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대했던 아마시아(Amasya)가 맞나요

당신이 아마시아에 간다면 한 번쯤은 참고해도 좋을 법한 이야기

by Neonsky

## 아마시아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터키의 알프스, 웅장한 바위산 사이로 흐르는 푸른 강 예실으르막과 그 강물을 따라 펼쳐진 소담한 풍경이 아름다운 도시, 7500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진 곳. 하나같이 아마시아를 묘사하는 표현들이지만, 썩 잘 알려진 관광지도 아닐뿐더러 구태여 짧은 휴가 일정에 무리해 방문할 가치가 있을까 싶은 곳 아마시아.


처음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계획을 짜려했을 때, 별다른 정보가 없어 당황했다. 이름 있는 관광지, 꼭 가볼만한 곳이라면 으레 그렇듯이 수많은 블로거들이 온갖 미사여구와 이모티콘들을 섞어 찬양하는 포스팅들을 올렸을 텐데 내가 찾은 글이라고는 ‘한번 가볼만하다’, ‘강을 따라 펼쳐진 야경이 아름답다.’ 정도였다.


하지만 성에 안 차는 포스팅에도 불구하고 아마시아에 가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이 흑해 연안의 작은 도시에 신석기시대부터 히타이트, 페르시아를 넘어 오스만 튀르크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문명의 흔적이 발견되는 것인지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좀 더 세속적인 이유도 있다. 누구든 여행을 다닐 때 하나의 허세를 가지기 마련이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곳, 남들이 겪어보지 않은 곳을 찾아 떠나는 장기 여행자의 심정을 여러분도 잘 알거라 생각한다. 새로운 여행지에서 나만의 보석 같은 곳을 발견하는 묘미, 남들에게 속칭 뻐길 수 있는 장소가 내겐 필요했다.


아마시아엔 내 허세를 충족시켜 줄 무언가가 있었다.


## 아마시아에 가는 길은 쉽지 않다.

일단 아마시아에 가는 길은 쉽지 않다. 가장 빠른 방법이 터키 앙카라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인데, 이마저도 6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스탄불에서 버스를 탈 경우에는 11시간이라는 엄청난 시간이 걸릴뿐더러 야간 버스가 거의 없어 이동하는 데 꼬박 하루를 낭비해야 한다.


이스탄불에서 내륙으로 한참을 들어온 사프란볼루에서조차 아마시아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앙카라를 경유하지 않는 직행 버스가 있지만 하루에 1대, 오후 1시 30분에 출발해 저녁 8시가 넘어 도착하는 길고 긴 버스 편이 고작이다.

성인인 내게도 7시간의 버스이동이 벅찼는데, 터키의 아이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일인 것 같다.


또 낮에 타는 버스는 어떤가. 반나절을 꼬박 길 위에서 보내야 하는 7시간의 버스 이동은 단지 1박 2일로 충분할법한 여행지에 이 정도 시간을 들여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게 만든다. 게다가 중간중간 정차해 승객들을 태우거나 내리는 버스, 야간 보디는 잦은 정체, 한번 이상을 들려서 30분가량을 머무르는 휴게소, 정시운행을 포기한듯한 터키 운전기사들의 태도, 이런저런 이유들이 겹쳐 아마시아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하게 느껴진다. 어떤 방법을 이용하든 아마시아 하나를 보고 방문하기에는 시간이 아깝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내가 생각했던 아마시아가 맞나요

하루키의 터키 여행기 우천 염천에선, 그가 다시 여행하고 싶은 곳으로 표현하는 곳이 아마시아였다. 잠시 내용을 빌리자면,

그곳에서는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이번 여행 중 이 지역에서 제일 느긋하고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그곳은 온화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하루키의 책에서 언급된 한 줄의 묘사만 믿고 버스에 몸을 실었던 나였기에 아마시아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긴 이동 끝에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도착한 아마시아 오토가르(버스터미널)는 특유의 웅장한 협곡도, 시내를 가로지르는 예실으르막의 물줄기조차 볼 수 없었다. 택시와 버스만이 분주하게 오고 가는 아마시아의 오토가르에서는 오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비가 을씨년스러움만을 부추겼을 뿐이었다.


하지만 택시를 잡아타 아마시아 구시가지에 도착한 순간 예실으르막을 따라 펼쳐진 놀라운 광경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본디 탁한 푸른빛으로 흘렀어야 할 예실으르막은 화려한 네온빛을 머금어 보는 나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정녕 이곳이 하루키가 표현한 대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곳’이란 말인가. 우중의 축축한 공기와 화려한 네온빛이 뒤섞인 이상한 동네였다.


일층보다 돌출된 2층의 발코니와 그를 지탱하는 사선의 버팀목, 그리고 그 돌출된 건물을 반사하는 예실으르막.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북킹닷컴에서 가장 저렴한 순으로 정렬해 예약한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오스만 제국 시대의 전통가옥을 개조해 호스텔로 만든 곳이라는데, 지붕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에 마당의 박석이 물을 잔뜩 머금어 꽤나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물론 분위기와 숙소의 위생상태는 별개라지만 이미 장거리 버스에 지칠 대로 지친 내게는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배정받은 객실 옆에 언뜻 말구유가 보이는 듯했지만 애써 무시하고 숙소에 짐을 풀었다.


결론적으로 이곳에서 잊지 못할, 남들이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했다. 내 탁월한 선택에 머리를 쥐어박으며 칭찬하고 싶을 정도였다. 애초에 난방조차 되지 않는 방이었기 때문에 객실에 비치된 전기난로를 켤 수밖에 없었다. 조금 훈훈해진 공기에 잠을 청하려던 찰나, 멀티탭에서 빛이 번쩍 나더니 불이 붙었다. 베개를 들췄더니 벌레 시체가 반겨줬다. 착착함 심경을 달래려 객실 밖을 나왔더니 말구유가 눈에 들어왔다. 이때 난 아마시아에 온 것을 진심으로 후회했다. 남들이 못해본 경험으로 뻐기는 것은커녕 당장 숙소를 옮겨야 하는지에 대한 후회가 막급했다.

고작 100리라, 우리나라 돈으로 2만원에 싱글룸이라 감지적지 했지만, 저건 열쇠가 아니라 쇳대였다.


불타버린 멀티탭. 만약 잠이 든 상태였다면...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뒤, 본격적으로 상쾌한 관광을 시작했다. 당장 이곳을 떠날 티켓을 구입하는 게 급선무였다. 다음 목적지인 트라브존으로 가는 표가 없어 하룻밤을 더 지새우고 싶은 생각이 일절 들지 않았다. 부랴부랴 근처 티켓 오피스에서 트라브존행 23시 버스 티켓을 구매하고서야 관광을 시작할 마음이 들었다. 이미 시작 전부터 한쪽 발을 다른 곳에 걸쳐놓은, 어긋난 태도로 관광을 시작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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