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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 Jan 05. 2018

그녀는 신기한 언어를 사용했다.

목욕탕 옆 인간극장 184 - 이승아(목포)

목욕탕 옆 인간극장 184 - 이승아(목포)
2017년 11월 2일(목) 우진장 평상
 
처음 만났을 때는 낯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리워졌고 어쩌면 만나서 덜 부끄러운 인연이 됐는지 모르겠다. 나는 쉽게 사람을 가깝게 하지 않아서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고 기대어 만나는 사람도 드물다. 연락을 하는 사람도 드물고 연락을 해도 때때로 몰아서 한다. 그 사이에 그녀를 만났다.
 
그 사이에 만난 그녀는 신기한 언어를 사용했다. 고기압, 저기압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왜 추운지를 설명했다. 손글씨 꾹꾹 눌러서 엽서를 보냈고 나는 그 엽서를 받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어느 날 만났을 때 새벽까지 이야기를 들었다. 새벽 세 시 이십 분에 이야기는 끝났다. 이유는 모르는데 이야기를 듣고 적었다. 그러다가 한참이 지나서 아직 정리하지 못 했던 그 새벽 이야기가 떠올랐다. 녹음을 한참 들었다. 옮겨 적을 때 기분이 좋았다. 그 새벽과 지난 시간, 일상이 지나는 단면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또 빠르게 생각을 되돌아 보다가 벌써 이야기를 다 들었다. 그런 그녀를 며칠 전 다시 만났고 다시 그녀는 제주에 갔고 통화를 해서 정리를 다 했다고 말했더니 좋다고 말하던 그녀는 “나는 너무 신기해서 그날 너무 피곤한데 들떴어요.” 말했다.
 
 
“승아 씨, 잘 지내요?”
“저요? 음- 잘 지내고 있다고 믿고 있어요.”
   
   
“어떻게 지내요?”
“음- 적당히 먹고 살만큼 돈을 벌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떤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요?”
“글을 써요.”
   
   
“어떤 글이요?”
“과학 같은 글을 쓰고 어- 돈이 되는 글도 쓰고 있어요.”
  
  
“과학 같은 글은 뭘까요?”
“과학을 몰라도 읽을 수 있는 과학에 대한 글이에요.”
 
 
“돈이 되는 글은 뭐죠?
“자기소개서 첨삭도 해주고요. 그냥 재단에서 부탁 받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돌아가는 일도 가끔 하죠.”
   
 
“과학에 대한 글은 어떤 걸 쓰는 거예요?”
“최근 동향에 대한 이슈를 정리하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에이즈 관련해서 잘못 쓰는 용어를 정리했어요. 에이즈라는 건 일종의 면역력이 일정 기능 이하로 떨어진 걸 말하고요. 증후군 같은 거고요. HIV 바이러스에 걸려도 에이즈로 가지 않을 수도 있는데. 바이러스를 가진 사람을 악마처럼 보는 게 있죠.
저는 용어를 단편적으로 보는 게 폭력적이라고 봐요. 사람을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로 나누는 것도 그렇고요. 그게 낙인으로 이어지니까요. 에이즈에 걸리면 죽는다. 동성애자, 문란한 성생활. 이미 바이러스가 퍼진 걸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순 없잖아요. 그런 생각을 해요. 그걸 강력하게 쓰진 못 해요. 그냥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과 사실과 다른 걸 말하는 거죠.”
 
 
“승아 씨는 좋아하는 분야 이야기 나오면 눈빛이 달라져요. 아까 하고 싶은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잖아요. 하고 싶은 게 뭐예요?”
“저는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싶은데요. 어떻게 해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세상을 좋게 만든다는 건 뭐예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요. 지금은 좋다는 게 뭐지. 좋은 게 좋은 걸까. 그런 생각을 해요. 그냥 저는 소극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사람들이 다 올바른 말을 하기를 원하지 않아요. 다만 내가 생각하는 걸 다 말해선 안 돼, 그걸 말하고 싶어요. 그게 얼마나 폭력적인지 알고 살면 조금 더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건 번외 이야기인데요. 우리는 할 수 없는 것도 많은데 우리만 할 수 있는 게 많아서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목포에 와서 뭘 할 수 있고 뭘해야지 생각했을 때 사실 대단한 걸 정하진 못 했어요. 좋아하는 걸 하고 좋아하지 않는 걸 안 하는 것뿐인데 그게 어려워요. 아무 생각 없이 목포에 내려왔는데 사람들이 원하는 말은 그런 게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바라는 건 있지만 저는 아무 생각이 없거든요. 어려운 부분이에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건 어떤 게 있어요?”
“좋아하는 거요? 어- 저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집에 언니랑 이모랑 같이 사는데요. 완벽하게 혼자 있을 때가 사실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한낮에 완벽하게 혼자 있을 때 좋아하는 영화를 커텐 치고 본다거나 그렇게 그냥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제가 태국 가서 좋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는데요. 선풍기 돌아가고 앞이 부서진 버스를 타고 좌석이 엄청 좋고 그런 버스였는데요. 배낭 메고 서로 손짓 발짓 하면서 어디 가냐고 확인하고 기다리고 그래서 그거 타고 가는데 머릿속에 걱정이 아무 것도 들지 않더라고요. 당장 이걸 타야 하고. 그래서 이런 게 힐링인가 싶었어요. 그걸 깨닫는 순간이 좋았어요. 너무 힘든데 정신이 맑아지는 순간. 사실 걱정 많이 하고 살잖아요.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저는 그런 게 많아서. 그런데 그때는 지금 당장만 잘 살면 되니까. 정신이 깨끗해지는 순간이었어요. 그때 좋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해요. 아프고 죽는 사람들을 계속 어릴 때부터 만나고 지냈는데요. 그래서 저는 내일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살게 됐어요. 매일매일 그랬어요. 어떻게 죽지 같은 생각을 무의식으로 하면서 살거든요. 내일 내가 죽을 건데 뭐라도, 글을 써야겠다, 이 순간을 기억해두면 내가 죽어도 누군가 보지 않을까 그러면서 지냈어요.”
“지금도 그래요?”
“저는 늘 그래요. 저는 공개하는 것보다 공개하지 않는 글이 많은 사람이라서요. 글이나 일 모두 제가 좋아해서 하는 거라서,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좋아서 열심히 하는 걸 왜 열심히 하냐고 하면 잘 모르겠어요. 우울한 기분일 때는 글도 우울하고 그런 사람이라서요. 그렇죠.”
  
 
“더 있어요?”
“좋아하는 거? 저는 이거는 명호 씨한테 쓴 편지에 있는데요. 저는 관성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요. 할 일이 많이 쌓였을 때 가만히 앉아있으면 사실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되는데요. 사실 그럴 때 뭐라도 시작하면 결국 그 관성으로 다른 일도 계속 하게 돼요. 그 시작하는 일이 요리인데요. 그래서 일부러 야채가 많이 들어가고 칼질을 많이 해야 하는 그런 요리를 해요.
“일부러?”
“네. 관성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웃음)”
“(웃음) 이 말은 이해가 되면 쓰고 아니면 안 써도 돼요. 관성은 내가 있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질이잖아요. 관성이 무게처럼 잴 수 있는 걸까요. 그게 질량이거든요. 질량이 크면 그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싱이 커요. f=ma라고 하잖아요. (웃음) m은 내가 가지고 있는 질량인데요. 가속도의 방향은 앞일지 뒤일지 몰라요. 그런데 그 가속도를 주려면 f 힘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질량이 크면 똑같은 가속도를 주려고 해도 더 많은 힘이 필요하잖아요. 저는 그런 질량이 결국에는 제가 쌓아온 시간들, 살아온 삶의 방향이 그런 게 우리에게 질량처럼 쌓이는 거죠. 사실 그걸 바꾸려면 어마어마한 게 필요한 건데요. 그게 무거워지기 전에 지금 내가 가진 힘만으로 변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가끔 하는 거죠.”
“제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표현이에요. 제가 시집을 좋아하는 건 제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문장을 보기 위해서인데요. 그래서 저는 글 쓰는 방법을 종종 바꾸기도 해요. 새로운 문장을 만나고 싶어서요. 제가 좋아하는 게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문장을 만나는 건데요. 그래선지 가끔 제가 쓴 글을 제가 쓴 글인지 모를 때도 있어요.” 
  
 
“지금 얼마 안 남았는데요. 올해 계획이 있어요?”
“올해 천 만 원 모으는 게 계획이에요.”
 
 
“왜 천 만 원이에요?”
“뭐랄까. 보통 하고 싶은 일을 향해서 최선을 다하라고 하잖아요. 먹고 사는 일을 버려두고 열심히 해 뭐 이런 거. 그런데 저는 반대로 내 힘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할 여유가 생겼어요. 절박해지면 안정감이 없으니까. 어떻게 가는지도 달려가게 되니까요. 이게 아닌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지만 그걸 모른 척 하게 되는 순간도 있잖아요. 내가 이미 이 길을 너무 많이 와버렸으니까. 이게 아니면 안 되니까. 근데 저는 이게 아니어도 나 하나 나 스스로 책임질 수 있구나 깨닫고 현실적으로 이뤄내고 나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할 수 있는 안정감이 생긴 것 같아요. 지금 모은 돈이 칠팔백 만원이어서요. 모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요. 천 만 원 못 모아도 인생이 달라지진 않죠.(웃음)”
“저는 여행 사업을 오래하지만 여행을 다니는 건 별로 안 좋아해요. 장소 하나에 오래 있는 여행을 좋아해요. 제가 좋아하는 단골집, 분위기, 골목을 익히고 나면 그때부터 여행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웃음) 뭐 그랬어요.(웃음)”  
  
 
“올해 어떤 일이 있었어요?”
“올해는 여행을 너무 자잘하게 많이 다녔어요. 그래서 여행 총량을 너무 많이 써버린 느낌이 있어요. 국내 여행을 많이 다닌 것 같아요. 목포도 지금 세 번째 왔고요. 제주도 올해 벌써 세 번째 갔고요. 대구랑 경주랑 순천이랑 가보고 싶었던 곳들을 많이 가봤어요. 올해는 여행 총량을 너무 많이 써버린 느낌이에요. 원래는 치앙마이에 한 달 써볼 계획이었는데요. 그런데 여행 총량을 많이 써서 쓸 에너지가 없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옛날 이야기를 해볼까요. 초등학생 때는 어땠어요?”
“초등학생 때는 음- 자기 잘란 맛에 사는. 그런 애였던 것 같아요.(웃음)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반장이나 회장을 해야 하고. 승아가 하는 게 당연해 같은 분위기를 좋아한다던지. 되게 선생님들에게 예쁨도 많이 받고. 뭐 그렇게. 그러면서도 완벽한 모범생처럼 보이긴 싫어하는. 근데 초등학생 때부터 남자 애들한테 지는 거 싫어했어요. 남자 애들한테 지면 되게 분해하고. 그리고 왜, 남자애들 때리고 다니는 여자 애들 있죠. 제가 걔였어요. 그래서 별명이 조폭 그런 거였어요. 남자 애들이 괴롭히면 그때는 힘이 대등하다고 믿었어요. 사실은 대등하지 않다는 건 나중에 알았죠.”
  
  
“중학생이 됐어요.”
“중학생 때는 1학년 담임 선생님이 바로 전에 친언니의 담임 선생님이었어요. 언니랑 저는 세 살 터울이라서 언니가 졸업하고 제가 들어갔거든요. 그래서 3학년 선생님이 다 1학년으로 내려온 거죠. 마침 담임 선생님 반에 들어간 거예요. 그렇게 된 거예요. 그래서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배치고사 점수를 알고 있었어요. 선생님이 전화해서 얘기했어요. 제가 언니보다 낮았거든요. 그때도 실장이었는데요. 반장 같은. 그때 처음으로 오기를 가지고 뭘 하는 성격이 아닌데 그때 오기를 가지고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부터 되게 공부를 뭐라고 해야 하지, 잘했어요. 성적 순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그런 게 1학년 때 생겼어요. 언니가 과학을 잘했는데 승아는 아니네. 저는 천상 문과 체질이거든요. 그런데 그걸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때 안 좋게 80점대가 나온 거예요. 그 선생님은 언니를 가르쳤던 선생님이었어요. 실망을 한 거예요. 사회 선생님은 언니 1학년 때 담임 선생님. (웃음) 그래서 되게 자존심이 상한달까. 내가 못해서. 
그래서 그때 처음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그 학교에서 제가 1등이었어요 계속. 그걸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졸업할 때는 망했죠. 과학고 들어가고 그러니까. 시험 대충 보고 그러니까요. 중학교 2학년 때는 전교 부회장을 하고 3학년 때는 전교 회장을 했어요. 뭔가 제가 해야 된다? 하고 싶다 같은 게 섞여있었는데요. 사실 승아가 하겠지 같은 분위기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너무 선생님들이 실제적인 자율적인 회장을 선호해서 힘들었어요. 예를 들면 학년별로 독서를 아침마다 할 건데, 책을 구입해야 하는데 그걸 선생님이 정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고르면 담합이 된다. 수업 시간에 가서 그걸 고르고 네가 정한 거다 그러고. 의미없는 자치권 같은 게 저한테 있었어요. 허울 좋은 자치권 같은 게 있었어요.”
 
 
“이제 고등학생이 됐어요.”
“고등학생은 남들보다 짧게 지나갔고요. 그렇게 기억할 만한 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1학년 때는 뭔가 하면 되니까 처음에는 열심히 했었는데요. 2학년 때에 올라가고 나서는 어느 정도 성적이 고정된 채로 움직이지 않고 난관만 다가오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사실 고등학교 때 일반고로 전학갈까도 되게 고민 많이 햇었어요. 그때 수련원에서 산 올라갔었는데요. 평지를 계속 걸어가야 했어요. 그 평지가 계속 이어지는데 코너도 없고 오르막도 내리막도 없는 그걸 계속 걷는 게 힘들었어요. 차라리 오르막을 걷고 싶을 만큼. 걷고 있는데 변하는 게 없으니까. 그게 제 고등학교 생활 같았어요. 그때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 풍경을 견디고 계속 걸어야 하니까요.”
  
 
“대학생이 됐어요. 어땠나요.”
“대학교 1학년 때는 동아리를 많이 했어요. 학보사랑 밴드랑 사회과학학회를 했어요.”
 
 
“이걸 할 수 있어요?”
“그래서 1학기 장학금 짤렸어요.(웃음)”
 
 
“저는 대학교 들어가면 데모 하고 사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러는 거 아니었고 저는 되게 옛날 운동권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대학교 와보니까 안 그렇고. 대학생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말하면서 사회과학학회에 갔어요. 나중에는 제명됐어요. 저도 이유는 잘 몰라요. 어느 순간 연락이 안 오더라고요. 3학년 1학기 때까지 활동했었는데요. 잘 안 맞았겠죠.
그리고 학보사는 혜화를 왔다갔다 해야 해서 그게 체력적으로 힘들었고 제 기수에 저밖에 자연과학계열이 없었고 1년 정도 하다가 그만뒀어요. 그때 처음으로 되게 비겁했거든요. 사람이. 그러니까 내가 견디기 힘든 현실을 마주 보지 않고 지나갈 수 있으면 그냥 내가 진실을 알고 있으면 그냥 지나가버리게 내버려뒀던 것 같아요. 그만둘 거면 진작 말하고 힘든 순간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견뎌야 하는데 그때는 그게 무섭고 힘들어서 그냥 정정당당 하지 못 한 방법으로 학보사를 나갔어요. 되게 비겁하다고 나중에 생각했어요. 견디기 힘든 현실이라도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했어요. 그러고 밴드 동아리를 제일 열심히 했어요. 대학교 내내. 지금도 애정을 가진 동아리는 사실 밴드 동아리밖에 없죠.”
 
 
“대학을 졸업하곤 어떻게 됐어요?”
“휴학을 한 번도 안 하고 4학년까지 다녔어요. 그러니까 세상에서 삶을 선택하는 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다고 생각을 안 했어요. 그래서 그냥 나랑 비슷한 친구들이 다 다니니까 나도 딱히 휴학할 이유가 없으니까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너무 불안하고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학교를 떠난다는 게 불안해서 그때 그냥 1년을 더 남아있었죠. 공부를 하기로 생각하고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사실 생물학과 애들이 의전(의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니까 나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 했는데 잘 안 됐어요.
그때는 생물학과를 나와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빠르고 효과적인 게 의사라고 생각했어요. 특별하게 정신과 의사를 하고 싶다. 그런 생각.”
  
  
“대학원은 어땠나요?”
“대학원은 힘들었어요. 대학원은 공부를 좋아하는 성실한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었어요. 그런데 지도교수님 말을 잘 안 듣고 불성실해서 논문도 늦게 쓰고 졸업도 늦게 했어요. 그런데 음- 내가 배우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던 걸 배웠는데 아 이게 내가 배우고 싶었던 거구나 깨달았어요. 그래서 되게 힘들었지만 실체가 명확해지는 기분이라 재밌었어요. 각각의 것들이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거.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들 그게 되게 오래된 모두들의 생각이고 이걸 이론으로 발전시킨 학자가 있고. 그리고 교수님은 문화 연구를 하는 분이었는데요. 저희 교수님은 트렌스젠더나 개인 이런 사람들이 미디어에 재현되는 방식, 청소년들, 소수자들이 재현되는 방식을 가지고 많이 작업하던 분이었는데요. 그분에게 미디어와 문화 이론이란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별나지 않아 생각하게 됐어요. 고등학교 때는 저는 별난 애였거든요. 남자들이 많고 저는 기가 센 여자애였고요 양성평등에 저해되는 발언을 하면 참을 수 없었고. 대학교 때는 무뎌졌다가 다시 대학원에 와서는 아 그렇구나 내가 별난 게 아니었어 생각하게 됐어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죠.?”
“아주아주 가장 최근은 마음을 확인하는 일을 했어요.”
 
 
“이건 뭐예요?”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지 확인하는 일을 했어요.”
 
  
“이상형이 어떻게 돼요?”
“어렸을 때 이상형은 턱선이 예쁜 사람이었어요.”
  
  
“요즘 이상형은요?”
“이상형은 딱히 없는데요. 저는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할 걸 만나면 좋아하기 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에게 가진 호감이 30이라고 하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70이라고 한다면. 그런데 나는 내가 이 사람에게 가진 감정은 30이지만 이 사람을 70까지 좋아하게 될 거라고 예상하는 거죠. 대부분은 그게 맞았고요. 그래서 그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이게 곧 좋아지겠구나 확신하는 거죠. 그렇게 지금까지 계속 연애를 했어요.”
 
 
“결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할 수도 있겠죠.”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상상해본 적이 별로 없어요. 그냥 엄마 아빠의 축의금을 걷어들이는 평범한 결혼식이 되지 않을까. 아니면 아주 독특할 수도 있겠는데. 나는 독특하게 할 거야 생각한 것도 있는데 엄마 아빠와 나의 배우자와 결혼식에 참석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건 평범한 결혼식이니까 오기도 쉽고. 꼭 이랬으면 좋겠어 이런 건 아빠가 나를 배우자에게 넘겨주는 방식으로 입장하고 싶지 않다 그런 것만 또렷해요. 엄마 아빠랑 다 같이 주인공이 되거나 온전히 저와 배우자가 주인공이 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어요. (웃음)”
 
 
“개인적으로 버킷리스트가 있어요?”
“없어요. 저는 인생에 뭘 꼭 해야 해- 이걸 해야 행복해- 이걸 하지 않으면 안 돼- 난 이건 절대 못 해 같은 극단의 욕망 같은 게 별로 없어요.”
  
  
“죽는 건 어떤 것 같아요?”
“남아 있는 사람들을 결국 위하는 것 같아요. 죽고 나서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일이 더 크다는 생각. 봐야 된다고 생각했던 교장 선생님이랑 자주 가던 책방 사장님이랑 그리고 예전 남자친구도 죽었거든요. 그런데 한 번은 꼭 봐야 했었는데 그냥 안 봤는데 그렇게 볼 기회가 사라져버린 거죠. 그런데 그게 사실 살아있는 거랑 세상에 없는 거랑 어쩌면 살아있다고 해도 영영 안 볼 수도 있었는데. 사실 현실이 변하진 않는데 그렇게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뭔가 남겨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생각할 때 제가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오는 거죠.”
 
 
“어떻게 죽으면 좋겠어요?”

“음 저는 지구가 멸망하기 전이면 뭐할 거냐고 하면 권총 들고 자살할 거라고 하거든요. 죽는 걸 완벽히 알거나 완벽히 모르거나. 완벽히 모르는 건 시한부나 엄청 아픈 거. 죽게 될 거라는 걸 계속 알고 있는 상태가 아니면 좋겠다. 그런 상태라고 해도 내가 내 삶을 알아서 선택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오늘 뭐했어요?”
“오늘은 어 아침에 일어나서 원래는 생선 경매하는 거 보러가기로 했었는데 늦어서 그건 못 보고 일출 보러 갔어요. 그래서 섬 사이로 안개가 꼈는데요 섬 사이로 동그라미가 떠오르고 그 옆으로 공단에서 연기가 났는데 스팀 펌프 같은. 그게 너무 좋았어요. 여긴 배가 떠있고 섬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데 여긴 비행기가 지나간 비행운이 있어서 좋았어요. 그리고 나선 시장 가서 핫바 사서 같이 먹고 민수 씨가 좋아하는 동네가 가서 같이 보고. 민수 씨한테 전선이 걸려있는 하늘이 좋다는 이야기를 말했어요. 또는 빨랫줄이 걸린 하늘이 좋다고.”
 
 
“내일은 뭐해요?”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갑니다.”
  
  
“모레는 뭐해요?
“모레는 억세를 보러 다랑쉬오름이나 용눈이오름에 갈 거예요. 밤에는 별빛투어를 하는 게스트하우스를 잡았는데 날이 좋으면 토요일 밤에 별빛투어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 있어요?”
“명호 씨 인터뷰는 누가 하나요?”
“하고 싶다는 사람은 많았는데 안 했어요.”
“왜 안 했어요?”
“그냥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억지로 하는 느낌이라 안 했어요.”
“명호 씨는 왜 하고 싶지 않아요?”
“자연스러운 그런 무엇이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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