그런 걸 알고 학교에 가니까. 몰랐으면 철판 깔고 살 텐데 쟤도 날 싫어하나 얘도 내 소문을 듣고 믿으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서 사람을 만나는 게 너무 무서워졌어요. 그때부터 시작이었어요.”
 
 
“요새는 어때요?”
“제주도에서 너무 재밌게 잘 지내고 있어요. 언니 오빠들이 재밌고 재형이 오빠 괴롭히는 게 제일 재밌고 은지 언니가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고 지연이 언니가 찍어주는 사진이 제일 좋아요. 친구들이 설거지 해주는 대가로 놀아준 거 아니냐고 하는데 너무 재밌어요. 제일 행복합니다. 가끔 힘들어 하는 명호 오빠 보는 게 즐거워요. 어제 거지처럼 감자 먹는 모습 너무 아른아른 거려요. (웃음)”
 
 
“앞으론 어떨까요?”
“앞으로 아직 뭘 해야 할지 학교를 때려쳐야 할지 그런 걸 생각하고 있고요. 열심히 살아보고 행복해질 각오를 다지고 있어요.”
 
 
“혹시 버킷리스트가 있을까요?”
“한라산 올라가는 거랑 여행 와서 남자랑 눈 맞는 거 있었는데요. 한라산 올라가는 건 여기 끝나기 전 혼자 올라갔다 올 거예요. 그런데 이건 소문내지 말아주세요. 내일 가자, 모레 가자 그럴 거잖아요. 아 또 그리고 아. 바다에 입수하기 그거 버킷리스트예요.”
 
 
“지금 다녀와요.”
“지금 왜요. 아직 마음에 준비가 안 됐어요. 재촉하지 말아주세요. (웃음)”
 
 
“떠오르는 고마운 사람이 있어요?”
“많은데 언니요. 친언니요. 제가 하도 속을 많이 썩이고 막 땡깡 피우고 사춘기가 여덟 번 와도 항상 절 믿고 응원해주는 사람이에요. 언니가 퇴사하면 내가 그렇게 해주려고요. 내가 힘이 돼줘야지.”
 
 
“혹시 이상형은 어떤가요?”
“혹시 공개구혼인가요? 저는 하얗고 옛날에는 나쁜 남자가 좋았는데 요즘은 한없이 착하고 날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 하얀 거 꼭 들어가면 좋겠다. 빨리 제 연락처 적어주세요.”
  
  
“결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결혼은 꼭 굳이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결혼이 꼭 사랑의 종착지는 아니라고 어제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저는 팔십까지 연애하면서 살려고요. 그거 넘으면 아프니까 요양원 들어가서 살려고요.”
 
 
“죽는 건 어떤 의미 같아요?”
“솔직히 옛날에는 빨리 죽고 싶었거든요. 빨리 생을 마감하고 싶었어요. 나이가 드는 게 무서워요.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게 무서운데요. 지금은 그런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도 예쁘고 잘 지낼 것 같아요. 그런데 죽는 건 무서워요. 내가 어떻게 살았던 걸 다 까먹는 게 무서워요. 사후 세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나의 존재가 잊혀져가는 게 무서워요. 죽는 거 너무 무섭지 않아요? 옛날엔 아무 생각 없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었는데.”
 
 
“어떻게 죽으면 좋겠어요?”
“음. 밖에서만 안 죽고 싶어요. 내 집에서 내 공간에서 죽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내가 살아온 곳에서 죽는 게 괜찮은 것 같아요.”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얼른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찾았으면 좋겠고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꼭 그럴 거라고 믿는다. 행복합시다, 라고 해주세요. 제가 요즘 좋아하는 말이에요.”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저는 제가 싫어하는 사람이든 저를 싫어하는 사람이든 저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전부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남의 불행을 비는 건 너무 슬프잖아요. 다른 사람들 다 행복하면 좋겠어요. 주위 사람들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늘은 뭐했어요?”
“사실 나가려고 했는데 씻는 와중에 누가 문을 두드리며 미진 씨 빨리 나와요 그래서 후딱 씻고 왔는데 장보러 가자고. 마실 가자고 했는데 너무 예쁜 바다를 봐서 너무 좋아요. 다마스 타고 났더니 머리가 너무 아파서 두 시간 자고 일어났어요. (웃음)”
 
 
“어제는 뭐했어요?”
“어제는 새끼 강아지를 돌봤어요. 새끼 강아지를 살렸어요. 분유 사오고. 분유사러 나갔는데 사람들이 제가 새끼 강아지 안고 있으니까 이것저것 챙겨주고 그랬어요. 제가 덕배 엄마거든요. 개들은 못생긴 이름을 지어야 오래 산다고 했어요. (웃음) 그래서 이름을 덕배라고 지었어요. 새끼들 중에 덕배가 제일 커요.”
 
 
“내일을 뭐할 거예요?”
“내일은 꼭 나갈 거예요. 아직 어디갈지 안 정했는데요. 며칠째 집에 있는지 몰라요.”
 
 
“요새 누가 잘 지내요, 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 거예요?”
“바다 보고 뒹굴 거리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
 
 
“더 하고 싶은 이야기 있어요?”
“명호 오빠가 자꾸 멍 때리면서 힘들어하는 일이 많은데 그렇다고 신호 단속에 걸리지 않았으면, 조금 더 열심히 해서 다마스 시동을 안 끄고 모두가 돌아오면 좋겠어요. 심심해요. 재형이 오빠 없으니까 괴롭힐 사람도 없으니까 너무 심심하잖아요.”




작가의 이전글 여행은 거짓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