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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tabook Dec 30. 2022

밴쿠버 동네 여행_밴쿠버(2)

퀸엘리자베스 파크, 일본 라멘, 그리고 H마트

어느덧 여행 마지막 날이 되었다. 다음날 오후에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에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준비했다.


마지막날 일정의 시작은 퀸엘리자베스 파크였다. 밴쿠버의 2박 3일 중 온전히 쓸 수 있는 날은 딱 하루라, 그 하루의 오전을 고여사가 좋아하는 꽃이랑 정원을 구경하고, 오후 남는 시간엔 시내를 구경하는 데 쓰기로 했다.


퀸엘리자베스 파크는 돌을 채취하던 황폐한 채석장에 조성된 공원이다. 넓이가 무려 1만 5000평에 달했다. 땅값 비싼 밴쿠버에 이런 넓은 공원이라니, 스웩이 느껴지지 않는가? 우리나라였으면 이 부지에는 아마 아파트가 올라갔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주거를 허용하는 것도 좋지만, 거주하는 사람을 위해 더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듯했다.


고여사와 퀸엘리자베스 파크를 천천히 산책했다. 이곳엔 고여사가 사랑하는 꽃밭이 많이 있었다. 가을인데 어쩜 그렇게 꽃이 많은지. 계절을 잃은 장미와 수선화가 이곳저곳에 피어 있었다. 갖가지 종류의 꽃밭을 지나면 넓은 잔디밭이 나왔고, 그곳을 지나면 또 울창한 숲과 작은 호수가 나왔다.


나는 이곳에서도 고여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돌아다녔다. 어쩜 이렇게 딸을 뒤에 두고 거침없이 다니시는지.



단순히 나무와 꽃만 심어놓은 게 아니라, 동선에 따라 풍경이 다양해 산책하는 재미가 있었다. 중간에는 높은 식물로 엮은 미로도 있었다. 이것이 인공적으로 조성한 풍경의 장점이다. 멋진 풍경이라도 계속 비슷한 모습이 이어지면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이곳은 계속해서 다른 컨셉의 풍경이 펼쳐져 전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공원을 다 둘러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이제 밴쿠버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일본 라멘을 먹으러 갈 차례였다.


라멘집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있었지만, 테이블이 거의 다 차 있었다.


"엄마, 라멘 먹을 거야?"


"나는 일본 라멘 특유의 돼지 냄새가 싫더라고. 그냥 덮밥 먹을래."


"여기 라멘 진짜 맛있다던데. 한번 먹어봐"


"아냐. 난 그냥 덮밥으로."


우리가 주문한 라멘과 덮밥이 나왔다. 라멘은 양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고여사는 숟가락을 들어 내가 주문한 라멘 국물을 맛봤다. 그러더니 두 숟갈을 연달아 먹었다.


“맛있네.”


“그치. 엄마 것도 하나 더 시킬래?”


“아냐 됐어. 그냥 면 한 젓가락만 먹을게.”


“그래 그럼.”


고여사는 젓가락으로 면을 몇 가닥 집어서 먹었다. 그러더니 또 한 젓가락 가져갔다.


“엄마, 하나 더 시키자 그냥. 엄마 한 그릇 다 먹어.”


“아냐 아냐, 나 한 그릇 다 못 먹어. 덮밥도 있잖아. 딱 한 젓가락만 더 먹을게.”


고여사가 이번엔 면을 조금 많이 집었다. 나는 속으로 참고 있다가, 이 시점에 터졌다. 테이블에 젓가락을 탁 내려놓으면 말했다.


“엄마. 나는 음식을 시키면 한 그릇 다 먹고 싶어. 진짜 딱 한 젓가락이면 그러려니 하는데, 이렇게 국물도 몇 번씩 떠먹고 면도 계속 먹으면 한 그릇 가지고 둘이 나눠먹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이건 먹은 것도 아니고 안 먹은 것도 아니야.”


"그래."


고여사는 기분이 상했는지 도로 면을 놓았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여행하면서 계속 커피도 딱 한 입만 먹는다고 한 잔만 시켰으면서 몇 모금씩 마셨잖아. 나는 커피도 그냥 온전히 한 잔 다 먹고 싶단 말야. 나는 안 먹으면 안 먹었지 애초에 생각한 양보다 적어지는 게 싫어."


"그래 알았어. 미안해."


분명 우리는 한국말로 말했고, 내가 화는 났지만 언성을 전혀 높이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 손님들과 종업원들이 우릴 의식하는 게 느껴졌다. 심지어 대화하던 목소리도 낮추고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내가 나이 든 아줌마를 엄청 혼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억울했다. 남의 속도 모르고!


내 사정을 알면 이해해줄 텐데. 근데 이런 사정을 알아도 여전히 엄마 혼내키는 패륜아라고 생각하려나?

문제의 그 라멘(아니, 문제는 난가...)

우리는 남은 음식을 먹고 서둘러 나왔다. 맛있었는데, 중간에 이러는 바람에 온전히 즐기지를 못했다. 심지어 고여사의 덮밥은 맛이 없어서 다 남겼다. 진짜 먹은 것도 아니고 안 먹은 것도 아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고여사에게 미안했다.


"엄마, 아까 뭐라고 해서 미안해. 그런데 말했다시피 난 1인분을 시키면 그거 다 먹고 싶어. 한두 숟갈은 괜찮은데 그 이상 먹을 거면 따로 하나 시키는 게 맞다고 봐. 가끔 그러면 나도 그러려니 할 텐데 옛날 생각까지 나서 더 그런 거 같아."


"그래 이해해. 그럴 수도 있지. 나는 음식 남기는 게 아깝고 싫어서 그랬어. 다음부턴 엄마가 먹고 싶으면 하나 더 시킬게."


우리는 쉽게 화해했다. 어디 가서 커피나 마실까 두리번거리던 중 내 눈에 간판 하나가 들어왔다. 바로 로키 마운틴 솝 컴퍼니. 로키산맥 근처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체인점이었구나.


"엄마! 우리 저기 가보자. 엄마 스크럽 사야지."


"됐어 괜찮아. 안 사도 돼."


"그러지 말고 빨리."


나는 고여사의 손을 잡아끌었다. 로키 마운틴 솝 컴퍼니는 건물 1층에 있었다. 나는 곧바로 바디 제품 코너로 갔다.


"안녕하세요. 찾으시는 상품 있나요?"


"네, 스크럽인데요 라벤더 향이었던 것 같은데..."


"혹시 이건가요?"


"맞아요. 이거. 고맙습니다."


"이 스크럽 저도 정말 좋아하는데. 직접 쓰실 건가요?"


"아뇨, 저희 엄마가 쓸 거예요. 사실 캔모어에서 스크럽을 샀는데, 공항에서 기내에 못 가져간다고 빼앗겼어요.  아마 공항 쓰레기통에 있을 거예요. 우리 엄마 거의 울 뻔했다니까요."


"그래요? 이런 이런. 그럼 제가 이건 선물로 줄게요."


"네? 아니에요. 우리가 실수한 건데요 뭐. 괜찮아요."


"내가 주고 싶어서 그래요. 잠깐만요. 전산에서 재고 상황을 보고 줄 수 있는지 확인해 볼게요."


점원이 카운터에서 컴퓨터를 두드리더니 잠시 후에 말했다.


"아 되겠네요. 이건 선물로 줄게요. 당신이 아니라 당신 어머니한테 주는 거니까 꼭 받아달라고 전해주세요."


그때까지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던 고여사가 벙찐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엄마, 이 분이 엄마한테 이거 선물로 주겠대. 내가 괜찮다고 했는데, 꼭 주고 싶으니까 받아달래."


고여사는 무진장 감동한 표정으로, 양쪽 검지손가락을 들어 눈물을 그려 보이며 감동받았음을 알렸다.


"땡큐 땡큐. 땡큐 베리머치"


점원은 자기가 오히려 기쁘다고 말하며 스크럽을 예쁜 쇼핑백에 담아줬다.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공항에서 그렇게 속상했는데, 여행 마지막 날 이런 멋진 일이 있다니. 캐나다는 역시 행운의 땅이 틀림없다.


우리는 마지막날 저녁을 거하게 먹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H마트(한아름마트)로 향했다.


“엄마, 나 오늘 햇반 대용량으로 먹을 거야.”


고여사의 밑반찬과 라면과 햇반에 중독된 나는 마지막날 특식으로 컵라면, 대용량 햇반, 김자반을 골랐다.


“더 맛있는 거 먹지. 오늘이 마지막 저녁이잖아.”


“난 이게 맛있는 거야. 오늘은 엄마랑 숙소에서 밥이랑 라면 해서 먹을래. 진짜 맛있겠다.”


인천공항에서 반찬 싸왔다고 그렇게 구박했는데, 이거 없었으면 여행 어떻게 할 뻔했나. 역시 엄마 말을 들어야 한다. 엄마는 언제나 옳다.


우리는 H마트에서 산 식료품을 들고 숙소로 향했다. 참 평온한 동네였다. 걷다 보니 어디서 "야옹"소리가 들렸다. 어느 집 대문 위에 고양이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빨간 목줄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집고양이였다.


에옹?

"어머, 안녕?"


고여사가 고양이한테 인사했다.


"엄마, 캐나다 고양이니까 영어로 인사해야지."


"그렇네. 헬로~~"


"아 석봉이 보고 싶다."


"그러게. 집에 가면 석봉이 많이 예뻐해 줘야지."


안석봉은 7살 먹은(현재 12세, 여) 우리 집 고양이다. 석봉이는 6개월쯤 아빠와 나에게 냥줍되어 들어온 길거리 출신으로, 사랑을 듬뿍 받는 집 고양이로 늙어가고 있었다.


고양이랑 인사도 했겠다, 거의 이 동네 주민이 된 듯한 느낌으로 숙소로 돌아갔다. 햇반과 라면과 김자반을 기대하며.


공원을 구경하고, 라멘 먹으면서 싸우고, 뜻밖의 행운을 만나고, 귀여운 고양이까지 만난 스펙타클한 하루. 이렇게 여행 마지막 날도 무사히 끝나가고 있었다.


쇼핑하고 룰루랄라 기분 좋은 꼬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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