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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배구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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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Mar 28. 2023

아주 약간의 차이

배구를 배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코치님에게 가장 많이 물어봤던 건 이런 질문이었던 것 같다.

“정확하게 공에 힘을 실을 수 있는 위치는 어떻게 알아요??”

“공이 날아올 때 어느 타이밍에 무릎을 굽혀야하나요??”

그냥 이렇게 텍스트로 질문을 보는 사람들은 어이없을 지도 모르겠다. 저걸 대체 어떻게 알려줘!?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실제로 배우는 입장에서는 하다하다 안되니까 자꾸만 저런 질문을 하게 된다.



분명히 나도 코치님이랑 똑같은 정도로 팔을 휘두르는 것 같은데,

내 친구랑 비슷하게 자세를 낮추고 있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내 공은 흐물거리면서 날아가고 이상한 곳으로 튀어나가버린다.

나 같은 경우에도 날아오는 공을 팔로 받아내는 수비를 할 때 코치님이 진짜 한 백번은 ‘자세 숙여!!!’ 라고 외치는데도 어리둥절한 마음이 든다. 왜냐? 나는 진짜 몸을 한!!껏!!!! 낮추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의도한 나 : 자세를 땅에 가까울 정도로 낮춘 상태

실제로 내가 취하고 있는 자세 : 그냥 정자세로 서있는 것에서 허리만 살짝 숙였음..

가끔은 정말 모르겠어서 연습하는 모습을 촬영해보기도 하는데, 사실 촬영본을 보면서 더 당황스러워 질 때는 바로 나랑 저 친구랑 거의 각도가 비슷해보이는 순간이다.

나랑 비슷한 각도로 낮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내 공만 천방지축으로 튀어나가고 저 친구의 공은 안정적으로 뻗어나가는 지 처음에는 진짜 이해가 안갔었다.

물론 지금도 내 자세는…. 마음먹은만큼 낮춰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하나 깨달은 건 정말 아주 약간의 차이가 결과를 크게 달라지게 하고, 그 약간의 차이를 만들어내기까지가 꽤나 힘들다는 점이다.

숫자로 표현하자면 무릎을 말 그대로 아주 약간만 더 굽혔을 뿐인데 공을 수비하는 각도가 달라진다.

팔을 휘두를 때 힘을 주는 시간을 아주아주 약간만 더 앞당겼을 뿐인데 공에 실리는 무게가 달라진다.

그러니 당연히 이 정확한 지점을 누가 알려줄 수가 없다.

내가 나를 계속 관찰해야만 알 수 있다. 자세가 낮춰지지 않는 이유는 무릎을 굽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사람마다 팔 길이도, 손가락 길이도, 어깨 근육도, 심지어 힘을 주는 방법도 다 다르다.

아무리 코치님이 지금보다 더 숙이라고 천번 만번 가이드를 줘도 이거다 싶은 각도를 알 수 있는 건 나 뿐이다.

결국 머리로 백번 이해해도 끝없이 공을 받아봐야지만 알게되는 것 같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공만 받아봐야 의미가 없다. 나는 어떻게 반응했지? 이번엔 꽤 내 의도대로 공격이 들어간 것 같은데 아까와는 뭐가 달랐을까? 방금은 팔이 좀 구부러졌던 것 같네. 다음엔 힘을 더 꽉 줘보자. 하면서 나를 들여다봐야한다.



사실 배구뿐만이 아니라 다 비슷한 것 같다. 살아가는 방식은 천차만별이고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대하는 자세의 차이가 모여서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듯 하다.

처음부터 너무 큰 변화, 큰 결과를 만들어내려는 마음이 내게 독이라는 걸 이제 알 것 같다.

아주 작은 차이를 조금씩 쌓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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